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네

▲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리장(麗江) 고성의 야경 ⓒ 서종규

▲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리장(麗江) 고성 ⓒ 서종규

▲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리장(麗江) 고성의 야경 ⓒ 서종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리장 고성은 어떤 곳일까? 호기심 가득한 발걸음이 빨려든 곳은 번잡하기 이를 데 없는 복잡한 상가였다. 바닥은 미끌미끌하게 닳아진 돌이다. 가게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고, 아주 오래된 집들에는 모두 민박을 한다는 표시가 되어 있다. 음식접에서는 요란한 음악과 손님을 맞는 맞이꾼들이 부산하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에 당황스러웠다. 내 생각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고성이라면 통제된 시간에만 사람들이 출입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텅 빈 상태로 밤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문화제들 중 궁궐들이나 성들을 보면 보존을 위하여 통제된 시간에만 관람이 가능한 곳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 리장 고성은 사람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 도시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더 상업적으로 변했다고들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순수한 모습을 모두 잊어버린 곳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리장 고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면서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1월 8일 밤 중국 윈난성 리장(麗江)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를 하려고 리장 고성으로 갔다. 리장 고성 입구에는 커다란 물레방아 두 개가 돌고 있고, 높은 벽에는 부조로 된 여러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 옆에는 ‘세계문화유산 리장 고성’이라는 강택민 주석의 글이 새겨진 게시판이 커다랗게 서 있었다.

따리의 고성에서 그렇듯이 휘황찬란한 조명들이 고성 전체에 깔려 있다. 중국 특유의 홍등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고, 지붕이며 기둥들에 수없이 늘어진 조명이 화려한 별천지를 보는 듯하다. 가게와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길을 중심으로 죽 늘어서 있는데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중앙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특히 나시족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을 하거나, 어떤 사람들은 같이 손을 잡고 그들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관광객과 주민들이 하나로 어우러진 축제 같다.

리장 고성 중앙에 위치한 한국식당 '벚꽃마을'을 찾았다. 이 식당은 한국 사람이 경영한다고 하는데 근처 많은 다른 식당들에 비하여 그 규모나 울려 퍼지는 음악, 식당 안의 광경,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수까지 단연 돋보였다. 식당 간판도 중국말로 쓰여 있기도 하였지만 한글로 '벚꽃마을'이라고 써 놓았다.

▲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리장(麗江) 고성의 오래된 길 ⓒ 서종규

▲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리장(麗江) 고성의 물길 ⓒ 서종규

1월 9일, 다시 리장 고성을 찾았다. 밤의 휘황찬란한 조명들은 없었지만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으며, 각 상점에 진열된 물건들이 수없이 많이 늘어서 있다. 나시족들이 사는 순수한 고대도시라기 보다는 상업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관광지인 것이다.

해발 2400m에 위치한 리장 지역에 1996년 강한 지진이 발생하여 건물들이 많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는데, 지진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보니 다른 현대식 건물들은 많이 무너졌으나, 리장 고성의 목조 기와집들은 거의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진의 피해를 복구하여 1997년 12월 리장고성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리장 고성은 원나라 초(1250년경)에 조성된 도시이다. 성벽도 없고 성문도 없는 것으로 보 아 고성이라기보다는 고대도시이다. 사방으로 통하는 길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에 옥룡설산에서부터 흘러내려온다는 물길이 놓여 있고, 그 길 양 옆으로 펼쳐진 수많은 전통가옥들을 보면 중국 고대 도시의 배치와, 고대 건축 미학을 잘 살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처음 조성될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길바닥의 돌들, 고성의 길들은 보도블록처럼 모두 네모난 돌들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이 돌은 많은 돌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역암이다. 역암의 특성상 큰 자갈들을 섞어 만든 것 같은 이 보도블록이 닳아서 길바닥은 미끌미끌하다.

하루 종일 리장 고성을 누볐다. 골목골목에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경하고, 흥정하고, 깎아도 지루하지 않다. 대표적인 특산물은 단연 보이차를 비롯한 각종 차들, 그리고 야크뿔로 만든 빗이나 각종 도구, 현장에서 직접 짜고 있는 천연 직물들, 각종 목공예 및 조각하는 모습, 옥공예 및 도장, 그리고 동파문자를 새겨주는 곳이다.

▲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리장(麗江) 고성의 나시족 민속춤 ⓒ 서종규

▲ 리장의 차를 파는 상점 ⓒ 서종규

▲ 리장 고성 상점에서 베를 짜는 모습 ⓒ 서종규

리장에는 나시족들이 사용했다는 동파문자가 있다. 동파문자란 상형문자이다. 우리가 한문을 배울 때 처음 한문이 생겨나게 된 것은 물건을 본 따서 글자를 만들었다고 배웠다. 그것이 상형인데 바로 동파문자는 그 상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문자인 것이다.

나시족은 동파문자로 동파경이란 경전을 남겼는데 이 기록에는 신화, 전설, 동파교 교리 및 의례, 나시족 풍습 등이 기록되어 있어서 2003년 동파문자와 동파경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리장에는 모든 간판이나 안내판에 동파문자가 병행되어 기록되어 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끝이 없는 리장 고성은 중국 사람들이 찾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관광지라고 한다. 차마고도 답사 길에 고성이 있는 따리, 리장, 샹거리라 세 곳 중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비로 리장 고성이었다. 비수기인 1월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성 거리를 누비는데, 성수기에는 사람들에 치여서 걸을 수 없게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하니, 그 수많은 상점들이 어떻게 먹고 살까 걱정했던 내 마음이 기우였다.

고성을 관통하는 물길이 인상적인데, 물속에 수초들 사이를 헤엄치고 다니는 붉은 금붕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길에 금붕어라니 조금 어울리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골목을 누비다 보니 어느 곳에서는 금붕어를 사서 방생하는 곳이 있었다. 아마도 그러한 금붕어들이 리장 고성 물길에서 살고 있는가 보다.

외지인이 리장 시내 호텔에 투숙을 하면 호텔비에 리장 고성 입장료 90원(한화 2만원)을 받는 리장을 철저하게 상업화된 고대도시라고 비판할지라도, 관광지가 되려면 이렇게 철저하게 관광지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보존을 위하여 사람들을 격리시키지도 않았으며, 상업화가 철철 넘쳐난다고 비판을 받아도 또 상점을 꾸미고 있었다.

원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고대 도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쫓아낼 필요도 없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그들의 정책에서 사회주의이면서 자본주의적인 중국의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