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02)

― ‘오늘의 어린이’, ‘오늘의 면접’ 다듬기

등록 2009.05.27 20:46수정 2009.05.2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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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오늘의 어린이들

 

.. 오늘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오늘의 어린이들은 TV에 나오는 어린이들, 교과서에 나오는 어린이들이 아니다 ..  《이오덕-삶ㆍ문학ㆍ교육》(종로서적,1987) 87쪽

 

 "오늘 할 일"이라 하면 될 말을 "오늘의 할 일"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라 하면 될 말을 "오늘날의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요.

 

 《우리 글 바로쓰기》를 써낸 이오덕 님 또한 지난날에는 이와 같이 글을 썼습니다. 나중에는 이러한 말투를 안 쓰셨지만, 1980년대 끝무렵에 펴낸 책에까지만 하더라도, "오늘날 어린이"가 아닌 "오늘의 어린이"로 적으셨고, 이처럼 적은 당신 말투를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하셨습니다.

 

 ┌ 오늘의 어린이들

 │

 │→ 오늘날 어린이들

 │→ 요즘 어린이들

 │→ 요즈음 어린이들

 │→ 요새 어린이들

 │→ 요사이 어린이들

 └ …

 

 그래도 이오덕 님은 당신 스스로 애쓰고 힘써서 토씨 '-의'를 거의 모두 털어냈습니다. 당신이 1950년대에 쓴 글과 1960년대에 쓴 글, 그리고 1970년대와 1980년대까지 쓴 글하고 1990년대에 쓴 글을 견주면 사뭇 다릅니다. 2000년대에 쓴 글과 견주면 더욱 달라요.

 

 다만, 퍽 늦은 나이에 우리 말을 옳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깨우쳤기에 모두 걸러내거나 털어내지는 못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할 만큼 하셨고, 당신이 못하는 몫은 우리한테 남겨 주었습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지식이라는 틀을 넘어서며 '삶을 담는 말하기와 글쓰기'를 펼쳐 보였고, 우리가 얼마나 마음을 쏟아 추스르느냐에 따라서 우리 넋과 얼을 싱그러우면서 넉넉히 담아낼 길이란 얼마든지 환하게 열려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아쉽다면, 이런 땀방울을 오늘날 우리들이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는 우리들이요, 차근차근 마음을 바치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말이 살아날 때 생각이 살아나는 줄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인 가운데, 생각이 살아나는 동안 넋과 얼이 살아날 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과 즐기는 놀이는 한결 싱그럽고 맑아지는 줄 깨닫지 못합니다.

 

 ┌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은 어떻게 있는가?

 ├ 오늘을 살고 있는 어린이들은 어떻게 있는가?

 └ …

 

 오늘이 아름답지 못하다 하여도 다음날을 아름다이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벅차고 고달프더라도 조금씩 애쓰고 힘쓰면서 이듬날을 홀가분하고 뿌듯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온통 슬프고 괴롭더라도 꾸준히 보듬고 어루만지면서 다가올 날은 반갑고 벅찰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아름답게 가꾸는 말은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아름다이 북돋우는 일놀이는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일으키는 삶은 아닙니다. 언제나 하루하루 조금씩 갈고닦는 말이요 일놀이요 삶입니다. 오늘은 아직 많이 모자라다 하여도 다음날을 내다보면서 살포시 가꾸는 말이요 일놀이요 삶입니다. 오늘은 턱없이 모자라다 하여도 이듬날부터 아주 조금씩이나마 새로워지고 어루만지는 말이요 일놀이요 삶입니다.

 

 말과 글을 조금 더 낫게 다스리려 하는 가운데 생각과 마음을 조금 더 낫게 다스리도록 애쓸 수 있고, 생각과 마음을 조금 더 낫게 다스리는 동안 세상 보는 눈을 넓히고 키우면서 우리 삶자락을 알뜰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한꺼번에 훌륭해지는 말과 글이 아닌, 날마다 한 마디 두 마디 곱씹고 되씹는 말과 글이 되면서, 우리 생각과 마음을 비롯해, 우리 삶자리 어느 곳에나 넉넉함과 따스함과 살가움을 담아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ㄴ. 오늘의 면접

 

.. "'아, 고맙다'가 아니야! 오늘의 면접은 어떻게 할 거야? 지금 도쿄행 공석을 기다린다 해도, 절대로 시간 안에 가지 못할 거라구!" ..  《다카하시 신/박연 옮김-좋은 사람 (1)》(세주문화,1998) 8쪽

 

 "어떻게 할 거야"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나 "어떻게 할 셈이야"로 다듬으면 낫지만, '것'이 아주 자주 온갖 곳에 쓰이는 오늘날에는 이 같은 말씀씀이를 다듬기란 몹시 어렵다고 느낍니다. "도쿄행(-行) 공석(空)을"은 "도쿄 가는 빈자리를"로 손보고, '절대(絶對)로'는 '어떻게든'이나 '무슨 수를 써도'로 손보며, "가지 못할 거라구"는 "가지 못한다구"로 손봅니다.

 

 ┌ 오늘의 면접은

 │

 │→ 오늘 치를 면접은

 │→ 오늘 볼 면접은

 │→ 오늘 하는 면접은

 └ …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만, 어쩌면 오래지 않아 이 말이 사라지고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로 뒤바뀌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사람들 말매무새를 들여다보면, 바로 오늘부터 이처럼 바뀔 수 있습니다.

 

 ┌ 오늘 할 일 / 내일 할 일 / 어제 한 일 (o)

 └ 오늘의 일 / 내일의 일 / 어제의 일 (x)

 

 우리는 '-의'를 넣지 않으면서 우리 생각과 느낌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할'이나 '오늘 맞이할'이나 '오늘 보는'이나 '오늘 치른'처럼 조금씩 다른 생각과 느낌을 말마디에 담았습니다.

 

 "오늘의 일정"이 아닌 "오늘 할 일"이며, "오늘의 날씨"가 아닌 "오늘 날씨"입니다. "오늘의 수업"이 아닌 "오늘 수업"이나 "오늘 할 수업"이고, "오늘의 경기"가 아닌 "오늘 경기"나 "오늘 있는 경기"나 "오늘 하는 경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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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7 20:46ⓒ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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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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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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