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 '추모미사'에 참례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록 2009.05.15 14:11수정 2009.05.1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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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천주교 열사들의 영정 천주교신자 민주열사 열 아홉 분의 영정을 처음으로 대하며, 지금껏 모르고 살아왔던 죄스러움에 더욱 뜨거운 마음일 수 있었다.

천주교 열사들의 영정 천주교신자 민주열사 열 아홉 분의 영정을 처음으로 대하며, 지금껏 모르고 살아왔던 죄스러움에 더욱 뜨거운 마음일 수 있었다. ⓒ 지요하

▲ 천주교 열사들의 영정 천주교신자 민주열사 열 아홉 분의 영정을 처음으로 대하며, 지금껏 모르고 살아왔던 죄스러움에 더욱 뜨거운 마음일 수 있었다. ⓒ 지요하

 

'2009년 천주교 열사 합동 추모미사'라는 큰 이름 밑에 '용산 참사 희생자와 함께 부활하는 열사 추모미사'라는 작은 이름이 겉장에 인쇄되어 있는 미사안내 책자 한 권을 손에 집어드는 순간, 저 1970년대 중·후반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이며 명동성당의 풍경이 아슴히 떠올랐다.

 

기독교회관 2층 대강당에서는 금요일 저녁마다 '박정희 대통령의 회개를 위한 금요기도회'가 열리곤 했다. 거기에서 많은 저명 인사들을 보았다. 함석헌 선생을 본 기억도 있고, 오늘의 '변절과 노추(老醜)의 대명사'인 김동길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도 있다.

 

명동성당에서 문익환, 문동환, 박형규 목사 등을 보면서 천주교와 개신교가 같은 '그리스도교'임을 실감하기도 했다. 명동성당에서 처음 스님들의 모습을 보았던 기억도 아련하다.

 

그때 기독교회관과 명동성당 집회에서 접하게 되는 유인물들을 알뜰히 챙기곤 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 유인물들을 소중히 간수하면서 훗날 소설 자료로 활용하리라 생각했다.

 

a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정 천주교신자 민주열사 추모미사 자리에는 용상참사 희생자들의 영정도 함께 모셔졌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정 천주교신자 민주열사 추모미사 자리에는 용상참사 희생자들의 영정도 함께 모셔졌다. ⓒ 지요하

▲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정 천주교신자 민주열사 추모미사 자리에는 용상참사 희생자들의 영정도 함께 모셔졌다. ⓒ 지요하

 

하지만 세월과 생활의 전전(轉轉) 속에서 사과상자 안에 가득했던 그 유인물들은 모두 유실되고 말았다. 그 유실은 단순한 상실감과 아쉬움만으로 그치지 않는 이상한 죄의식 같은 것을 내게 알게 모르게 가지게 했다.

 

기독교회관과 명동성당에서 '민주'라는 이름과 함께 접하게 되는 유인물들을 떨리는 가슴으로 품에 지니고 읽고 했던 청년 시절로부터 어언 30여 년이 흐른 오늘, 나는 또다시 이번에는 '용산참사 현장'이라는 곳에서 '민주'라는 이름과 열사들의 얼굴이 새겨진 미사안내 인쇄물을 손에 들게 된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오는 감회를 지긋이 안으며, 우산을 펴든 채로 인쇄물이 젖을세라 조심하며 겉장부터 찬찬히 살펴보았다. 겉장에는 열 아홉 명 천주교신자 민주열사들의 작은 얼굴사진이 십자가 형태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성서 지혜서의 한 구절이 진한 글자체로 인쇄되어 있었다.

 

의인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더라도, 안식을 얻는다. 짧은 세월 동안 완성에 도달한 그는 오래 산 것과 다름이 없다. 일찍 죽은 의인이 살아남은 악인들을 단죄하며, 젊은 나이에 죽은 의인이 오래 산 악인을 부끄럽게 만든다. (지혜서 4장 7절, 13절, 16절)

 

a 빗속의 사제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부활시기 흰색 제의를 입은 사제들이 차례로 입장하고 있는 모습

빗속의 사제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부활시기 흰색 제의를 입은 사제들이 차례로 입장하고 있는 모습 ⓒ 지요하

▲ 빗속의 사제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부활시기 흰색 제의를 입은 사제들이 차례로 입장하고 있는 모습 ⓒ 지요하

 

저녁 7시로 예정된 미사는 우천 관계로 준비 작업이 다소 늦어져서 7시 15분쯤 사제들의 입장으로 시작되었다. 미사에 오신 사제들은 도합 스무 분이었다. 서울대교구, 수원교구, 의정부교구, 부산교구, 전주교구 사제들과 수도회 소속 사제들이었는데, 외국인 신부님들도 여러분이었다.

