삐딱하게 바라본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영국의 좌파 코미디언 마크 스틸의 <혁명만세> 출간

등록 2009.01.21 13:03수정 2009.01.2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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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투쟁이나 시위에 참여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지배 권력에 도전하는 사건들의 경우, 바로 그 다음날부터 심각하게 왜곡된다. 더욱이 200년 전 일이라면 오죽하겠는가. 편견을 걷어내면 완전히 색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프랑스대혁명이 졸지에, 오늘날의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둔갑한다."

 

이와 같이 <혁명만세>의 저자 '마크 스틸'은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왜곡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람으로 알려진 좌파 코미디언 '마크 스틸'이 자신의 눈으로 '프랑스혁명'을 기존의 시각과는 다르게 뒤집어 보았다. 그의 독특한 인문학적 지식과 코미디적인 사고는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민중들이 역사상 최초로 스스로의 결정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시각과 소개방식은 일반인들에게는 도리어 황당하기만 하다.

 

그는 <혁명만세>에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혁명에 대한 터무니없는 오해를 바로잡고 그 교훈을 이야기하는 등 철두철미하게 분석을 하고 있어 그의 생각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아연 엄숙해진다. 그의 분석방법은 해박하고 예리하며, 그의 자세는 비타협적이고 힘차면서도 재치가 넘친다. 그 모든 이야기의 굽이굽이마다 어쩌면 그렇게 생동감 넘치는 입담을 곁들여내는지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래서인지 '마크 스틸'의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혁명만세>는 읽는 이들에게 작지만 큰 감동과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다시 보게 하는 시각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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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만세 표지 혁명만세 ⓒ 도서출판 바람구두

▲ 혁명만세 표지 혁명만세 ⓒ 도서출판 바람구두
지난 연말에 출간된 <혁명만세(도서출판 바람구두)>은 썩어 문드러진 중세의 깔딱거리는 심장에 연결되어 있던 산소호흡기 호스를 쭉 잡아 빼버린 일대 사건인 프랑스혁명을 다루고 있다.

 

천년 동안 지속된 중세에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절대 왕권은 종국에는 타락할 수밖에 없었다. 수녀원장이 애를 낳아도, 간통을 해도, 도둑질을 해도 면죄부만 살 수 있다면 편안히 살 수 있었고,  농노들은 사람이 아닌 짐승이었다.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들은 귀족과 성직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분노가 부글거렸다. 바야흐로 구체제의 기둥뿌리를 뒤흔들게 되는 프랑스 대혁명의 서막이 오를 토양이 완비된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 대혁명은 인류 역사상 여느 혁명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왕의 목이 민중의 손으로 잘라버린 후 중세의 모든 가치를 뒤집은 대혁명을 우리는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혁명 만세>의 저자 '마크 스틸'은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좌파 코미디언이다. 코미디언에도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는 코미디 같은 영국에서 마크 스틸은 대혁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이다. 진보정당 후보로 런던시의원에 출마한 경력까지 있을 정도로 정치활동에 열정적인 그가 프랑스 혁명사를 다시 얘기한다.

 

마크 스틸이 프랑스대혁명의 완전 흥미진진하고 진짜 강렬한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고자 작심했다.

 

영국인이 왜 프랑스혁명 이야기를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스틸이 보기에 프랑스혁명에 대한 영국인들의 대중적인 인식, 역사학계의 태도 등은 성에 차지 않았다. 영국의 역사저술가 '사이먼 샤마'의 <시민들>이라는 900쪽이 넘는 프랑스혁명 책에는, 혁명에 대한 혐오만 넘실거릴 뿐, 예컨대 인종주의나 백인우월주의 같은 근대적 우상을 타파한 혁명으로 평가받는 '아이티 혁명' 이야기가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는다고 스틸은 개탄한다.

 

그런 편협한 시각 탓에 겨우 2, 3천의 헌신적인 혁명 광신자들로만 구성되었을 따름이라고 혁명을 조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 속에서는 대혁명을 너무나 경멸한 나머지 혁명을 지지하는 수많은 인류의 삶 속에서 펼쳐진 수백만의 휴먼 스토리들을 죄다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의 저작 <혁명만세>는 혁명의 전개과정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어떤 왕실이 어떤 왕정을 펼쳐서 어떤 계층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를 개괄한다. 왕실과 지배계층의 폭정 앞에서, 또 농민, 장인, 노예 등의 처참한 지경 앞에서는 그저 말문이 막힌다.

