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열 배, 제주돌담이 가진 가치는?

제주의 돌담, 돈으로 계산이 안 돼

등록 2009.06.22 10:24수정 2009.06.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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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돌담 가히 예술이다. 끝없이 펼쳐진 돌담 물결이 사진이 아닌 눈앞의 현실이라 상상해 보면 그 답이 나온다. ⓒ 장영주


제주를 다녀 온 사람에게 제주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그 중 많이 나오는 것이 돌담이다. 최근 들어선 올레길로 바뀌었는지 모른다.

특히 섬 지역의 돌담은 바닷바람과 어우러져 가히 신비에 가깝다. 어찌 인간의 손으로 저렇게 정겹고 예술의 진미를 표현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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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바닷길돌담 쓰러질 듯 미끄러질 듯 수백년을 버티어 찬란하게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장영주


돌담은 직선과 곡선을 구비치며 한 폭의 예술의 혼을 담는다. 돌담이 쇼를 하는 것이다.
가까이 가면 멀어지고 멀리서 손에 잡힐 듯 앞에서 유혹의 손짓하고…. 경이감이 있다가도 막상 손에 닿으면 투명하고 거칠고….


과학의 힘으론 해결이 안 될 수백 년의 역사가 숨 쉬는 돌담을 섬속의 섬과 제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하도리를 찾아 그 진모를 카메라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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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길돌담 변방의 길목에서 외적의 침입을 몸으로 막아서는 가련함이 서려 있다. ⓒ 장영주


제주의 돌담 속에 정겨움, 소박함, 억척스러움, 자연에 순응하는 인간미가 스며 있다. 어찌 보면 거친 자연 환경을 헤쳐 나가는 제주인의 삶의 철학이 배어 있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돌이 많아 삼다라 부른 곳, 옛 제주민이 평소 밭을 일구는 과정에서 나온 돌들을 그냥 편하게 쌓아 바람을 막고 우마의 접근을 막고 있는 그대로 소박함을 내 보인 게 제주의 돌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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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가는 곳곳 마다 제주의 밧담(밭담)은 농작물을 보호하는 버팀 목이다. ⓒ 장영주


제주의 돌담은 제주가 바람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린다. 현무암으로 쌓인 돌담을 모두 이으면 중국 만리장성의 열배가 넘는 십만 리 장성이 된다. 누군가 어림잡아 계산해 보니 지구의 반 바퀴를 돈다나?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담을 간직한 제주시 하도리를 중심으로 돌담의 쇼를 한다 쇼를 해! 돌담의 쇼를 감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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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벽돌담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 장영주


지난해 제주대학교에서 제주 돌담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계산해 보았다. 계산이 안 나왔다. 어찌 제주의 돌담 가치를 돈으로 환산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머리통만한 돌멩이 한 개의 가치를 최고 싸구려로 일 만원으로 계산하자. 제주의 돌담은 수백, 수천 년을 자연의 바람에 의해 조각된 자연산이기에 일만 원은 싼 가격이겠지만 돌담의 돌의 수가 얼마인데? 계산이 안 나온다. 천문학적 숫자 놀음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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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도로돌담 포장된 도로와 나란히 100미터 직선 코스를 만들었다. ⓒ 장영주


제주의 돌담은 바람의 거칠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완충 역할을 한다. 어디를 가든 바람과 돌이 상존하는 제주에서 아무리 큰 태풍이 몰아쳐도 주먹만 한 돌멩이 하나를 날려 보내지 못함은 제주 돌담이 그만큼 위력적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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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인돌담 돌담 모양이 형형이어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 장영주


왤까? 그렇게 조그만 돌멩이가 초속 몇 십 미터의 강풍에도 그냥 다소곳이 그냥 그렇게 자리를 지켜 나가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건 예술의 힘이다. 과학으로는 풀지 못할 예술적 가치가 제주의 돌담을 수천, 수백 년을 지탱해 온 힘이다. 콘크리트 건물이 부서지고 수십억 원대의 배들의 산산조각 나도 제주의 돌담은 바람을 걸러내는 들숨과 날숨이 있기에  무너지지 않는다. 거친 바람은 돌담을 통과하면 부드러워 지고 공기를 맑게 해주고, 씨앗을 날려주어 생명을 번성케 해주는 자연의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돌담을 순진하게 생각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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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돌담 모양이 너무 다양하여 제목을 붙일 수가 없었다. ⓒ 장영주


제주의 돌담에 대해 서귀포시향토사료 전임연구원 윤봉택의 자료를 소개한다.

제주도는 돌로 만들어진 섬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천으로 널어진 게 돌이다. '돌빌레', '작지왓', '머들팟' 등 돌과 관련된 지명이 마을마다 있을 만큼 제주 섬은 돌 그 자체이다. 민속학적 측면에서 돌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자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지역의 석공들을 찾아 녹취한 구술을 토대로 정리할 수밖에 없다.

