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안 한 사람에게 뭔가 불편을 주자

참정권 제한, 공직취업금지 조처 고려할 만 ... 투표 편의 최대한 보장해야

등록 2009.02.09 09:25수정 2009.02.0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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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던진 표가 대통령 결정해서야...

 

김희철 민주당 의원이 8일 공직선거에 부득이한 사유없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투표하지 않으면 오스트레일리아처럼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투표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있고, 기권자에게 벌칙을 주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먼저 생각할 것은 투표율을 왜 올려야 하는가다. 판단력이 없는 사람, 정치에 완전히 관심이 없어서 투표를 하더라도 제비뽑는 식으로 하는 사람들의 의사까지 반영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 의무투표제를 시행하는 나라의 경우, 이처럼 아무렇게나 투표하는 당나귀 투표자들이 1-2%에 달한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가 1997년 1.6%p, 2002년 2.3%p 차이로 결정되었음을 보면, 당나귀 투표자들이 대충 던진 표가 대통령을 결정하는 경우까지도 가능하다.

 

따라서 단순히 모두에게 투표를 획일적으로 강제하는 방식보다는, 나름대로 위신이나 긍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투표하지 않으면 위신이 깎이거나 뭔가 불편함이 생기도록 하는 방식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투표자에게 돈으로 인센티브를 준다든지, 기권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은 그런 점에서 너무 거칠다.

 

투표 안 하면 참정권 박탈하는 나라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과태료 자체는 형식적으로 소액이지만, 과태료를 끝내 내지 않는다면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징역형은 기권 때문이 아니라 과태료 납부거부 때문이지만, 한국의 법의식에서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투표 안 했다고 감옥가느냐는 항변이 나올 것이다. 따라서 이런 수준의 강제는 한국에서 비현실적이다.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은 투표 안 하면 참정권에 제한을 가하는 방법, 또는 공공서비스에서 불편을 당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벨기에의 경우 15년 동안 4회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참정권이 박탈된다. 싱가포르는 투표하지 않으면 일단 유권자 명부에서 지워지고, 다시 투표권을 가지려면 신청을 새로 하면서 왜 투표하지 않았는지 정당한 사유를 스스로 석명해야 한다.

 

페루는 투표했다는 도장을 받은 인증서를 선거 후 몇 달 동안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공공서비스에서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볼리비아에서는 그 인증서가 없는 사람은 석달 동안 봉급을 은행구좌에서 인출할 수 없다. 벨기에는 공공기관에 취업할 수 없게 하고, 그리스는 여권이나 운전면허를 주지 않는다. 이와 같은 불편은 얼마든지 강도를 조절하면서 고안할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우 참정권 제한, 공직취업금지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단, 기권이나 무효표도 의사표시이므로 일단 투표장에 나오기만 하면 의무를 충족한 것으로 봐야 한다. 투표용지를 찢어버리든지, 무효가 되도록 하든지, 투표함에 넣지 않든지, 등은 개인의 자유라고 봐야 한다. 또 참정권 회복을 신청할 때 "합당한" 사유의 폭도 최대한 넓고 호의적으로 해석해 줘야 한다.

 

투표 편의, 최대한 보장해야

 

1.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에 불참한 사람은 스스로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소명하면서 참정권 회복을 신청하지 않는 한 투표권을 박탈한다.
2. 투표권이 박탈된 사람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교사직 채용을 제한한다.

 

이런 제도를 시행하려면 먼저 투표의 편의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마침 재외국민 투표도 허용되었기 때문에, 차제에 투표방식을 전면적으로 검토해서 투표할 용의가 있다면 누구나 쉽게 투표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이동투표소, 사전투표, 우편투표 등은 물론이고,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 않도록 조건을 엄밀하게 정한 전제 위에서 팩스 투표나 대리 투표를 허용하는 방안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투표편의가 그처럼 확장되어야 불참자에 대한 제재가 정당화될 수 있다.


아울러 나는 이번에 선거법을 개정한다면 반드시 지방선거에 관한 사항들은 지방의 조례로 위임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지방선거에 불참하는 사람들에 대한 규제 여부는 각 지방의회에게 맡기면 될 것이다. 정치판에 대해 실망이 큰 사람일수록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견들을 개진해주면 제도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 http://blog.hani.co.kr/dongcpark에도 실렸습니다.

2009.02.09 09:25ⓒ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blog.hani.co.kr/dongcpark에도 실렸습니다.
#의무투표 #선거제도 #참정권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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