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1호 산장지기 하산' 공단 처사 비판여론 '부글'

공단 "건강악화 따른 조치"... 산악인들 "지리산 역사 토사구팽"

등록 2009.02.19 15:05수정 2009.02.1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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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함태식 지리산 피아골 산장지기. 관리공단의 결정에 따라 38년간의 지리산 생활을 마치고 올 4월 하산한다.

함태식 지리산 피아골 산장지기. 관리공단의 결정에 따라 38년간의 지리산 생활을 마치고 올 4월 하산한다. ⓒ 성하훈

38년간 지리산을 지켰던 피아골 산장지기 함태식 선생이 국립공원관리공단(이하 관리공단)의 요청에 따라 올 봄 하산하게 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관리공단을 비판하는 산악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함태식 선생은 1967년 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는 데 기여했고, 1971년 노고단에 산장이 들어서며 산장지기를 자처해 온 인물이다. 198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만들어지면서 노고단에서 피아골로 밀려나기까지 16년간 노고단을 지켰고 이후 피아골 산장에서 22년간 산장지기로 활동해 왔다.

대한민국 1호 산장지기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그는 최근 고령에 따른 문제 등으로 산장을 비워달라는 관리공단의 요청에 따라 4월말 하산을 예정하고 있다.

지난 1월 18일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퍼지기 시작한 함태식 선생의 하산 소식은 이후 방송매체들이 다큐멘터리 형태로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그 파장이 커지는 모습이다. 보도 이후 산악인들의 항의성 민원이 잇따르며 관리공단 측을 곤혹스럽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악인들, "지리산 역사를 토사구팽 시키는 처사" 반응

산악인들은 "함 선생의 하산 소식이 가슴 아프다"면서 "지리산의 역사와 같은 분을 토사구팽 시키려 하는 처사"라며 관리공단의 처사가 유감스럽다는 반응이다.

지난 15일 지리산에서 만난 울산의 김기명씨는 "나도 지리산을 오래 전부터 찾아 함태식 선생을 몇번 뵌 적 있지만 그 분의 상징성은 지리산 그 자체인데, 관리공단이 이런 분을 나이 많다고 귀찮은 존재로만 인식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정민재씨는 지리산 관련 한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통해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역사이신 분인데. 공단의 입장도 있겠지만 지리산에서 함 선생님의 상징성과 피아골의 위치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은별'로 불리는 지리산 관련 커뮤니티의 운영자 황소영씨도 "혼자 산속에 사시는 분을 걱정하는 공단의 처사는 당연하지만 그 연세에 도시에서 자식들과 살긴 어려울 분을 무작정 내려가라고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거세지자 관리공단 측은 함 선생의 하산은 "고령으로 인한 건강 악화에 따른 당연한 조치"라며, 함 선생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사장이 교체되면서 함태식 선생이 내려오게 되는 부분을 의식한 듯 이사장 교체와 함 선생님의 하산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관리공단의 핵심 관계자는 함 선생의 하산 조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연세가 80을 넘으신 그 분은 가족들의 돌봄을 받아야 할 분이다. 그런 분이 산에 혼자 계신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는 스스로를 돌봐야 할 나이시고, 건강도 안 좋으시다. 병환 있으신 분이 산에 계시는 것은 옳지 않다."

또, "지금 이사장은 함 선생과 일면식도 없는 분"이며, "지금이 어느 땐데 내려와라 마라 할 수 있는 세상이냐"면서, "피아골 문제는 조직 체계상 지리산 남부관리사무소 소관이고 모든 권한은 소장이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도 "함 선생 하산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5년 전 참여정부 때부터 나왔다며, 공단 이사장 교체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전임 이사장 재임 시에도 이미 추진되고 있던 일이라는 것.

관리공단 "전부터 결정된 일"- 전임 이사장 "그 분이 왜 내려와야 하나"

a 국립공원 지킴이 발대식 지난해 4월의 국립공원 지킴이 발대식. 당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박화강 이사장이 “지리산 털보영감이 지리산에서 쫓아내야 할 사람이 아니고 그 산의 역사·문화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어 그 문화를 보전·계승 발전시켜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다고 판단, 필요하다면 채용할 계획"임을 밝혔다고 알렸었다.

국립공원 지킴이 발대식 지난해 4월의 국립공원 지킴이 발대식. 당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박화강 이사장이 “지리산 털보영감이 지리산에서 쫓아내야 할 사람이 아니고 그 산의 역사·문화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어 그 문화를 보전·계승 발전시켜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다고 판단, 필요하다면 채용할 계획"임을 밝혔다고 알렸었다. ⓒ 국립공원관리공단


그런데 이 같은 관리공단 측의 입장에 대해 전임 이사장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4월 정부의 압박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한 국립공원관리공단 박화강 전 이사장은 17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 분이 왜 내려와야 하는 것"이냐고 도리어 되물었다. 함 선생의 하산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사장 재임 시) 나이 들어 산장을 지키기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일부 있었고 다른 피아골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분이 지리산을 지켜야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놔둬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지금껏 나이 때문에 못 한 게 뭐가 있나?

