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임신한 남자'가 거리로 나선 이유

[풀뿌리가 정치를 바꾼다 ⑨- 인터뷰] 시흥시장 보궐선거 '시민후보' 최준열씨

등록 2009.03.31 16:54수정 2009.03.3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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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소수 기득권 세력이 주도해 온 정치, 규제 완화와 개발주의 일변도의 정치는 유권자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특히 지역정치, 즉 '풀뿌리정치'가 전횡과 부패, 이권 등으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다잡기 위해서는 풀뿌리부터 흔들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풀뿌리 정치를 살리기 위해 그간 정치의 대안을 고민해온 시민사회 모임 '좋은정치 씨앗들'과 공동으로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독자와 시민기자 여러분의 많은 제언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4.29 시흥시장 보궐선거에 10여 명의 예비후보들이 난립한 가운데, 일찌감치 무소속 후보로 나선 이가 있다. 최준열(50)씨가 바로 그 주인공. 그는 반이명박 세력 결집을 위해 진보세력들의 단일화를 요구하며, 무소속 대신 '시민후보'라는 이름을 걸었다. 최 후보는 시흥에서 19년 동안 산부인과 의사로 일해 왔다. 그런 그가 왜 시흥시장 후보로 나섰을까. 지난 27일 선거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2월 15일, 4.29 시흥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한 최준열 무소속 예비후보는 현재 중앙산부인과 의사이다. 그는 지난해 뇌물수수로 인해 물러난 이연수 시흥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을 진행할 때도 공동대표를 맡았다. 시흥YMCA 초대 이사장, 소래문학회 회장 등 시민단체 및 문학회 활동이 그의 주요 이력이다.

처음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그에게 요즘 생활이 어떤지 물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한지 6주째. 최준열 후보는 "시간이 굉장히 촉박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시간이 많이 있더라"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시흥시의 거점인 신천동 삼미시장과 정왕동 이마트, 시화병원, 각 아파트별 노인정을 돌며 인사를 하고 있다.

명함 던져버린 시민의 한마디 "시장 필요 없어"

시흥시 시장 후보로 출마한 최준열씨  시민단체 지지 후보로 출마한 최씨가 시장을 돌며 지역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시흥시 시장 후보로 출마한 최준열씨 시민단체 지지 후보로 출마한 최씨가 시장을 돌며 지역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김영주


최 후보는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분위기를 느낀다"면서도 "분노에 차있는 시민들에게서 냉랭함마저 감지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3월 22일 정왕동 이마트 앞에서 명함을 돌릴 때였는데, 한 시민에게 명함을 건넸더니 '시장 필요 없어' 하며 눈앞에서 명함을 던져버렸어요. 땅에 떨어진 명함을 주우며 비참함을 느꼈죠. 그 시민은 저만치 있는 수행비서가 전해준 명함도 마찬가지로 던져버리더군요. 수행비서가 따라가서 한참 설명을 했더니 '한나라당 후보인 줄 알았다.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커피 한 잔을 들고 와서는 저에게 인사를 하더라고요."

최 후보는 시인이자 수필가로서 능력을 살려 선거가 끝나면 책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느꼈던 감정들을 모아서 말이다. 그는 <시장, 필요 없어>라는 제목을 생각해 봤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단다.

"같은 날 있었던 일인데,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명함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앨범에 넣어 놓으라며 명함을 주었더니 길을 가며 명함을 읽어보던 여학생들이 다시 돌아와 악수를 청하더라고요. 그 여학생이 '꼭 시장이 되라'며 격려를 해 줘서, '너희들도 나처럼 꿈을 가지라'고 격려를 했죠. 그러자 '아저씨가 시장이 되면 취직을 시켜주세요'하고 말하더군요. 요새 하도 취업문제를 이야기하니까, 초등학생까지 그런 걱정을 하는 거지요."


최준열 후보는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1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우호적이던 한나라당의 공격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한 후보가 선관위에 '시민후보'라는 이름을 쓰는 것과 관련해 질의를 한 상태여서, 최준열 선거 캠프에서도 역시 경기도 선관위와 중앙선관위에 '시민후보 명칭 사용 여부'를 질의한 상태이다.

