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79) 어른문학

[우리 말에 마음쓰기 666] '마음나라'와 '내면세계'

등록 2009.06.11 10:55수정 2009.06.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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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어른문학

 

.. 그 깊이와 높이에 있어서 어떤 위대한 '어른 문학' 작품과도 당당히 견줄 수 있는 것이었다 ..  《김서정-어린이문학 만세》(푸른책들,2003) 15쪽

 

 '당당(堂堂)히' 견주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당차게-다부지게-떳떳이' 견줄 수 있으면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우리한테는 '훌륭한-뛰어난-빼어난-놀라운-멋진-아름다운' 같은 낱말이 있으니 '위대(偉大)'한 문학까지 찾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낍니다. "있는 것이었다"는 "있었다"나 "있다"로 다듬습니다.

 

 ┌ 성인(成人) :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 보통 만 20세 이상의 남녀를 이른다

 │   -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 아이 하나를 키워서 성인을 만들기란

 │

 ├ 어른문학

 └ 성인문학

 

 예전에는 '아동문학(兒童文學)'이라는 말을 익히 써 온 우리들입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자리에서 '어린이문학'이라고 씁니다. 아직도 '아동문학'이라고 하는 분이 있고, 잡지이름 가운데 '아동문학'도 있으며, 어린이문학 이야기를 하는 사람 스스로 '아동문학가'라느니 '아동문학 평론가'라느니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자리에서도 '어린이문학가'나 '어린이문학 평론가'로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어린이'들부터 즐기는 문학이기 때문에 '어린이문학'이라고 합니다. 어린이가 쓰기도 하고 어른이 쓰기도 하지만, 즐기는 사람이 어린이부터이니 어린이문학입니다. 어른들이 즐기는 문학은 이와 마찬가지로 '어른문학'입니다. 어른부터 즐기니(?) 어른문학인 셈인데, 좀더 헤아려 보면, '성인만화'와 '어른만화'라는 낱말이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 어른만화 / 어른영화 / 어른소설 (o)

 └ 성인만화 / 성인영화 / 성인소설 (x)

 

 그러고 보면, 표를 끊을 때에도 '어린이표-어른표'처럼 말해야 알맞습니다. 옷을 지을 때에도 '어린이옷-어른옷'이라 해야 올바릅니다. 토박이말 '어른'을 꺼려야 할 까닭이 있지 않을 테지요. 굳이 한자말 '성인(成人)'을 온갖 곳에 불러들이거나 끼워넣으며 가리켜야 할 까닭은 없을 테지요.

 

 '성년식(成年式)'이라 해서 "어른나이가 된 일을 기리는 잔치"를 벌이기도 합니다. 그냥 이대로 말하고 가리키려 한다면 이대로 써야겠지만, "어른이 되며 차려 주는 잔치"이니 '어른잔치'나 '어른된 잔치'나 '어른날'이나 '어른나이 된 날'이나 '어른나이날'이나 '어른맞이날'이나 '어른맞이잔치'처럼 새롭게 낱말 하나 빚어내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 튼튼하고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라며 어른나이를 맞이한 모든 푸름이(또는 어린이)를 기리는 뜻에서, 맑고 밝은 낱말 하나를, 먼저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이 선물로 베풀어 주면 훨씬 즐겁고 뜻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ㄴ. 마음나라

 

.. 이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서른세 살이 된 백치 벤지의 내면세계가 그려진 첫 번째 장이다 ..  《장영희-문학의 숲을 거닐다》(샘터사,2005) 249쪽

 

 "이 중(中)에서"는 "여기에서"나 "이 가운데에서"로 다듬고, "인상(印象) 깊었던"은 "낯 깊었던"이나 "뜻깊었던"이나 "깊이 남았던"이나 "깊이 아로새겨진"으로 다듬습니다. '부분(部分)'은 '곳'이나 '대목'으로 손보고, "소설이 시작(始作)되는 시점(時點)"은 "소설 첫머리"나 "소설을 여는 자리"로 손봅니다. "첫 번째 장(章)"은 "첫 번째 자리"나 "첫 번째 꼭지"로 손질해 봅니다.

 

 ┌ 내면세계(內面世界) :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는 마음속의 감정이나 심리

 │   -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려니까 / 자기의 내면세계에 통하지 않는 여자

 │

 ├ 벤지의 내면세계가 그려진

 │→ 벤지 마음자리가 그려진

 │→ 벤지 마음이 그려진

 │→ 벤지 마음밭이 그려진

 │→ 벤지 마음바탕이 그려진

 │→ 벤지 마음나라가 그려진

 └ …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속을 가리킨다고 하는 '내면세계' 뜻풀이를 헤아리다가, 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 마음속을 가리킬 낱말을 빚어내지 못할까 싶어 씁쓸합니다. '내면세계'란 다름아닌 '내면 + 세계'입니다. '내면'은 우리 말로 하면 '마음속'이고, '세계' 또한 우리 말로 하면 '나라'입니다. 그래서, '내면세계'를 우리 말로 옮기면 '마음속 + 나라'가 되어 '마음속나라'나 '마음나라'예요.

 

 ┌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려니까 → 사람들 마음자리를 그려내려니까

 └ 자기의 내면세계에 통하지 않는 → 내 마음과 맞닿지 않는

 

 그러나 우리들은 '마음나라' 같은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또한 아직 없는 줄 압니다. 그리고 한자만 '내면세계'를 곧이곧대로 '마음나라'로 옮겨적어서 잘 어울릴 수 있기도 하지만, 꼭 이처럼 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뜻 그대로 생각하면서 '마음속'이라 해도 되고, '속마음'이라 해도 됩니다. '속내'라 하거나 '셈속'이라 해도 돼요. 아니면, '마음바탕'이나 '마음자리'라 해 보거나 '마음밭'이나 '마음누리'라 할 수 있어요.

 

 ┌ 속마음 / 속내 / 속생각

 └ 마음속 / 마음 / 마음밭

 

 우리 스스로 쓰려고 하면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 쓰려고 하지 않으면 쓸 수 없습니다. 우리 깜냥껏 빚어내려 한다면 얼마든지 빚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깜냥을 살리거나 우리 슬기를 북돋우려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새말도 빚어낼 수 없습니다.

 

 살려쓰는 몫도 우리한테 있고, 살려쓰지 못하는 몫도 우리한테 있습니다. 말과 생각과 삶과 세상을 아름다이 가꾸는 몫 또한 우리한테 있으며, 말이며 생각이며 삶이며 세상이며 아름다이 가꾸지 못하는 몫 또한 우리한테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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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1 10:55ⓒ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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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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