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 소나 아무나 다하는 시민기자라고?

시민기자도 기자 정신이 있어야 함을 깨닫다

등록 2009.06.13 11:18수정 2009.06.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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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라니까 딸아이가 한 말이다.

 

"아빤, 그게 뭐 그리 대단해요? 개나 소나 아무나 다하는 '시민기자'라는데 뭐? 내 주변에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있어요. 아빠도 이제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시는구나. 글 좀 쓴다는 사람은 다 기자하데. 뭐."

 

내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말을 듣자, 속이 팍 상할 정도로 시큰둥한 딸아이의 반응을 보고 그냥 이렇게 말했었다.

 

"어?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냐? 그래도 편집부에서 얼마나 기사를 심사숙고하여 고른다고? 글을 써 올린다고 다 채택되는 거 아니다? 너 너무 우습게 보지 마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 마음의 속상함과 딸아이에게 무시당한 모멸감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다 무더위가 집 뒤 동산의 나무들조차 이파리 늘어지게 하는 8월 초, '온 놈, 맞은 놈, 외치는 놈'이란 기사를 써 '오름'에 올랐을 때, 그 소식을 들은 딸아이는 이렇게 말했었다.

 

"어? 정말 아빠 기자 맞네."

 

시민기자, 사과도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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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 ⓒ 김학현

나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 ⓒ 김학현

이렇게 딸아이에게 인정받는 것은 물론, 이제는 주변사람들에게도 <오마이뉴스>의 그럴 듯한 시민기자로의 위상을 높여가던 내게 이런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편집부의 전화를 받고 주유소를 취재하여 올린 글, '하루 11시간씩 총 쏴봐야 시간당 3030원'이란 기사에 든 사진 한 장이 문제가 되었다.

 

볼 일을 보고 들어오려는데 아들이 전화기를 손에 들고 부랴부랴 나를 찾는다. 받아보니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온 전화다. 기사의 사진이 문제가 되어 항의하는 주유소가 있어 사진을 내렸다는 거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주고는 빨리 그리로 전화를 하라는 거다.

 

전화를 하니 화난 목소리로 빨리 찾아와 사과하라고 했다. 자기 주유소는 최저임금을 안 주지도 않고, 기사 내용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사진에 든 주유소를 취재한 게 아니니 그럴 수 있다. 주유소 사진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여럿 있어 그 중 골라 기사에 삽입한 거다.

 

아뿔사!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상관이 없음"이란 글귀를 빼놓은 거다. 다른 때는 잘도 달던 사진 설명을 왜 이번에는 달지를 않았단 말인가. 허긴 달았다 해도 기사 내용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 주유원 이야기다 보니 항의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 기사에 실린 사진 한 컷이 어느 주유소인지 알아본 주유소 고객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친절하게 자신이 다니는 주유소에 전화를 해줬다. 당연히 주유소 측에서는 화나는 일이다. 잽싸게 문제 사진의 실제 주유소로 달려갔다.

 

이후의 이야기는 그냥 상상하라. 이런 때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고 하던가. 다행히 사장님이 참 좋은 분 같았다. 나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주셨다. 나는 이런 제안도 했다.

 

"그럼, 제가 이 주유소가 이미지가 실추된 것 같으니 취재하여 실추된 이미지를 복원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주유소를 취재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단다. "연기군의 주유소는 다 악덕 주유소로 알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은 주유소 이야기도 써야지. 그렇게 편향된 기사를 쓰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해서 제안한 말이었다.

 

시민기자,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시민기자로 살아간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새삼 느꼈다. 아무리 사실에 근거한 기사를 썼다 할지라도 그 사실의 유포에 있어 반향이 올 수 있음을 늘 주지해야 한다. 사진과 기사의 내용이 다르기 망정이지 같은 주유소였다면 더 큰 문제가 야기되었을 것이다.

 

명예훼손? 그렇다. 아무리 사실이라도 그 사실을 유포하여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명예훼손이 된다. 이번 건은 다행히 무슨 피해를 입힌 게 아니기에 다행이다. 그렇지 않아도 주유소 사장이 "이거 이렇게 사과한다고 되는 거 아닙니다. 뭐 다른 조치가 없나?" 하면서 나의 눈을 바라보던 모습이 눈에 어린다.

 

주유소 사장은 전문기자(기자로 밥 먹고 사는?)가 아니란 점을 들어 용서해 준 것 같다. 나도 몇 번이나 시민기자라고 밝혔다. 이번의 해프닝을 통하여 배운 게 참 많다. <오마이뉴스>의 모든 시민기자들은 나와 같은 경험을 안 했으면 한다.

 

이미 더한 경험을 한 사람도 있을 테지만,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면 아예 이런 경험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길 바란다. 하하하.

 

사과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딸내미 말이 생각났다. "개나 소나 아무나 다하는 시민기자"라는. 이젠 딸내미에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 "무슨 소리야? 제대로 된 기자정신이 없으면 못 하는 게 시민기자야. 당당한 기자명함이 있는 기자야. 이거 왜 이래?"

 

2009.06.13 11:18 ⓒ 2009 OhmyNews
#시민기자 #김학현 #개나 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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