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새에게 우산을 받쳐 줄 수 있을까?

아이들과의 행복한 소통을 위하여

등록 2009.05.17 17:31수정 2009.05.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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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영어심화연수 전남지역 32명의 영어교사들이 전남교육연수원에서 6개월 영어심화연수를 받고 있다. 이곳에서 배운 선진적인 교수방법을 학교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영어심화연수 전남지역 32명의 영어교사들이 전남교육연수원에서 6개월 영어심화연수를 받고 있다. 이곳에서 배운 선진적인 교수방법을 학교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안준철

▲ 영어심화연수 전남지역 32명의 영어교사들이 전남교육연수원에서 6개월 영어심화연수를 받고 있다. 이곳에서 배운 선진적인 교수방법을 학교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안준철

지난 토요일, 6개월 동안 영어심화연수를 받고 있는 저를 대신해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김지은 선생님을 만나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전혀 교단에 서 본 경험이 없는 앳된 처녀 선생님인데도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눈이 깊어보였습니다. 공부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자기중심의 원망보다는 아이들에게 접근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어떻게 수업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들어보니 놀랍게도 제가 이곳에서 배우고 있는 교수법들을 이미 터득하여 수업에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뒷말을 흐리는 것을 보니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느 학교라도 학업에 흥미가 잃어 엇나가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제가 근무하는 학교가 전문계다 보니 그 정도가 다소 심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곳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동안에도 2학기에 만날 아이들 생각을 종종하게 됩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연수에 참여하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눈도장도 찍지 못한 채 이곳에 오고 말았지만 대강의 그림은 그려집니다. 이곳에서 배운 선진적인 교수방법들을 현실수업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a 꽃마리  전남교육연수원 뜨락에 피어 있는 꽃마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꽃이다. 연수원 주변에 핀 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아이들 생각이 솔솔 난다. 아이들 생각을 하라고 꽃들이 피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꽃마리 전남교육연수원 뜨락에 피어 있는 꽃마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꽃이다. 연수원 주변에 핀 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아이들 생각이 솔솔 난다. 아이들 생각을 하라고 꽃들이 피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안준철

▲ 꽃마리 전남교육연수원 뜨락에 피어 있는 꽃마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꽃이다. 연수원 주변에 핀 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아이들 생각이 솔솔 난다. 아이들 생각을 하라고 꽃들이 피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안준철

김 선생님과 헤어진 뒤에 저는 산길로 접어드는 작은 오솔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제 손에는 우산이 들려져 있었고, 새는 두어 걸음 떨어진 비탈진 잡목 숲에서 비를 피해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 걸음새가 어딘지 쓸쓸해 보여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다가 문득 새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적 상상력으로 찾아왔음직한 실없는 생각이 차츰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가능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일까?


그 순간 저는 어쩌면 제 생애 가장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새에게 우산을 받쳐주기는커녕 단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한 채 그냥 산을 내려와야만 했지만 말입니다. 우선, 평지가 아닌 비탈진 잡목 숲에 앉아 있는 새에게 접근하는 일 자체가 용이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도라도 해보자는 심산으로 발걸음을 떼었다가 몸이 기우뚱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재빨리 몸을 수습한 것이 제가 한 일의 전부였습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다시 생각을 모아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새에게 우산을 받쳐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 새와 친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언어의 장벽을 깨고 저 새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처음 떠오른 단어는 '선한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좀 더 선해진다면, 새가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이 선해질 수 있다면?

 

그런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습니다. 눈을 감은 것은 선해지기 위함이었고, 다시 눈을 뜬 것은 한 순간 선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해도 새가 그런 제 마음을 감지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애당초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새에게 접근한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하긴, 인간이 새와 친해지거나 새에게 인간의 마음을 전달하는 일이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모차르트 음악이 식물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는 이미 상식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렇다면 새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일도 있을 법한 일입니다. 우산 속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후의 한때를 함께 보내는 것도.


새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일이 불가능하리라 여긴 것은 제 마음의 정성이 부족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염두에 둔 것은 '시간과 기술'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간절해도 시퍼렇게 흐르는 강물 위를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곳을 건너기 위해서는 다리를 만들어야 하고 다리를 건설할 수 있는 기술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저에게는 새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런 소통을 위한 훈련이나 연습의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서성거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터벅터벅 산을 내려오다가 문득 아이들 생각을 했습니다.


2학기 때 만날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나는 혹시 그들과 소통불능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지는 않을까? 지금 배우고 있는 선진적인 교수방법들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 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아이들과의 행복한 소통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더 준비해야할까?


그런 고민에 휩싸여 산을 내려오다가 문득 식당에서 김 선생님에게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선배교사로서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해준 말이 결국은 제 자신을 위한 말이었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하세요. 한 걸음씩만 더 내딛으면 돼요. 급하게 하다가 열정이 꺾이는 것보다 그게 훨씬 나아요. 시간이 좀 걸릴 거에요."    

2009.05.17 17:31ⓒ 2009 OhmyNews
#영어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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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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