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도 '장로님' 찍어야 돼요?"

등록 2009.01.29 21:01수정 2009.01.2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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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명박 대통령 장로님이지요?"

"응 장로님 맞지."

"아빠는 목사님이니 이명박 대통령 찍었겠네요?"

"아빠가 목사인 것 하고, 이명박 대통령 찍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이니?"
"아빠가 목사님이니까, 당연히 장로님인 이명박 대통령 찍어야지요?"
"그게 무슨 말이니? 아빠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반 ○○○ 부모님은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님이라서 찍었대요."

"인헌아!"
"예"
"장로님하고, 대통령은 아무 관계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장로이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면 바른 판단이 아니다. 대통령은 장로님이 아니어도 더 훌륭하게 나라를 이끌 수 있고, 장로님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지 못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장로 대통령 나라를 잘 다스린 사람이 없다."

 

큰아이가 저녁을 먹으면서 갑자기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이니 목사인 아빠도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을 찍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자기 반 동무 부모님도 장로님이기 때문에 찍었다는 말과 함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내 아들이 말한 것이 한국교회 현실이요 비극이다. '장로' 대통령을 원하는 한국교회는 김영삼 전 대통령 때 얼마나 심각했는지 모른다. 지난 대선은 선거법 위반 때문에 설교 시간은 대놓고 지지를 호소할 수 없었지만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설교한 목사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장로는 IMF로 나라를 말아먹었고 지금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장로를 이어받아 나라 경제를 겨우 살리고 남북화해를 이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DJ는 입만 열면 선동과 파괴적인 언행을 일삼고 있으니 전직 대통령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가난한이들이 돈 조금 더 달라고 울부짖었으나 들어 주는 곳 하나 없어 화염병과 시너를 들고 생명을 내놓는 마지막 투쟁을 벌이다가 경찰 특공대 강제 진압 때문에 6명이 무참히 희생되었지만 장로 대통령은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

 

나와 내 아이들 먹을거리만큼은 좋은 것 먹겠다고 촛불을 들었는데 그들을 과격시위자로 매도하고, 대한민국 심장인 광화문에 '명박산성'을 쌓아 대통령과 시민의 소통을 막은 사람이 떠날 때 "아, 님은 떠났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당신이 있어 대한민국 경찰은 행복했습니다. 청장님, 사랑합니다"라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아들에게 '장로'가 대통령 되면 나라를 복받을 것이니 장로를 찍어야 한다고 가르칠 수는 없었다.

 

"아빠 그래도 장로가 되면 나라를 더 잘 이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하지 마라. 장로이기 때문에 나라를 잘 다스린다는 생각은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를 더 복주실 것 아니예요?"
"아니다. 하나님은 장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우리나라를 더 복주고, 장로를 뽑지 않았다고 벌주는 분이 아니다."

"아빠는 지금까지 장로 대통령은 한 번도 안찍었요?"

"비밀투표인데!"
"그래도 말해주세요?"
"'장로'라고 찍은 일은 없다. 앞으로 너도 장로이기 때문에 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럼 어떤 사람을 찍어야 해요?"
"네가 바라는 정치를 하는 사람.

"내가 바라는 정치요? 어렵다."
"쉽게 말하면 네가 가난한 사람과 조금 더 평등한 사회가 되기를 원하면 그런 정치를 하는 사람을 지지하고, 부자와 힘 있는 사람이 더 잘되는 세상을 꿈꾸면 그런 세상을 만드는 정치인을 지지하면 된다. 너는 어떤 세상이 되기를 원하지?"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과 힘 없는 사람을 위해서 살아라고 했잖아요."

"그럼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을 위해서 정치하는 사람을 지지하면 된다. 장로라고 다 그런 사람은 아니다. 물론 장로가 그런 사람이면 지지하면 된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봄이 되면 5학년이 되는 큰 아들은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은 안다. 용산참사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것 쯤은 안다. 그들을 고의적 방화범이니, 죄 없는 시민들에게 화염병을 던지고 시너를 뿌려 불지른 범죄자로 분위기로 몰아가는 현실을 보면서 아들은 혼란스럽다.

 

어린 생각에 가난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는 것 같은데 자꾸만 범죄자로 낙인 찍는 현실은 초등학교 4학년 의식 수준으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 보인다. 적어도 내가 목사라면 바르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화염병과 시너, 새총이 불법이지만, 불법인줄 알면서도 왜 그들이 그것들을 들었는지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호소였다, 어느 누구 하나 자기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불법으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교회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해야 목사다.

 

장로 대통령 되면 대한민국 잘 살 수 있다고 외쳤던 한국교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독교 국가는 잘 살고, 불교 국가는 못 산다고 하는 목사는 지금 무엇하고 있는가? 장로 대통령이 되고나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가난한 자를 위해 오셨다는 예수님 말씀을 설교해야 하지 않는가? 신자들 주머니 짜내어 예배당 건축하는 일, 부자되려면 십일조 많이 하라는 설교하지 말고. 제발 예수님 말씀을 대로 설교하자. 그런 설교 하기 싫으면 다시는 "'장로'가 대통령 되어야 한다" 외치자 말자.

 

"장로라고 무조건 찍지 마라" 내가 아들에게 한 말이다.

2009.01.29 21:01ⓒ 2009 OhmyNews
#목사 #장로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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