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자, 자기결정권과 호적정정특별법 제정해야

[주장] 지난 18일 부산지법 '성전환자 성폭행법 강간죄 판결' 긍정적

등록 2009.02.21 13:37수정 2009.02.2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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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성전환자(트랜스젠더)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는 판결이 눈길을 끈다. 지난 18일 부산지법 제5형사부(고종수 부장판사)에서 나온 판결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성전환자 성폭행범에 대해 강간죄를 최초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가정집에 침입해 돈을 훔치고 50대 성전환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모(28)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12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한 판결이다.

 

트랜스젠더 인권활동 단체인 '지렁이'도 19일 성명을 통해 판결 내용을 지지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도 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96년 대법원이 성전환자의 성폭력 범죄에 대해 성염색체, 생식능력 등을 들어 강간을 인정하지 않은 지 10여년만의 새로운 판결이다. 지난 2006년 성전환자 호적정정이 있기는 했지만, 이후 행정기관은 호적정정 사무처리 지침 등을 만들어 사회적 소수자인 성전환자들을 위축하게 만들었다.

 

이런 이유에서 지난 18일 부산지법 판결은 더욱 의미가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성전환자가 태어나면서 주어진 성이 아닌, 한 개인의 성정체성을 인정했다는 점과 피해자의 피해를 바로 바라봐 준 판결이기 때문이다. 특히 96년 염색체와 생식능력 등을 들어 강간을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의 판결과 대조적이라는 점에서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석연치 않는 점도 있다. 성전환자(피해 여성)가 여성으로서 살아왔음을 입증키 위해 사용된 근거들이다. 즉 외형적으로 완벽히 여성화하는 성전환 수술을 마쳤고, 남성과의 이성애적 성행위가 가능하고 성감을 느끼며, 남성과 혼인관계에 있음을 강조한 점 등이다. 이는 긍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에 부정적인 파급력을 불러올 수 있다. 제도적으로 여성이라는 것의 판단 근거를 여전히 해부학적으로 접근했다. 또 이성애 중심적 사고관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는 점이 판결의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강간죄의 객체로서 '부녀'에 피해 여성이 해당됨을 입증하려는 노력에는 강간죄가 부녀만이 당하는 범죄로 계속 한정짓는 한계와 문제점을 전혀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성을 기반으로 하는 폭력과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인정되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을 기반으로 하는 폭력은 단지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폭력의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인간의 행복할 수 있는 권리에 입각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이번 판결의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또한 트렌스젠더 인권활동 단체인 '지렁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캔디(필명)씨의 지적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는 이번 판결에서 성전환자의 강간죄가 집행유예로 판결이 났는데, 성전환자이기 때문에 형량이 가벼워졌지 않나 하고 의구심이 든다면서 일반여성들의 강간죄와 똑같이 법을 적용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호적정정 신청수가 증가하는 것을 볼 때, 성전환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인격체로서 성전환자의 인권을 위해서는 먼저 성전환자 호적정정 특별법 제정이 시급히 요구된다. 성전환자의 자기 정체성 인정과 더 나아가 생식기와 성염색체 유무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삶을 살도록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과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률 제정이 필요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20일 우리 나라 정신적 지도자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장례식이 열렸다. 그가 평소 쓰던 말 "고맙습니다. 사랑하십시오"의 의미가 되새겨진다.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성전환자들을 따뜻히 보듬어주고 안아 주는 지혜를 펼쳐 보이면 어떨까. 바로 생전 고 김 추기경이 말한 '사랑과 용서'의 지혜가 새삼 떠오른다.

2009.02.21 13:37ⓒ 2009 OhmyNews
#성전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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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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