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방문 앞의 아주머니, "마사지 받을래?"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기 34] 도보여행 34일(바크말소이 -> 지작)

등록 2009.02.18 17:58수정 2009.02.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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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컨테이너 뒤쪽 언덕위 탁트인 경치가 보인다

컨테이너 뒤쪽 언덕위 탁트인 경치가 보인다 ⓒ 김준희


간밤에 비가 내렸지만 오늘 아침에는 맑게 개었다. 좁지만 아늑한 컨테이너에서 편안하게 푹 자고 일어났다. 이 컨테이너에는 별도의 화장실이 없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컨테이너 뒤쪽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온통 황무지인 그곳은 사방이 화장실이나 마찬가지다. 올라가기 편하게 계단처럼 길을 만들어 두기까지 했다.

화장실에 갈 용무도 있는데다가, 언덕위에 올라가면 아무래도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나는 카메라를 들고 아침 일찍 그 위로 향했다. 오전 6시. 일찍 일어난 자스루벡은 장사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언덕위로 오르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발을 헛디디면 밑으로 주르륵 미끄러질것만 같다. 혹시라도 한밤중에 화장실에 갈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조심하면서 언덕위로 올라왔더니 역시 탁트인 경치가 펼쳐진다. 황무지 사이로 포장도로가 뚫려있고 저 멀리 도시가 보인다. 저 곳이 내가 지나왔던 사마르칸드인지도 모르겠다.

황무지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몇장 찍고 다시 컨테이너로 내려왔다. 그러자 자스루벡이 뜨거운 녹차와 꿀을 권한다. 그 녹차를 마시면서 어제 먹다가 남긴 빵도 함께 먹었다. 이것이 아침식사나 마찬가지다.

나는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양말을 신고 어제 다쳤던 상처부위를 점검해 보았다. 붓기가 가라앉았고 며칠 지나면 아물것도 같다. 흉터자국이야 남겠지만 그게 뭐 대수일까. 배낭과 작은 가방을 함께 꾸리고 있는데 자스루벡이 말한다.

"꼼파스(나침반)?"

내 배낭에는 온도계가 붙어있는 나침반이 매달려있다. 키질쿰 사막을 통과할때 한낮의 기온이 얼마나될까 궁금해서 한국에서 준비해온 것이다. 이 온도계겸용 나침반은 사막을 통과한 다음부터는 거의 쳐다볼 일이 없었다. 자스루벡이 거기에 관심을 갖는 모양이다.


나는 짐을 모두 꾸리고나서 그 나침반을 떼어 자스루벡에게 기념으로 주었다. 자스루벡이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나침반이나 온도계 볼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물건을 볼때마다 당분간은 내가 생각나지 않을까. 한국에서 온 여행자가 이 컨테이너에서 하룻밤 자고 갔다는 사실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내가 한국에 가서도 자스루벡을 추억하듯이.

꿀 파는 친구 자스루벡과 헤어지고


a 지작 가는 길 황무지가 계속 나온다.

지작 가는 길 황무지가 계속 나온다. ⓒ 김준희


a 지작 가는 길 길 옆으로 민둥산이 늘어서있다.

지작 가는 길 길 옆으로 민둥산이 늘어서있다. ⓒ 김준희


아침 7시. 이제 지작으로 출발이다. 자스루벡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왜 이리도 아쉬운지. 하긴 그동안 현지인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고 나오는 아침이면 늘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은 그 감정이 좀더 특별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작은 컨테이너에서 빈약한 손전등 불빛에만 의지한채 둘이 공책에 그림을 그려가며 많은 대화를 하고 밤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남은 일정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현지인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어젯밤은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도보여행하면서 좋았던 날을 꼽으라면 아마 어제가 1, 2위를 다투게 될 것 같다.

지작으로 가는 길은 꽤나 구불구불하다. 황무지 사이에 뚫린 길을 빙돌아서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거기서 지작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길 양쪽으로는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이 늘어서있다.

혼자하는 도보여행은 어쩌면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일거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고. 하루종일 걷고 어딘가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난다. 하룻밤동안 서로 짧은 인연을 맺고 아침에는 헤어진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이상, 두번다시 서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도보여행을 많이 하려면, 이런 식의 헤어짐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름도 잊혀지고 얼굴도 가물가물해진다. 그리고 당시에 좋았던 기억만이 남는다. 적당히 술 취한 밤에 우즈베키스탄을 회상하면 그때 만났던 사람들도 떠오르고 아마도 이런 생각도 같이 하게 될 것 같다.

'그때 참 좋았는데. 근데 그 녀석 이름이 뭐였더라? 어떻게 생긴 친구였지?'

길을 걸으면서도 자스루벡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30살의 나이에 8살된 아들이 있는 아버지. 처자식은 지작에 두고, 자기는 혼자 이 황량한 도로에서 컨테이너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가장.