 

혁명의 토양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계몽을 주제로 다루며, 물론 루소도 등장하지만, 당시 음담패설 혹은 성인소설이 어떤 계몽적 역할을 했는지 또한 짚어준다. 물론 사디즘의 어원이 되신 사드 후작도 등장하시고, 프랭클린의 연 날리기 실험이 어떻게 프랑스로 건너와 로베스피에르라는 약관의 변호사와 조우하게 되는지 알게 되는 것도 당시의 시대상을 밝히는 하나의 퍼즐 조각을 이룬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왕정을 물리치고 민주공화국을 일으켜 세운 거대한 드라마를 이끈 주인공들로는 로베스피에르뿐만 아니라 당통, 데물랭, 미라보 등이 소개된다. 인물 자체보다는 이들 혁명가들에 대한 곡해가 얼마나 극심하고 악질적이었는지를 보임으로써, 새로운 판단을 위한 균형추로 삼고자 한다.

 

프랑스혁명의 감추어진 이면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마크 스틸'의 의도가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무엇보다 혁명의 실질적 원동력이었던 거리의 상퀼로트 민중의 활약을 소개하는 부분들이다.

 

가령 왕가가 왜 베르사유 왕궁을 떠나게 되었는지를 밝히며 조명된 당시 상퀼로트 아줌마들의 태도와 입장, 파리를 몰래 벗어나 반혁명군에 합류하려던 루이16세를 저지, 체포했던 바렌의 우체국 직원 드루에와 그의 무리들, 대혁명이 내건 공화주의의 기치 아래 최초의 노예해방전쟁이 벌어진 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 산도밍고의 블랙 자코뱅 이야기들 등은 어찌나 극적이고도 실감나는 어휘들로 가득한지, 사실인지 소설인지 분간이 어려울 지경이다.

 

이런 혁명의 구비들에 대한 '마크 스틸'의 묘사를 더욱 실감나게 하는 것은, 그런 사건들을 최근의 사회사적 현상들과 현란하게 버무려 엮어내는 스틸의 재치와 재주에 있다. 로베스피에르형 인물과 당통형 인물을 찾아 프라하의 반지구화 시위 현장을 여러 차례 드나들기도 하고, 사라진 프랑스 왕실을 실감나게 묘사하려고 지금껏 살아남은 영국 왕실을 맘껏 풍자하기도 한다.

 

프랑스대혁명의 전형적 이미지로 굳어진 단두대의 공포정치는, 증오에 찬 왕당파 반혁명군에 포위되어 사면초가에 빠진 파리의 혁명세력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일러준다. 그러니까 공포정치는 무엇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장치였으니, 이를 이해하려면 프랑스까지 점령하고 런던 입성을 코앞에 둔 알카에다의 협박을 상상해보자고도 한다.

 

하지만 혁명은 실패했다. 혁명군의 청년장교였던 나폴레옹은 훗날 침략군이 되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유린하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뒤 결국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나섬으로써 공화주의 혁명의 대의를 더럽혔다. 스틸은 나폴레옹 발작 사건의 꼴사나운 풍경, 나폴레옹의 꼬마요정 자문관,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소멸된 혁명적 진보파의 기운 등을 소개하며, 풍자와 우롱의 극치로써 책을 만든다.

 

그러나 대혁명의 좌절이 끝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헤겔과 괴테가 있었고 바이런이 있었고 베토벤이 있었다. 훗날에는 러시아의 볼셰비키, 중국의 덩샤오핑 등이 혁명을 이었다. 문학과 철학, 음악, 시로 이어지는 혁명. 무엇보다 프랑스대혁명은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쪽을 바라보고 다른 미래를 꿈꾸게 했다.

 

거기서 사람들은 만물은 서로 얽혀 있다,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으며, 상상력의 나래가 펴지고, 인간의 창조성의 모든 잠재력이 활짝 펼쳐지게 되었다. 프랑스대혁명은 이런 인식이 모든 대륙으로, 모든 노예들의 땅으로, 혁명의 소식이 전파된 곳 구석구석 퍼지게 했다고 ‘마크 스틸’은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혁명만세>를 번역한 박유안은 1967년 대구출생으로 심인고를 거쳐 관악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 건축을 더 공부했지만, 박사학위는 받지 않고 돌아왔다. <혁명만세>말고도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쟌 모리스의 50년간의 유럽여행>, <세상끝의 풍경>, <안젤리나 졸리의 아주 특별한 여행> 등을 번역했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땅 한 평 없이 자유롭게 사는 자유인으로 여행과 책읽기를 무척 좋아한다. 번역가이며 출판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혁명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마크 스틸 지음, 박유안 옮김,
바람구두, 2008


#프랑스 혁명 #혁명만세 #마크 스틸 #도서출판 바람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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