예전에는 한나라당이 민주당 표를 잠식할 수 있는 후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만두시면 안 된다"라며 오히려 띄워주는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인사라도 할라치면 눈빛이 냉랭하게 변했다는 게 최 후보의 설명이다. 그런 점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견제 받는 시민 후보

 시흥시장 후보로 출마한 최준열씨

시흥시장 후보로 출마한 최준열씨 ⓒ 김영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시흥 시민들은 새로운 시장의 자질로 청렴도와 행정력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최 후보는 청렴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행정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민선시장은 행정가가 아닙니다. 지방자치시대의 시장은 시민들과 소통하고 권력을 갖지 않는, 일반 시민들이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행정력과는 관계가 없지요. 민선시장이 행정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시장이 보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일부에서는 시장이 공무원들을 장악해야 한다고 하는데, 지금 시대는 공무원들이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창의적으로 시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합니다. 요즘 공무원들은 엘리트이면서 달인입니다. 제가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는 시흥시 공무원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부패 시장 때문에 공무원들 전체가 부도덕적이라고 매도됐지만, 그건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공무원들도 이번만큼은 깨끗한 시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공무원들이 드러내 놓고 내색은 안 하지만 느낌이 오거든요."

선거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민선시장 4명이 모두 사법 처리되다 보니 시민들은  다 똑같은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놈이 그놈이고, 시장 되면 다 변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 벽을 허물기가 쉽지 않습니다. 좀 억울한 생각도 듭니다."

쉽지 않은 정치, 그렇지만 의사인 그가 쉽지 않은 결정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작년 12월경입니다. 사람들은 주민소환운동이 실패했다고 하지만, 4만6천여 명이 서명하는 기적을 만들었기 때문에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그것으로 끝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이르렀죠. 주민소환운동을 통해 시장의 비리를 엄단해야 한다는 뜻도 있었지만, 깨끗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시장이 되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 절반을 완성하기 위해서 출마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처음 출마결심을 할 때 지지해 준 것은 시흥의 시민단체였고, 최근에는 민주노동당 시흥시위원회, 진보신당 시흥시당원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최준열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합에서도 성명서를 통해 "부정부패를 낳은 한나라당은 후보를 내지 말 것과 민주당은 단일화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서울 시민단체에서도 지지의사를 밝힐 계획이다.

"주민소환 운동의 성과를 이어가고 싶었다" 

 그는 이연수 시장 주민소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이연수 시장 주민소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김영주


최준열 후보는 '중앙산부인과 최준열'로 더 지역에서 알려져 있다. 하루는 시흥시 신천동 삼미시장 앞에서 명함을 돌리는데 한 어머니가 "너를 낳아준 의사란다"는 말을 아들에게 했더니, 아들이 명함을 보관하겠다며 받아갔단다.

한 지역에서 19년 동안 진료를 했기 때문에 그가 받은 아기 수가 어림잡아 1만5천여 명에 이른다. 자기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에게 본인이 쓴 <세상을 임신한 남자>를 선물하기도 했었다.

최준열 후보는 정왕동 송운초등학교 학부모총회에 인사차 들렀는데, 한 학부모가 책을 가져와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면서 "시장이 된 것보다 더 행복했다"고 말했다. 소래중학교 앞에서도 어느 여학생이 명함을 보고 "어, <세상을 임신한 남자> 우리 집에도 있는데"라고 하자 그 말에 보람을 느꼈다고.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한나라당이 책임지지 않는 모습에 순수한 마음으로 후보단일화를 제안했는데, 상대방은 저를 주저앉히려고만 하는 것 같습니다. 순수한 마음이 왜곡되고, 상대방이 진정성이 없어 더 이상 단일화 후보 논의를 요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먼저 단일화 후보 논의를 요구할 경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의 의논해 결정할 생각입니다. 민주당과 단일화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함께 하기로 한 만큼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봅니다. 창조한국당도 연대의 뜻을 밝힌 상태고요."

의사생활을 한 지 27년. 정치를 하게 된 그에게 지금의 결정에 후회는 없는지, 궁금했다.

"의사 생활을 시작할 때 50세가 되면 은퇴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고, 뜻하지 않게 정치를 대하면서 시민들의 마음을 진실로 느끼게 됐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경험이자 자산입니다."

그래서 여러 공약 중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깨끗한 시정, 부정부패 척결'이며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시민들의 고단한 삶을 지켜줄 수 있는 지원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준열 후보는 1999년 시흥YMCA 초대 이사장, 2005년 시흥시민뉴스 초대 발행인 등 뭔가 처음 시작하는 일을 좋아한다. 쉬운 것에는 도전할 이유가 없다는 그의 철학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무소속 후보가 선거에서 당선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도전했습니다. 어려울 때 이기기 위해서 저 같은 사람도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어느 후보보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자, 의사이자, 혁명가인 체 게바라를 존경하는 이유도 제가 혁명가는 아닐지라도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꼭 투표를 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꿈이 꼭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시흥시 보궐선거에 출마한 다른 후보도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시흥시 보궐선거에 출마한 다른 후보도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풀뿌리 #시흥시 #지방선거 #최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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