"하루에 장사가 얼마나 되?"

정말 궁금했지만 차마 이 질문은 하지 못했다. 왠지 부담스럽고 무례한 질문인것 같아서다. 월수입은 둘째치고 자스루벡은 정말 많은 생각이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젊으니까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나이를 먹어도 저런 생활을 하면 안될텐데. 하긴 길을 떠나는 내 뒷모습을 보면서 자스루벡도 내 걱정을 했을지 모른다.

'저 한국친구, 계속 저렇게 살면 안될텐데. 저 나이가 되도록 결혼도 안하고, 외국으로 싸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면 안될텐데. 언제까지 저렇게 살려고 하지?'

그러니 서로 마찬가지 아닐까?

꼬치구이로 배를 채우고 지작에 도착

a 지작 도착 커다란 호텔에서 하룻밤

지작 도착 커다란 호텔에서 하룻밤 ⓒ 김준희


a 지작 도착 호텔 앞의 동상

지작 도착 호텔 앞의 동상 ⓒ 김준희


한참을 걷다보니 커다란 식당이 보인다. 다리도 좀 쉬어갈겸 배도 채울겸 그 식당에 들렀다. 양고기국이 먹고 싶어서 물어보았더니 없단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짬뽕인 라그만을 주문했더니 그것도 안된단다.

"그럼 뭐 있어요?"

지금은 꼬치구이하고 녹차밖에 없다고 한다. 아침부터 꼬치구이를 먹기는 좀 그런데. 뭔가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지만 모두 안된다니 할 수 없다. 그 집에서 꼬치구이로 배를 채우고 계속 걸었다. 그리고 오후 1시가 넘어서 지작에 도착했다.

지작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작은 호텔이 보인다. 그 건물의 창에는 LG에어컨이 주욱 붙어있다. 하룻밤에 얼마냐고 물었더니 25,000숨(1숨은 한화 약 1원)이란다. 큰 도시인만큼 중심가에도 호텔이 있을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큰길로 나왔다. 도시는 크지만 길은 단순하다. 이 길을 따라서 내려가면 중심가가 나온다.

중심가에는 큰 건물들이 많다. 호텔도 있다. 러시아어 끼릴문자로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붙여놓은 호텔로 들어갔다. 이 호텔은 비교적 저렴해서 하룻밤에 18,000숨이다. 방의 침실은 크고 한쪽에는 거실도 있다. 그런데 화장실이 좀 낡아서 파이프와 세면대에 온통 녹 투성이다. 건물에 끼릴문자가 붙어있는 걸로 봐서 아마 이 호텔은 구소련시절에 지어진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낡은 것도 이해가 된다.

어쨋거나 이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또 그새 날이 흐려졌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것 같은 하늘이다.

"기지드반은 꼬치구이가 최고, 지작에 가면 꼭 삼사를 먹어봐!"

전에 사막에서 만났던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삼사는 우리나라의 군만두 비슷한 음식이다. 기지드반에서는 꼬치구이를 먹어봤으니 이제 지작에서 삼사를 맛볼 차례다. 그래서 밖으로 나왔는데 문을 연 식당이 없다. 지금은 오후 4시인데 식당 문을 열기에는 이른 시간인가.

맛사지를 받으라는 호텔 아주머니

잔뜩 흐린 날씨 때문에 멀리까지 걸어가기도 좀 망설여진다. 중심가를 한바퀴 둘러본 나는 다시 호텔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밖이 어두워지더니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에는 전기가 나갔다. 호텔만 정전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창밖을 보니 도시가 온통 새까맣다. 하늘에 깔린 먹구름 때문에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다. 인구 10만이 넘는 큰 도시에, 비가 내린다고 해서 정전이 되다니!

나는 침대로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아무것도 안하고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것도 여행중에 해볼만한 일이다. 자다깨다를 반복하다보니 다시 전기가 들어왔지만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갑자기 내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방문을 열어보니까 아까 호텔 1층에서 나를 안내해주었던 아주머니다. 그녀는 날 보더니 두손으로 뭔가를 주무르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맛사지?"

당황스러운 웃음이 나온다. 지금 내 몸이 누군가한테 맛사지를 받을 만한 상태가 아니다. 까맣게 탄데다가 제대로 씻지를 못해서 땟국물이 줄줄 흐른다. 그런데 맛사지는 무슨 맛사지? 하긴 몸이 깨끗했다 하더라도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맛사지 필요없어요!"

나는 아주머니를 돌려보내고 침대에 앉았다. 지작에서 맞이하는 심심한 밤이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린다.

a 지작 시내 중심가의 건물

지작 시내 중심가의 건물 ⓒ 김준희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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