함 선생은 지리산 해결사로서도 큰 공헌을 했던 사람이다. 예전에 노고단이 군인들에 의해 훼손됐을 때 정부부처를 찾아가 항의해 시정시키기도 했었다. 지금의 지리산을 있게 한 공이 크다. 그동안 남긴 족적과 공로만 보더라도 그는 지리산의 살아 있는 문화이자 역사다. 이사장이 바뀌고 안 바뀌고를 떠나서 당연히 예의를 갖춰 대접해야 할 분이다."

박 전이사장은 "그런 분을 예우하고자 재임 시 국립공원 지킴이 제도를 만들어 위촉한 것이며, 지킴이들 중 상징성이 제일 큰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립공원은 생태뿐만 아니라 역사까지도 지켜야 할 자원"이라면서 관리공단의 처사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지리산의 문화재와 같은 분을 떠밀리듯 내려오게 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산악인들은 이를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에 따른 문제로 보고 있다. 대선 논공행상으로 이사장에 내려앉은 비전문가가 국립공원의 의미나 역사에 대해 알리 만무하다는 것. 당연히 지리산에서 함태식 선생이 갖는 상징성을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전문가 낙하산 이사장이 지리산 상징성 모를 것"

사실 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은 이런 이유로 내정 당시부터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샀던 인물이다. 특히 환경 관련법('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은 것과 18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 탈락의 전력 등으로 낙하산 논란은 거셌다. 업무와 연관성도 없는 데다 환경 관련법 위반자가 국립공원의 수장이 된 것에 환경단체들의 반발은 당연한 일.

"국립공원 업무는 물론 환경 전문성조차 갖추지 못한 인물이 더구나 환경 관련법마저 어긴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만으로 국립공원을 책임지는 수장이 됐다"는 것이 당시 환경단체들의 지적이었다.

이 때문에 함태식 선생은 관리공단의 하산 결정 통보를 받은 후 "산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내쫓으려 한다"며 한때 소송 등 법적 대응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이 강하게 만류하면서 조용히 내려오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딪혀 봤자 그간의 명예만 손상된다는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함 선생은 "며칠 전 관리공단 이사장을 만났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그동안 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나왔다"면서 "이젠 필요 없으니 내려가라는 것 같아 속은 상하지만 힘 있는 사람들이 내려가라는데 어쩔 도리가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앞서 만난 지리산 남부관리소장은 '자신이 함 선생의 하산을 결정한 것으로 오해하던데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더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공단 측이 하산 결정의 실질 책임자라고 밝힌 박용규 지리산 남부관리사무소장은 "광주에 갔더니 주변 사람들이 방송 등을 보고 내게 그 분 왜 내려오게 하냐고 항의하던데, 함 선생을 만나 오해를 풀었다"며 "나이로 볼 때 아버지와 같은 분이며, 내가 내려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 문제 때문에 이전부터 진행된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

a 피아골 산장 함태식 선생이 산장지기로 22년간 살아온 곳이다. 지리산 남부사무소가 관할하고 있다.

피아골 산장 함태식 선생이 산장지기로 22년간 살아온 곳이다. 지리산 남부사무소가 관할하고 있다. ⓒ 성하훈


지인들 중심으로 모금 등 논의... 28일 피아골 산장서 문화행사 예정

한편 관리공단 측은 함태식 선생을 하산 시키는 데 따른 배려와 관련해 "그 분의 업적은 있다. 하지만 지킴이 외에 따로 경제적인 부분 등으로 예우해 드리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고 잘라 말하고 "현재 지킴이로 활동하고 계시고, 기력이 되신다면 연장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족들이나 주변에서 알아서 챙겨야 할 부분이지 공단이 어떤 특별한 지원을 새로 마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함 선생의 아들 함천주씨는 "아버님이 하산 후 거주할 곳은 아직 마련되지는 않았고, 앞으로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어차피 지리산 주변에 사셔야 하지 않겠느냐. 관리공단 측의 예우가 있으면 감사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요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전했다.

함태식 선생의 거취 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피아골 산장을 자주 찾던 산악인들과 주변 지인들, 지리산권 환경단체 및 문화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모금 운동 등이 이야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우선 오는 28일 피아골 산장에서 함 선생의 그간 노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작은 문화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지리산의 사람들이 뜻을 모아 산악인들과 함께 지리산 큰 어른의 하산을 아름답게 빛내드리겠다는 것이다.
#지리산 #피아골 #함태식 #국립공원관리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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