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34)

[우리 말에 마음쓰기 651] '힘없는 존재', '존재만으로도 위협적'

등록 2009.05.27 12:27수정 2009.05.2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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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힘없는 존재

 

.. 하나님은 인간 세상의 불행 앞에서 손을 놓고 있는 힘없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필요에 도움과 회복의 힘을 주는 아버지라는 걸 분명히 알려야 해 ..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원충연 옮김-숨어 있는 예수》(달팽이,2008) 36쪽

 

 "인간(人間) 세상의 불행(不幸) 앞에서"는 "사람 세상에서 생기는 슬픔 앞에서"나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아픔을 보며"로 손봅니다. "그들의 필요(必要)에"는 "그들이 바랄 때에"나 "사람들이 바랄 때에"로 다듬고, '회복(回復)의'는 '다시 일어설'로 다듬으며, "아버지라는 걸"은 "아버지임을"로 다듬습니다. '분명(分明)히'는 '똑똑히'로 손질합니다.

 

 ┌ 힘없는 존재 (x)

 └ 힘을 주는 아버지 (o)

 

 힘을 주는 '아버지'라고 합니다. 어렵거나 힘들 때 힘이 되는 '아버지'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괴롭거나 고달플 때 왜 힘을 안 주느냐고 투덜대기도 한다지만, 힘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늘 힘을 주는 '아버지'라고 합니다.

 

 ┌ 힘없는 분

 ├ 힘없는 구경꾼

 ├ 힘없는 비렁뱅이

 ├ 힘없는 들러리

 ├ 힘없는 나그네

 └ …

 

 다른 어떤 분이 아니라, 우리를 낳게 한 '아버지'와 같다는 뜻에서, 보기글 뒤쪽에서는 '아버지'라고 적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찬찬히 헤아려 보면, 글쓴이는 보기글 뒤쪽도 '존재'로 적어서, "힘없는 존재-힘을 주는 존재"처럼 마주하는 글월로 엮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엣말을 '분-사람-구경꾼-손님-길손-나그네-……'처럼 적을 수 있지만, 뒤엣말과 마찬가지로 "힘없는 아버지"로 적으면서 앞뒤가 나란히 이어지도록 적을 수 있습니다.

 

 

ㄴ. 존재만으로도 위협적

 

.. 도로의 자동차들은 존재만으로도 위협적이었고, 자전거 도로 겸용 보행자 인도에는 그 자리를 주차장으로 착각하는 차들이 '당당하게' 내 진로를 방해했다 .. 《정혜진-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녹색평론사,2007) 222쪽

 

 "도로(道路)의 자동차"는 "길에 있는 자동차"나 "찻길을 오가는 자동차"로 고쳐 줍니다. '위협적(威脅的)이었고'는 '윽박질렀고'나 '무서웠고'로 손보고, "자전거 도로 겸용(兼用) 보행자(步行者) 인도(人道)에는"은 "자전거길이며 사람들이 걷는 길에는"으로 손봅니다. '착각(錯覺)하는'은 '잘못 아는'이나 '잘못 생각하는'으로 손질하고, '당당(堂堂)하게'는 '떳떳하게'나 '부끄럼 없이'로 손질하며, "내 진로(進路)를 방해(妨害)했다"는 "내 갈 길을 막았다"나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로 손질합니다.

 

 ┌ 도로의 자동차들은 존재만으로도 위협적이었고

 │

 │→ 길에 있는 자동차들은 굴러다니기만 해도 위협이 되었고

 │→ 오가는 자동차들은 그 모습만으로도 무서웠고

 │→ 찻길에 있는 자동차들은 늘 윽박질러 대었고

 │→ 찻길에서 자동차들은 언제나 무시무시했고

 └ …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어느 누구나 느낍니다.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사람 숫자가 얼마 안 된다고 하여도 우리 둘레에 으레 몇 사람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모는 분들은 자기 둘레에서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사람들 마음을 거의 헤아리지 못합니다. 좁은 골목에 자동차를 들이밀고 내달리는 모습을 보면, 또 이 좁은 골목에 차를 대어 놓는 모습을 보면 그래요. 더구나 자전거는 찻길에서 가장자리를 달리게 되어 있는데, 자동차를 길에 세울 때는 바로 이곳, 길가에 세웁니다. 그러니 자전거를 타면서 느긋하고 걱정없이 오가지 못합니다. 자전거로 일터나 학교를 오가지 못하게 막는 자동차입니다. 자원 안 쓰고 몸 튼튼해지고 공기 깨끗하게 해 주는 자전거이건만, 교통경찰은 길가에 함부로 대놓은 자동차를 보며 아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경찰차도 길가에 함부로 대놓거든요.

 

 법이 있어도 법이 지켜지지 않고, 법이 없다 해도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 세상이라고 느낍니다. 법 없이도 누구나 착하고 아름다이 살아간다면 그지없이 좋으련만, 법을 세우고도 서로를 보듬거나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마음씀씀이요 몸씀씀이가 되다 보니, 서로 주고받는 말 한 마디에 사랑이나 믿음을 싣기는 어렵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 길에서는 자동차가 언제나 무서웠고

 ├ 길에서 자동차는 한결같이 무섭기만 했고

 ├ 길에서 자동차는 늘 내 몸이 움츠러들게 했고

 └ …

 

 작은 일 하나도 좀더 베풀 수 있는 마음을, 작은 대목 하나도 더욱 너그러이 껴안을 수 있는 마음을, 작은 구석 하나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는 마음을 먼저 가꾸고 일굴 수 있는 삶을 꿈꿉니다. 삶이 제자리를 잡을 때 세상도 제자리를 잡고, 세상 또한 제자리를 잡을 때 우리 말과 글이 시나브로 제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삶이라면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세상으로 이어지고,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제자리를 잃어버리는 말이요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자리를 잡지 못하니 늘 바쁘다는 소리가 나오니까요. 제자리를 잡지 못하니 언제나 돈을 앞세우게 되니까요. 제자리를 잡지 못하니 한결같이 새치기를 하고 검은돈을 바치고 뒤꽁무니 빼기를 일삼으니까요.

 

 제자리를 잡아 아무리 바쁘더라도 제 삶과 제 말을 붙잡으면 좋겠습니다. 제자리를 잡아 벌이가 적어도 기쁘고 흐뭇한 삶과 말을 즐기면 좋겠습니다. 제자리를 잡아 나와 내 이웃이 다 함께 어깨동무하는 삶과 말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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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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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7 12:27ⓒ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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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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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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