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25) 악(惡)

[우리 말에 마음쓰기 580] ‘연상(聯想)’과 ‘떠올리기-생각하기’

등록 2009.03.15 15:45수정 2009.03.1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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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악(惡)

.. 눈물로 기억하려무나. 악(惡)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 악이다 ..  《공선옥-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 말,2003) 246쪽


'기억(記憶)하려무나'는 '새겨 놓으려무나'나 '알아 놓으려무나'로 손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있는 것이 아니다"는 "있지 않다"로 다듬습니다.

 ┌ 악(惡) :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나쁨
 │   - 선과 악 / 악에 물들다 / 너희들은 사회를 좀먹는 악의 무리들이다
 │
 ├ 악(惡)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다
 │→ 나쁜 것은 딴 데 있지 않다
 │→ 몹쓸 놈은 딴 데 있지 않다
 │→ 나쁨은 딴 데 있지 않다
 └ …

'착할 선(善)'과 '나쁠 악(惡)'이라는 한자입니다. 둘을 붙여 '선악'으로 쓰기도 합니다. '선인'과 '악인'을 말하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선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악자'라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선행'과 아울러 '악행'이라는 말을 듣는 한편, '선처'를 들으나 '악처'를 듣지는 못합니다.

 ┌ 착하다 / 나쁘다
 ├ 좋고나쁨 / 착하고나쁨
 └ 착한이(착한사람) / 나쁜이(나쁜사람)

착한 사람을 보면 '착하다'고 하면 될 테지만, '선하다'라는 말을 쓰는 분들은, "선한 사람이니 선하다라 말한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쁜 사람을 보면 '나쁘다'고 하면 될 터이지만, '악하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니 악하다고 말하지" 하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어요.


좋은 일과 궂은 일을 아울러 말하자면 '좋고궂음'으로 가리켜도 되지 싶은데. 착한 사람을 가리키는 한 낱말로는 '착한이'라는 말을 지을 수 있고, 나쁜 사람을 가리키는 한 낱말로는 '나쁜이'라는 말을 지을 수 있는데.

 ┌ 악에 물들다 → 나쁨에 물들다 / 나쁜 길에 물들다
 └ 악의 무리들이다 → 나쁜 무리들이다 / 못된 무리들이다


우리들은 우리 말로 이야기 나누기가 어색하다고 느끼나요. 우리 말로 새 낱말을 짓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나요. 누구나 알면서 흔히 쓰는 말로는 우리 문화를 일굴 수 없다고 느끼나요. 쉬운 말은 깨끗한 말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삶터를 보듬어 줄 말도 못 찾고 마는가요.

ㄴ. 연상(聯想)

.. 풍요한 자연의 기록은 그리운 엄마에 대한 연상(聯想)이기도 합니다 ..  《일본 가톨릭 아동국 엮음/이선구 옮김-이런 사람이 되기를》(성바오로출판사,1972) 116쪽

"풍요(豊饒)한 자연의 기록(記錄)"은 무엇을 가리킬까 헤아려 봅니다. "넉넉한 자연을 적바림하는" 일을 가리킬까요. "너르고 푸진 자연을 담아내는" 일을 가리킬까요. 여러모로 두루뭉술하면서 흐리멍덩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뜻이나 느낌이 또렷하게 살아나도록 글쓴이가 고쳐서 새롭게 적어 주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적어 놓은 글로도 넉넉하다고 느낄 분은 틀림없이 있을 테며, 비록 이 보기글이 1970년대에 쓰여졌다고는 하더라도, 2000년대를 넘어선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말투가 아닐까 싶습니다.

 ┌ 연상(聯想) :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현상
 │   - 연상 작용 / 해가 솟아오르는 장면이 연상된다 /
 │     그의 외모는 한마디로 인도의 간디가 연상되는 그런 몰골이었다
 │
 ├ 그리운 엄마에 대한 연상(聯想)이기도 합니다
 │→ 그리운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 그리운 엄마를 떠올리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 …

'잇달아 떠오름'을 뜻하는 말을 쓰고프다고 해서 한자로 '聯想'을 적으면 한결 잘 알아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잇달아 떠오른다'로 적으면 그만이지 싶은데요. 한자말 '聯想'을 똑똑히 알아채면서 말뜻과 말느낌과 말맛을 올바르게 받아들일 사람이 우리 나라에 얼마나 될까요. 읽거나 새기거나 헤아리기에 까다로운 낱말보다는, 읽고 새기고 헤아리기에 좋은 낱말을 찾아서 써 주어야 한결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데 이런 한자말을 놓고도 어김없이 '잘만 알아듣던데?' 하면서 거리끼지 않고 쓰는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 한자말을 모르는 사람이 잘못이지, 모르면 배워야지?' 하는 분도 퍽 있으리라 봅니다. 이와 달리,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게 익히고 알맞게 쓰도록 꾸준히 배우고 익히는 분은 얼마 없다고 느낍니다.

 ┌ 연상 작용 → 불러일으키는 일 / 불러일으킴 / 떠오르게 함
 ├ 솟아오르는 장면이 연상된다 → 솟아오르는 모습이 떠오른다(생각난다)
 └ 간디가 연상되는 → 간디가 떠오르는 / 간디가 생각나는

보기글에서는 '잇달아 떠오르다'로 적어도 되고, '생각하다'나 '떠올리다'를 넣어도 됩니다. 보기글을 통째로 다듬어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적어 보아도 됩니다.

언제나처럼 우리 하기 나름이면서, 우리가 마음을 쏟기 나름입니다. 남들이 다 알아듣는다고 손쉽게 생각해 버리고서 어영부영 쓸 수 있지만, 남들이 제대로 못 알아들을까 싶어 더 살피고 손질하고 가다듬고자 할 수 있습니다.

한자말을 좋아하니 묶음표로 한자를 넣기도 하고 아예 묶음표 없이 한자를 드러낼 수 있으나, 한자를 모를 사람을 헤아리면서 한글로 또렷하고 환하게 드러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영어 배운 티를 내고자 영어를 자주 섞어 쓰는 사람이 있듯, 한자 아는 티를 내려고 한자를 묶음표로 넣을 수 있을 텐데, 겉으로 티내지 않고 속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고자 살갑고 수수한 낱말을 찾고 곱씹고 북돋울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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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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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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