이 자료는 서귀포시 강정동에 거주하고 있는 김정민(1937년생)으로부터 녹취한 자료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이 섬의 사람들은 언제부터 돌을 이용하여 왔을까? 그리고 돌을 어떤 방법으로 깨어 내고, 다듬고, 사용하여 왔을까? 어느 시기부터 깬 돌을 가지고 생활에 이용했고, 정교하게 다듬으며 장식하여 왔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돌은 문명사 이전부터 인간 생활의 한 기구로서 소중하게 다뤄져 왔으며, 돌을 깨서 만든 뗀석기와, 돌을 갈아서 만든 간석기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제주도에서도 제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고산리 유적이 발굴되면서 이러한 돌의 흔적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바람과 여자 그리고 돌이 많아 삼다라 불리는 제주도, 여기에는 어느 것 하나 인위적으로 형성된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구성되었다. 물론 여자가 많게 된 것은 예외일 수가 있지만, 제주인에 있어서의 돌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여겨져 왔다.

돌을 다듬어 주춧돌을 놓아 기둥을 세워 집을 지었고, 담을 쌓아 일정한 구역을 나타내거나(당회요 탐라국(唐會要 耽羅國) 961년. 탐라는 신라의 무주 해상에 있다. 섬 위에는 산이 있고 주위는 모두 바다와 접해 있다. 북쪽으로 백제와는 뱃길 5일이다. 그 나라 왕의 성은 유리이고 이름은 도라인데 성황은 없고 다섯 부락으로 나눠져 있다. 그들이 사는 집은 둥굴게 담이 둘러져 있고 풀이 덮여 있다. 호구는 8천여호 된다. 활과 칼 및 방패와 창이 있었으나 문기는 없고 오직 귀신을 섬긴다. 백제의 속국이다.

또한 돌을 벌러내어 깬 돌을 쌓아 바람과 눈을 막아 내었으며(耽羅在新羅武州海上 居山島上 周廻竝接於海 北去百濟可五日行 其王姓儒李名都羅 無城隍 分作五部落 其屋宇爲圓牆 以草蓋之 戶口有八千 有弓刀楯矟 無文記 有事鬼神 常役屬百濟), 토지의 구역경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년. "聚石築垣")를 표시하였다. 또한 아무리 가난하여도 조상의 묘소마다 돌을 쌓아 산담을 만들어 산소를 불이나 우마의 침입으로부터 방지하기도(제주도 제주대정정의읍지, 1890년대. "田頭起墳 墳必石墻") 하였다. ]

또한 돌을 이용한 여러 가지의 생활에 필요한 기구가 만들어졌는데, 곡식을 찧는 돌방에, 말을 이용해 곡식을 찧는 말방에, 간단한 양념을 찧는 돌혹, 벵이톡, 절구통, 간단하게 곡식을 가는 고래, 두부 등을 가는 풀고래(풀고래는 두부 등을 갈 때 쓰는 고래를 말하는데, 갈아진 것들이 한쪽으로 흘러내릴 수 있도록 고래 둘레에 홈이 패여저 있다.), 물팡, 빨래판, 디딜팡(재래식 변소에서 용변을 보기 위해 양쪽 발을 디디고 앉는 두 개의 돌을 디딜팡이라 부르며, 집에 들어갈 때 디디는 돌 또한 디딜팡이라 한다.), 세운돌(재래식 변소에 돼지를 기를 때, 대변시 인분을 먹기 위해 디딜팡 밑으로 들어오는 돼지가 머리를 내밀지 못하도록 가로 비스듬히 세워 놓는 돌을 말하며, 간혹 자릿도세기들이 이 세운돌을 타고 돗통시 밖으로 도망 나오기도 했다.), 어귀돌(어귓돌은 입구 양옆에 세우는 돌을 가리키며, 정낭 걸치는 돌이 없는 집인 경우에는 올레도 양쪽에 어귓돌을 세워 놓았는데, 이는 돌이 마차, 우마들이 다니면서 쉽게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워졌다.