 

사제들이 민주열사 열 아홉 분과 비슷한 수여서 혹 그렇게 비슷하게 맞추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건 아닐 터였다. 미사 말미에 참석 사제들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간단히 인사말을 할 때 서울대교구 사제 한 분은 "서울대교구 신부들이 가장 적게 참석해서 미안하고 면구스럽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서울대교구 사제는 그 분과 빈민사목 담당 이강서 신부, 두 분뿐이었다. 나로서도 섭섭하게 느껴지는 그 말씀으로 미루어 민주열사 수와 참석 사제 수를 인위적으로 맞추려 한 것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추모미사 대상인 민주열사 수와 참석 사제 수가 거의 일치하는 것에서도 나는 마음이 더욱 훈훈해지는 느낌이었다. 우천 관계로 비좁은 조립식 천막 안에서 서로 옴당겨 선 채로 미사를 공동 집전하는 20명 사제들의 모습에서 따뜻하고 고결한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a 사제들의 연도 사제들은 먼저 분향실로 들어가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연도부터 바친 다음 미사를 지냈다.

사제들의 연도 사제들은 먼저 분향실로 들어가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연도부터 바친 다음 미사를 지냈다. ⓒ 지요하

▲ 사제들의 연도 사제들은 먼저 분향실로 들어가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연도부터 바친 다음 미사를 지냈다. ⓒ 지요하

 

미사는 일반적인 시작성가 대신 '그 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로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독서'는 송경동 시인의 시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낭송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여성 전례봉사자가 낭독하는 시를 들으며 조금은 아쉬움을 삼켰다. 내가 미리 낭송을 자청할 걸 하는 생각이었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굵고 명확한 목소리로, 그리고 조금은 격정적으로 낭송해야 좀더 심금을 울리고 미사 분위기를 한결 도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가장 젊은 사제이신 듯한 분이 요한 복음 15장 9-17절을 봉독한 다음 강론은 가장 원로이신 전주교구 문정현 신부님이 맡았다. 은퇴 사제로 매일같이 용산미사를 지내시는 분이었다. 오늘의 '용산미사'를 처음 시작하고, 매일매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유족들과 함께 하느님 복음의 꽃을 피워가고 있는 사제였다.

 

문정현 신부님은 옛날 자신이 영세를 주었던 청년 조성만 열사에 대한 추억담을 들려주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경찰과의 충돌 상황도 소개했다. 햇볕을 가리기 위해 길가에 파라솔 두 개를 설치했더니 경찰이 와서 철거를 했다고 했다. 파라솔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두 무릎과 두 팔꿈치가 다 까져서 통증을 겪고 있음을 실토했다.

 

경찰이, 이명박 정부가 사람이 조금만 모여도 겁을 먹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이삼십 년 전의 원시 방법을 다 동원하고, 사람들 모이는 낌새가 조금만 보여도 발끈하며 폭압적으로 나오는데, 왜 그렇게 겁을 먹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했다. 그들이 아무리 국민을 억누르고 모이지 못하게 하고 흩어놓아도, 국민의 마음마저 강제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건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그들이 불쌍할 뿐이라는 말도 했다.

 

a 빗속에서 미사에 열중하는 신자들 궂은 날씨에도 300여 명의 신자들이 추모미사에 참례하여 하느님 신앙과 민주열사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꽃피웠다.

빗속에서 미사에 열중하는 신자들 궂은 날씨에도 300여 명의 신자들이 추모미사에 참례하여 하느님 신앙과 민주열사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꽃피웠다. ⓒ 지요하

▲ 빗속에서 미사에 열중하는 신자들 궂은 날씨에도 300여 명의 신자들이 추모미사에 참례하여 하느님 신앙과 민주열사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꽃피웠다. ⓒ 지요하

 

올해 연세 73세인 노 사제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20대 청년 같은 목소리였다. 강론 중에 여러 차례 박수가 터졌고, "아멘!"이라는 외침과 "옳습니다! 맞습니다!"라는 말로 화답하는 신자들도 많았다.

 

'보편지향기도'로는 '천주교 열사들을 위하여,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하여, 유가족들을 위하여, 우리들을 위하여'라는 네 가지 지향의 기도를 바쳤다.

 

봉헌성가는 일반 성가 때신 '민들레처럼'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박노해의 시를 조민하가 작곡한 노래였다. 나는 오랜만에 그 노래를 듣고 부르며, '그 날'을 위해 민들레처럼 살다가 민들레꽃으로 승화한 열 아홉 명 천주교신자 민주열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뜨거운 눈으로 살펴보았다.

