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29)

[우리 말에 마음쓰기 602] ‘내 자신의 존재’, ‘법률의 존재’ 다듬기

등록 2009.04.07 11:16수정 2009.04.0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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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내 자신의 존재를

 

.. 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좀더 알리고 싶어서죠.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  《하야세 준(그림),야지마 마사오(글)/문미영 옮김-제 3의 눈 (4)》(닉스미디어,2001) 111쪽

 

 "특별(特別)한 이유(理由)는"은 "다른 까닭은"이나 "딱히 다른 뜻은"으로 손봅니다. 또는 뒷말과 묶어, "그밖에 다른 생각은 없어요"나 "그것 말고 다른 생각은 없어요"로 손보아도 괜찮습니다.

 

 ┌ 내 자신의 존재를

 │

 │→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 나라고 하는 사람을

 └ …

 

 세상에 알리고 싶은 '제 모습'이나 '제 얼굴'이나 '제 이름'입니다. 제 모습이나 얼굴이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할 때에는 '나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나 '나라고 하는 사람은 어떠한가'를 말하는 셈입니다.

 

 ┌ 나를 세상에 좀더 알리고 싶어서죠

 ├ 나를 세상에 좀더 보여주고 싶어서죠

 ├ 나를 세상에 좀더 드러내고 싶어서죠

 └ …

 

 한 마디로 하면 "내가 누구인지 세상에 좀더 알리고 싶어서죠" 하고 이야기하는 보기글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란 "내가 어떤 사람인지"라는 이야기이며, "나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모습인가를 알리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외치고 싶다는 이야기인 가운데, "내 모습"을 "내 참모습"을 "내 숨겨진 모습"을 온통 드러내고 싶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리하여 이런 이야기 그대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면 한결 낫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듣거나 읽는 쪽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좀더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게 돼요.

 

 말 한 마디도 다가섬이요, 글 한 줄도 다가감입니다. 내 마음을 맞은편으로 다가가도록 하겠다는 움직임이요, 내 뜻을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나누겠다는 매무새입니다. 차근차근 가다듬고 곰곰이 되씹으면서 이야기를 펼칠 수 있으면 더없이 즐겁습니다.

 

 

ㄴ. 법률의 존재

 

.. 그런데 더욱 가공스러운 일은 외국자본이 참여한 기업에 있어서는 노동쟁의를 할 수 없다는 법률의 존재와 현실적인 제약입니다 ..  《지학순-정의가 강물처럼》(형성사,1983) 273쪽

 

 '가공(可恐)스러운'은 '두려운'이나 '끔찍한'이나 '놀라운'으로 다듬습니다. "외국자본(外國資本)이 참여(參與)한"은 "나라밖 돈이 끼어든"이나 "나라밖 돈이 들어간"으로 손보고, "기업에 있어서는"은 "기업은"으로 손봅니다. "현실적(現實的)인 제약(制約)입니다"가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쯤으로 풀어 줍니다.

 

 ┌ 노동쟁의를 할 수 없다는 법률의 존재와

 │

 │→ 노동쟁의를 할 수 없다는 법률이 있고

 │→ 노동쟁의를 할 수 없다는 법률이 있는 데다가

 │→ 노동쟁의를 할 수 없다는 법률이 버티는 데다가

 │→ 노동쟁의를 할 수 없다는 법률에다가

 └ …

 

 사람도 있고 법률도 있습니다. 좋은 법이 있으나 나쁜 법 또한 있습니다. 우리 세상이 좋음으로만 가득하지 않으니, 법률에서도 좋은 법으로만 가득하지는 못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나쁨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으니, 법에서도 이러한 나쁨이 시나브로 스며드는지 모릅니다. 자꾸자꾸 이익 얻기에만 마음 기울이는 우리들이다 보니까, 이와 같은 사람이 만들어 다스리는 법마저 어느 한편으로 쏠리거나 비틀려 있는지 모릅니다.

 

 법도 법이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옳게 추스르면서 다독여 나갈 수 있어야, 비로소 법이 법다이 뿌리내리면서 사람 위에 올라서지 않고 사람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옳고 바른 사람이 되어야 법도 옳고 바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옳고 바른 사람이 된다면, 우리가 나누는 말과 글은 저절로 옳고 바른 말과 글로 달라지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직까지 우리 스스로 옳은 사람이 못 되니 옳은 말을 못하고, 우리 스스로 바른 사람이 못 되니 바른 글을 못 쓰지 않느냐 싶어요.

 

 ┌ 노동쟁의를 할 수 없다는 법률이 가로막는데다가

 ├ 노동쟁의를 할 수 없다는 법률이 버젓이 있고

 ├ 노동쟁의를 할 수 없다는 법률로 막혀 있고

 ├ 노동쟁의를 할 수 없다는 법률이 너무 단단하고

 └ …

 

 말이란 삶이라고 느낍니다. 내가 살아가는 대로 말이 나온다고 느낍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이 나오는구나 싶어요. 내가 좋은 마음을 늘 고이 품고 있는데 얄딱구리한 말이 나올 수 없어요. 내가 따뜻한 마음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데 짓궂은 말이 나올 턱이 있나요.

 

 마음을 다스리면서 말을 다스리게 됩니다. 매무새를 추스르면서 말을 추스르게 됩니다. 생각을 여미면서 말을 여미게 됩니다. 삶을 북돋우면서 말을 북돋우게 됩니다.

 

 제가 바라보기에 우리네 말과 글이 뒤틀린 가장 큰 까닭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이며 매무새며 생각이며 삶이며 엉망진창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올바로 일으키고, 우리 매무새를 알뜰히 가꾸며, 우리 생각을 슬기롭게 다지는 가운데, 우리 삶을 아름다이 돌볼 수 있다면, 우리네 말과 글이란 늘 싱싱하고 어여쁘고 살갑고 곱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 바치는 땀방울이 없으니, 우리 말에도 아무런 땀방울을 안 바치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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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7 11:16ⓒ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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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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