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38) 현지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596] ‘현재화되다’와 ‘드러나다’

등록 2009.04.01 16:29수정 2009.04.0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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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현지화

 

.. 현지 사무소장과 비서인 까롤리나, 그리고 현지화가 많이 진행된(?) 선배 단원들과 인사를 했다 .. 《강제욱,이명재,이화진,박임자-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포토넷,2008) 27쪽

 

 '진행(進行)된'은 '이루어진'이나 '된'으로 다듬습니다. '현지(現地)'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이곳'으로 손보아도 괜찮습니다.

 

 ┌ 현지화(現地化) : 일을 실제 진행하거나 작업하는 곳의 특성에 맞춤

 │   - 그 나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현지화 전략의 기본이다

 │

 ├ 현지화가 많이 진행된

 │→ 현지 사람이 거의 다 된

 │→ 이 나라 사람이 거의 다 된

 │→ 이 나라 사람과 다를 바 없는

 │→ 이 나라 사람처럼 살아가는

 └ …

 

 고향이 있으나 고향 아닌 곳에서 무엇인가 오래도록 해야 할 때 으레 '현지'를 이야기합니다. 고향에서 태어나 자라던 대로 다른 곳에 가서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만, 사람 사는 곳은 같으면서도 다르기에, 다 다른 사람들 삶이 엇갈리거나 부딪히곤 합니다. 고향에서도 부딪힐 일이 있을 텐데, 고향 아닌 곳에서는 말씨가 다르고 입성이 다르며 물과 밥이 다르기도 합니다. 바닷가에서 살던 대로 산마을에서 살 수 없고, 도시에서 지내던 대로 시골에서 지낼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살던 대로 일본이나 대만이나 버마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필리핀에서 살자면 필리핀사람이 쓰는 말을 써야 하고, 베트남에서 살려면 베트남사람이 쓰는 말을 함께 써야 합니다.

 

 ┌ 그 나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현지화 전략의 기본이다

 │

 │→ 그 나라 말을 쓰는 일은 그 나라에 파고드는 밑바탕이다

 │→ 그 나라 말을 써야 그 나라로 스며들 수 있다

 │→ 그 나라 말을 써야지 그 나라에 녹아들게 된다

 └ …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마땅히 한국말을 써야 합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한국말을 쓰는 일이란 아주 스스럼없을 뿐 아니라 틀림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바로 우리들이 발딛고 있는 이곳, 한국에서 어떤 말을 쓰고 있을까요. 우리들이 쓰는 한국말은,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한국 이웃과 어울리면서 주고받기에 알맞습니까. 한국땅 넋을 북돋우고 한국사람 마음을 어루만지며 한겨레 삶터를 가꾸는 길에 아름답거나 넉넉하도록 말을 하거나 글을 쓰고 있습니까.

 

 

ㄴ. 현재화되다

 

.. 미소공동위원회는 사실상 결렬되고, 미국ㆍ소련의 대립은 남ㆍ북의 대립으로 현재화되기 시작했다 ..  《이중연-책, 사슬에서 풀리다》(혜안,2005) 84쪽

 

 '결렬(決裂)되고'는 '깨지고'로 다듬고, "현재화(現在化)되기 시작(始作)했다"는 "현재화되었다"로 다듬습니다. '사실상(事實上)'은 '-상'만 덜어 '사실'로 손보아도 되고, '송두리째'나 '깨끗이'로 손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 현재화 : x

 │

 ├ 남ㆍ북의 대립으로 현재화되기 시작했다

 │→ 남ㆍ북 대립으로 하나하나 드러나게 되었다

 │→ 남ㆍ북 대립으로 차츰 나타나고 있었다

 │→ 남ㆍ북 대립으로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었다

 └ …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은 '현재화'입니다. '-화'붙이 말 가운데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은 얼마 안 됨을 생각하면서 보기글에서는 어떤 뜻으로 쓰였는가를 곰곰이 헤아립니다. 글흐름을 본다면 "미소 대립은 남북 대립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라든지 "미국과 소련이 맞서면서 남북이 맞서는 꼴로 나타나고 있었다"라든지 "미국과 소련이 맞서면서 남북이 맞서는 모습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나타난다"나 "지금 보인다"로 쓰인 '현재 + 화 + 되다'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리하여, 이런 쓰임새 그대로 글을 적었다면, 글쓴이뿐 아니라 이 글을 읽을 사람들 또한 한결 알아보기 쉽지 않았으랴 생각합니다.

 

 ┌ 눈에 뜨이다

 ├ 물위로 드러나다

 ├ 하나둘 나타나다

 └

 

 미소 대립이 남북 대립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글월을 다시금 곱씹습니다. 미소가 맞서서 남북 또한 맞서게 되었다는 소리이니, 맞섬이 저쪽에서 이쪽으로 '이어졌다'는 소리라고 느낍니다. '옮아왔다'는 소리이고 '옮아갔다'는 소리이며 '번졌다'는 소리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타났다'나 '드러났다'나 '보여지다'나 '불거지다' 같은 낱말을 넣어도 괜찮습니다. "미소 대립은 남북 대립으로 옮아왔다"처럼 손질해도 괜찮고, "미소 대립은 남북 대립으로도 불거졌다"로 손질해도 괜찮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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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1 16:29ⓒ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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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외마디 한자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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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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