 

권운상 요셉(당시 41세), 권종대 이시도르(당시 68세), 김태훈 다두(당시 22세), 박복실 요한나(당시 35세), 박승희 아가다(당시 20세), 서 로베르또 신부, 신건수 분도(당시 24세), 유재관 루가(당시 29세), 이경심 세실리아(당시 31세), 이승삼 다윗(당시 21세), 이재호 스테파노(당시 21세), 이정순 카타리나(당시 39세), 이태준 도민고(당시 27세), 조성만 요셉(당시 24세), 최명아 마리아(당시 35세), 최옥란 세실리아(당시 36세), 최태옥 마태오(당시 22세), 한희철 귀리노(당시 22세), 최종만 도민고(37세 때인 2003년 9월 위암으로 운명).

 

a 빗속의 추모미사 비닐 천막과 우산으로 비를 피하면서도 신자들은 하나같이 미사에 열중했다.

빗속의 추모미사 비닐 천막과 우산으로 비를 피하면서도 신자들은 하나같이 미사에 열중했다. ⓒ 지요하

▲ 빗속의 추모미사 비닐 천막과 우산으로 비를 피하면서도 신자들은 하나같이 미사에 열중했다. ⓒ 지요하

 

용산참사 희생자들과 함께 오늘 또다시 부활하는 열사들이었다. 대개는 꽃다운 청년 시절에 생을 마감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어떤 형태로 민주 제단에 목숨을 바쳤는지, '열사(烈士)'의 전모를 여기에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다. 미사안내 책자에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어 있지만, 여기에 다 기술하지 않더라도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온전히 세세대대로 보존이 될 것으로 믿는다.

 

영성체 후 공지사항 발표시간에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먼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박순희 아네스 회장이 인사말을 했다. 열 아홉 분 천주교 열사들의 영정을 알뜰히 보관하면서 해마다 합동 추모미사 봉헌을 주선해오고 있는 이였다. 20년 가까이 그 일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올해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용산참사 희생자들과 함께 열사들을 추모하는 미사를 지내게 되어 한결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할 때는 눈물을 흘렸다. 울먹임 때문에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런 궂은 날씨에도 추모미사에 많이 참석해주신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신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로 인사를 마쳤다.

 

다음에는 가수 엄광현 부부가 기타와 아코디언 연주를 들려주고, 노래를 두 곡 불렀다. 웃음도 안겨주고, 가슴에 뜨거움도 안겨주는 노래들이었다. 그들의 노래가 끝났을 때 서울대교구 빈민사목 담당 이강서 신부님이 이런 말을 했다.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말이 있지요. 오늘 보니 칼보다 노래도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칼은 사람의 가슴을 벨 수 있을 뿐이지만, 노래는 사람의 가슴이 녹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슴을 베는 칼보다 가슴을 녹이는 노래가 더 강하다는 이 믿음의 진리 안에서 우리는 더욱 희망과 용기를 갖고 힘차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a 가수 엄광현 부부 가수 엄광현 부부가 기타와 아코디언 연주 후 노래 두 곡을 불러 미사 참석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녹여 주었다.

가수 엄광현 부부 가수 엄광현 부부가 기타와 아코디언 연주 후 노래 두 곡을 불러 미사 참석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녹여 주었다. ⓒ 지요하

▲ 가수 엄광현 부부 가수 엄광현 부부가 기타와 아코디언 연주 후 노래 두 곡을 불러 미사 참석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녹여 주었다. ⓒ 지요하

 

우중임에도 추모미사에 참석한 이들은 300명 정도 되어 보였다. 일부는 비닐 천막 밑에서, 일부는 천막 밖에서 우산을 쓰고 선 채로 미사를 지냈다. 미사 시간이 길었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비닐 천막 굴곡진 곳에 고인 빗물을 처리하는 일로 간간이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것이 미사를 방해하는 건 아니었다.

 

스무 명 사제들의 축복기도 후 '헌법 제1조'라는 노래로 미사를 마치면서 나는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했다. "하느님, 저로 하여금 오늘 이 빗속의 추모미사에도 참례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년 가까이 해마다 추모미사를 주선해오고 있는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관계자들과 미사를 공동 집전하신 스무 분의 사제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했다. 배고픈 것도, 다리 아픈 것도 잊었던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2009.05.15 14:11ⓒ 2009 OhmyNews
#용산참사 #민주열사 #추모미사 #정의평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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