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95)

― ‘누군가의 숨소리’, ‘나라 밖의 사정’, ‘뒤죽박죽의 감정’ 다듬기

등록 2009.05.12 19:55수정 2009.05.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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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누군가의 헐떡거리는 숨소리

 

.. 누군가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웅이를 숨쉬게 했다 ..  《최연식-웅이의 바다》(낮은산,2005) 127쪽

 

 아이들이 읽을 책을 쓰는 분이라면 자기가 하는 말 한 마디도 더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끼리 나누던 말버릇이나 글버릇 그대로 글을 쓴다면 아이들한테는 끔찍한 독약을 마시라는 소리와 같다고 봅니다.

 

 ┌ 누군가의 헐떡거리는 숨소리

 │

 │→ 누군가 헐떡거리는 숨소리

 │→ 누군가가 헐떡거리는 숨소리

 └ …

 

 '-의­'만 덜면 딱 좋군요. "누군가 헐떡거리는 숨소리"로. 토씨 하나 넣고 싶다면 '-가'를 넣어 "누군가가 헐떡거리는 숨소리"로 적으면 되고요. 그런데 '-가'를 넣으면 바로 뒤에 '숨소리가'처럼 되니까, "누군가가 헐떡거리는 숨소리는 옹이를 숨쉬게 했다"처럼 다듬어 줍니다.

 

 아이들이 읽을 글인 만큼, 아이들이 문학 작품 읽기만으로 그치지 않고 어른(어린이문학을 하는 사람)들 말투와 말법도 알게 모르게 배우고 있음을 헤아려 주면 좋겠어요. 좋은 줄거리 못지않게 좋은 말과 말투도 깊이 살피고 헤아리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ㄴ. 나라 밖의 돌아가는 사정

 

.. 그러므로 나라 밖의 돌아가는 사정을 한발 뒤늦게 알게 되거나 또는 한 단계 거치는 과정에서 잘못 전해지는 수가 많다 ..  《와타나베 츠토무/육명심 옮김-사진의 표현과 기법》(사진과평론사,1980) 3쪽

 

 "잘못 전(傳)해지는 수가 많다"라 적어도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 알려지는 수가 잦다"나 "잘못 알려지곤 한다"처럼 다듬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흔히 잘못 알려지곤 한다"나 "으레 잘못 알려지기 일쑤이다"처럼 다듬어도 괜찮을 테고요.

 

 ┌ 나라 밖의 돌아가는 사정을

 │

 │→ 나라밖에서는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 나라밖은 어찌 돌아가는지를

 │→ 나라밖 흐름은 어떠한지를

 │→ 나라밖은 어떠한가를

 │→ 나라밖에서는 어떠한지를

 └ …

 

 보기글은 "나라밖은 어떠한지"라고 적어도 되는군요. "나라밖에서는 어떠한지"로 적어도 됩니다. 사진 이야기를 하는 자리이니, "나라밖 사진 문화는 어떠한지"나 "나라밖 사진밭은 어떠한가"로 적어도 어울립니다.

 

 '나라밖'은 아직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 않은 낱말입니다. 그래서 '나라 밖'으로 띄어써야 알맞다고 할 텐데, 한자말 '국내-국외'를 다듬어 '나라안-나라밖'으로 쓰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차근차근 가다듬고 하나하나 추스릅니다.

 

 

ㄷ. 뒤죽박죽의 감정

 

.. 그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해묵은 감정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뒤죽박죽의 감정이 바람이 되어 불어올 땐 휑하니 밖으로, 밖으로 나돌게 되는 것이다 ..  《임영인-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삶이보이는창,2009) 71쪽

 

 '감정(感情)'은 그대로 둘 수 있다지만, '마음'이나 '느낌'으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나돌게 되는 것이다"는 "나돌게 된다"나 "나돌도록 이끈다"로 다듬습니다. "그 모든 것이"는 "그 모두가"로 손질해 줍니다.

 

 ┌ 뒤죽박죽 섞여 있는 감정 (o)

 └ 뒤죽박죽의 감정 (x)

 

 보기글을 살피면, 앞에서는 "뒤죽박죽 섞여 있는 …… 감정"을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뒤에서는 "뒤죽박죽의 감정"을 말합니다. 둘은 얼마나 다른 글월일까요.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써도 괜찮은 글월인 셈일까요.

 

 앞 글월을 살피면서, "뒤죽박죽의 감정"처럼 적는 글월에서는 토씨 '-의'가 "섞여 있는"을 가리킴을 알게 됩니다. 또는, "섞여 있는 해묵은"을 가리킴을 깨닫게 됩니다.

 

 ┌ 뒤죽박죽 엉킨 마음

 ├ 뒤죽박죽 얼키고 설킨 마음

 ├ 뒤죽박죽 꼬인 느낌

 ├ 뒤죽박죽 뭉친 느낌

 └ …

 

 앞 글월과 뒷 글월을 좀 다르게 적고 싶었다면, 뒤에서는 '엉킨'을 넣든 '꼬인'을 넣든 다른 낱말과 말투를 찾아서 넣어 줍니다. '괴로운'을 넣어도 되고, '짜증스러운'을 넣어도 되며, '답답한'을 넣어도 됩니다.

 

 우리 느낌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가장 알맞는 글월을 돌아봅니다. 우리 마음이 어떠한가를 헤아리면서 가장 걸맞는 글투를 곱씹습니다. 하나씩 차근차근 돌아보고 곱씹으면 길이 열립니다. 말길이 트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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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9:55ⓒ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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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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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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