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43) 세력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645] ‘동화시키기’와 ‘길들이기-똑같이 맞추기’

등록 2009.05.21 10:46수정 2009.05.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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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세력화되다

 

.. 20년 전에 마인츠를 떠날 당시 구텐베르크는 점점 세력화되는 길드 조합원들에게 귀족으로서의 권리를 침해당한 데 대해 분노를 품었다 ..  《존 맨-구텐베르크 혁명》(예ㆍ지,2003) 190쪽

 

 "20년 전(前)에"를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지만 "스무 해 앞서"로 다듬어 주면 한결 낫습니다. '당시(當時)'는 '그때'로 다듬고, "귀족으로서의 권리"는 "귀족 권리"나 "귀족으로 누릴 권리"로 다듬습니다. "침해당(侵害當)한 데 대(對)해 분노(憤怒)를 품었다"는 "침해당해서 분노했다"로 손질하거나 "짓밟혀서 몹시 성을 냈다"로 손질해 줍니다.

 

 ┌ 세력화(勢力化) : 흩어진 것이 뭉쳐 집단적인 힘을 갖게 됨

 │   - 세력화 움직임이 보이다 / 조직적인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

 ├ 점점 세력화되는 조합원들

 │→ 차츰 세력을 이루는 조합원들

 │→ 차츰 세력을 넓히는 조합원들

 │→ 조금씩 세력을 불리는 조합원들

 │→ 조금씩 힘을 모으는 조합원들

 │→ 조금씩 힘을 키우는 조합원들

 └ …

 

 "집단적인 힘을 갖게 되"는 '세력화'라 하는데, 국어사전에 나오는 '조직적인 세력화'는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싶습니다. "조직적인 집단적인 힘을 가지려고"가 되나요? '조직적'이란 무엇이고, '집단적인'은 또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국어사전 뜻풀이와 보기글을 아무 생각 없이 달아 놓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제대로 마음을 쏟아 가다듬은 뜻풀이가 아니요, 찬찬히 돌아보며 마음을 기울인 보기글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글을 쓰든, 얼마나 생각을 깊이 하고 널리 품느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집니다. 한결 나은 매무새로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지만, 더없이 얄궂고 안타까운 자리에서 맴도는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즐겁게 받아들일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지만, 서로서로 달갑잖은 느낌만 주고받는 말이나 글에 머물 수 있습니다.

 

 ┌ 세력화 움직임이 보이다

 │→ 세력을 이루려는 움직임이 보이다 / 힘을 모으려는 움직임이 보이다

 ├ 조직적인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 여러 무리를 한데 뭉치려 하고 있다 / 여러 모임을 한데 모으려 하고 있다

 └ …

 

 홀가분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촐하고 수수하게 글을 쓸 수 있으면 반갑겠습니다. 꾸밈없이 말하고 싱그러이 글을 쓸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덧말이나 덧생각을 붙이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군말이나 군생각을 붙인다면 반갑지 않습니다. 꾸밈말이나 꾸밈생각을 끼워넣는 일은 얄궂지 않으나, 겉치레말이나 겉치레생각을 끼워넣는다면 달갑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을 넉넉히 나타내고, 우리 마음을 살뜰히 어우를 수 있게끔 말과 글을 추스르기를 꿈꿉니다. 우리 삶터를 고이 돌아보고, 우리 둘레를 사랑스레 껴안을 수 있도록 말과 글을 갈고닦기를 바랍니다.

 

ㄴ. 동화시키다

 

..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사적 소유제로 규정된 사회질서에 인간을 동화시킬 필요가 있으므로, 이에 따른 교육기능이 부여된다 ..  《야나기 히사오/임상희 옮김-교육사상사》(백산서당,1985) 17쪽

 

 "사적(私的) 소유제(所有制)로 규정(規定)된"은 "개인 소유로 되어 있는"이나 "저마다 제 살림을 꾸릴 수 있도록 되어 있는"으로 풀어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다듬고, "동화시킬 필요(必要)가 있으므로"는 "동화시켜야 하므로"나 "동화시켜야 하니까"나 "동화시켜야 하기 때문에"로 다듬습니다. "이에 따른 교육기능(敎育機能)이 부여(附與)된다"는 "이에 따라 가르쳐야 한다"나 "이에 따라 가르칠 틀을 짜게 된다"로 손질해 봅니다.

 

 ┌ 사회질서에 인간을 동화시킬 필요가 있으므로

 │

 │→ 사회질서에 사람들을 길들여야 하므로

 │→ 사회질서에 사람들을 짜맞추어야 하므로

 │→ 사회질서에 사람들을 끼워넣어야 하므로

 │→ 사회질서에 사람들을 끼워맞춰야 하므로

 └ …

 

 하나가 되게 하거나 똑같이 되도록 한다는 한자말 '同化'입니다. 이 자리에서도 "사회질서에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한다"처럼 쓴다면 그럭저럭 뜻이나 느낌은 주고받을 수 있지만, 이보다는 "사회질서에 사람들이 길들여지도록 한다"처럼 다듬어 낼 때가 한결 어울리는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사회 틀거리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을 어느 틀에 매이거나 얽히도록 하려는 사회 틀거리 이야기이거든요.

 

 그러고 보니 '똑같이 맞추다'를 넣어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이 되도록 만들다'를 넣어도 되고, '똑같이 살도록 찍어내다'를 넣어도 됩니다.

 

 ┌ 사회질서에 사람들을 똑같이 맞추어야 하니까

 ├ 사회질서에 사람들을 똑같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니까

 └ …

 

 길들게 하는 일, 또는 똑같이 맞추는 일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군말 없이 따르도록' 하는 일은 아닌가 싶고, 어떤 사람이건 '투덜대지 않고 따르도록' 하는 일은 아닌가 싶습니다. 무척 으스스한 일이 아닌가 싶고, 사람마다 다 달리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짓밟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나라서 아름답고 너는 너라서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잊어버리게 하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나라서 사랑스럽고 너는 너라서 사랑스럽다는 삶을 잃어버리게 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 사회질서에 사람들이 군말 없이 따르도록 해야 하기에

 ├ 사회질서에 사람들이 투덜대지 않고 따르게끔 해야 하기에

 ├ 사회질서에 사람들이 잔말 말고 따르라며 다그쳐야 하기에

 └ …

 

 제아무리 맛난 밥이라 하여도 스스로 먹고 싶어야 먹습니다. 제아무리 멋진 집이라 하여도 스스로 살고 싶어야 삽니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글이라 하여도 스스로 쓰고 싶어야 씁니다. 훌륭한 가르침이요 거룩한 배움이라 할지라도, 짜맞추거나 끼워맞추거나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때에는 하나도 안 훌륭하고 조금도 안 거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길들이고 물들이고 톱니바퀴가 되도록 한다면, 그 어디에도 훌륭함이나 거룩함이라는 말은 붙일 수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다 다른 우리들은 다 다른 말로 다 다른 우리 생각과 마음을 나타낼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다 다른 우리들은 다 다른 글로 다 다른 우리 넋과 얼을 보여줄 때가 가장 사랑스럽습니다. 다 똑같은 말, 다 한결같은 말, 다 틀에 박힌 말은, 우리 마음밭과 생각줄기를 좀먹습니다. 갉아먹습니다. 무너뜨립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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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1 10:46ⓒ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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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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