어귓돌은 정주먹이 없어지기 시작하자 대신 어귓돌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는 어귓돌이 세워짐으로 하여 입구가 보호되고 이는 곧 집안의 보호와 연결된다는 믿음 때문에서이며, 단 입구에 세우는 어깃돌인 경우에는 속돌로 만들었다.), 정주먹(정주먹은 가가호호마다 있었다. 정낭을 걸쳐놓는데, 정낭이 하나 내려져 있으면, 주인이 멀리 출타하지 않았을 때, 두 개 내려져 있으면 주인이 가까운 곳에 잠시 갔을 때, 세 개 내려져 있으면 집 주인이 집안에 있을 때, 세 개 걸쳐져 있으면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그리고 세 개 걸친 것에다가 추가로 정낭이 ×모양으로 두 개 더 걸쳐져 있을 때에는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엄금한다는 표시이며, 속돌로 만들었는데, 한쪽은 구멍을 뚫으나, 한쪽은 나무를 걸칠 수 있도록 구멍을 타놓기만 한다.), 잇돌(초가지붕 바로 밑에 놓아 처마로 흘러내리는 낙수로 인해 처마 밑이 패이지 않도록 놓는 돌을 잇돌이라 부르며 집 사방을 돌아가면서 박는다.), 주춧돌, 돼지먹이통인 돗도고리, 소 질들일 때 쇠코 꿰는 돌코, 논농사를 짓기 위해 물 골로 흐르는 수량을 정확하게 분류시키는 독고마리 등이 그렇다.

아울러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제주성, 정의현성, 대정현성, 환해장성, 진성, 봉수대, 연대, 잣담(목장 경계에 돌을 쌓아 우마의 출입을 방지시키기 위해 쌓여진 담.), 궁림담(숲지대)이 시작되는 지역에 쌓아 우마의 출입을 방지하기 위해 쌓았다.), 켓담(마을과의 경계선에 쌓은 담을 말하며, 강정마을과 도순마을 경계선에 세워진 담을 켓담이라 부르며, 우마의 출입을 위해 터놓은 것을 도라 하는데, 동쪽에 있으면 동정도, 서쪽에 있으면 섯정도, 또는 지명 이름을 빌리어 '난쟁이도'라고도 불렀다.

정도라는 것은 정낭을 걸쳐 놓았기 때문에 정도라 부른다.), 우잣담(집터의 경계선에 쌓아 집을 바람이나 우마의 출입을 방지하기 위해 쌓은 담.), 밧담(밭의 경계선에 쌓아 우마의 출입을 방지하거나, 또는 밭에 심은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쌓음), 산담(산소를 우마로 훼손되거나 불로부터 태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쌓은 담.),성담(4·3사건 때에 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쌓여진 담을 흔히 성담이라 부른다.) 등이 모두 돌을 다듬거나 깨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제주도에 처음 돌을 이용해 밭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밭담을 쌓기 시작한 것은 1234년경 고려 고종 때 김 구 판관에 의해서라고 하나, 이미 그 이전부터 집 주변에 담을 쌓았다는 당회요의 기록으로 보아 거주생활이 시작되면서 일정한 거주 공간을 담으로 표시하였다고 볼 수가 있다. "과거에는 밭 사이에 경계가 없어서 힘센 자들이 날로 약한 자의 토지를 잠식하기에 김구가 지역민들의 고충을 듣고서 돌을 모아 담을 쌓고 경계선을 구분 지으니 지역민들이 편하였다(탐라지(耽羅志), "聚石築垣 … 田古無彊畔 强暴之家 日以蠶食 百姓苦之 金坵爲判官 問民疾苦 聚石築垣 爲界 民多便之", 김 구(金坵)판관은 고려 때의 사람으로서 1234년 고종 21년에 제주판관으로 부임했다.).

근대사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밭에 돌을 쌓게 된 시기는 1962년 전후하여 감귤과수원이 조성되면서 부터이다. 당시에는 밭 가장 자리에 바람을 막아 주던 돌담들이 1948년 4·3 사건이 일어나자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성담을 만들기 위해 모두 가져다 사용해 버렸기 때문에 밭에는 밭둑(시둑) 뿐 돌담이 없었다. 후일 4·3이 진정되자 사람들은 마을의 성담들을 헐어 다시 밭담을 쌓기 시작하였고, 감귤과수원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감귤나무를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밭담을 쌓았고, 우선 밭 안이나 인근 지역의 머들, 빌레, 왕돌들을 깨어 쓰기 시작하였으며, 돌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자, 냇가, 바닷가 등지에 있는 돌들을 깨어 사용했다.

이처럼 무거운 돌을 사용하게 된 것은 밭 가장자리에 심을 삼나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기 때문이며, 또한 방풍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밭의 지형에 따라 간성(間城)이라 하여, 밭 중심 또는 직사각형의 밭에는 여러 군데에 가로 세로 담을 쌓아 바람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주인터넷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주인터넷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돌담 #올레 #갯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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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통일교육위원, 한국녹색교육협회이사,교육부교육월보편집위원역임,제주교육편집위원역임,제주작가부회장역임,제주대학교강사,지역사회단체강사,저서 해뜨는초록별지구 등 100권으로 신지인인증,순수문학문학평론상,한국아동문학창작상 등을 수상한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음(특히 제주지역 환경,통일소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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