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향해 쏜 석궁, 누가 맞았을까

[책이야기] 법원공무원이 본 <부러진 화살>

등록 2009.06.27 13:38수정 2009.06.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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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형 작가가 쓴 책 <부러진 화살>의 표지

서형 작가가 쓴 책 <부러진 화살>의 표지 ⓒ 후마니타스

서형 작가가 쓴 책 <부러진 화살>의 표지 ⓒ 후마니타스

2007년 1월 15일, 재판에서 패소판결을 받은 한 수학자가 재판장의 집을 찾아갔다. 그의 한 손에는 석궁이 들려 있었다. 그는 퇴근하는 재판장에게 다가가 패소 판결을 한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두 사람은 실랑이를 벌였고, 석궁에 장착된 화살은 날아갔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판이하게 달랐다. 

 

석궁'테러'냐 국민저항권 행사냐

 

"법치주의의 최후의 수호자이며 재판 당사자로부터 독립하여야 할 사법부의 구성원에 대하여 위해를 가한 것으로서 재판결과에 대한 보복성 범죄이다.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테러행위다."(법원의 입장)

 

"법을 무시하고 판결하는 판사들의 판결문은 흉기이며, 나는 그 흉기에 당한 피해자 중 하나이다. 석궁 시위는 최후 수단인 국민 저항권 차원의 정당방위이자 법을 묵살한 판사들에 대한 시위이다."(김명호 전 성대 교수)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여론은 후자를 옹호하는 쪽이었다. 대다수 누리꾼들은 "재판장에 대한 물리적 폭력은 정당한 방법이 아니다"라는 호소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 재판부터 똑바로 하라"며 되레 법원 쪽에 책임을 돌렸다. 법원은 석궁 화살을 맞은 것도 모자라 여론에 또 한 번 얻어맞았다.   

 

개인적으로는 충격이라는 말밖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밥 먹고 사는 일터인 법원이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존중('존경'이 결코 아니다)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힘들었다.

 

이른바 '석궁사건'은 사법불신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21세기 사법부의 현주소였다. 석궁사건은 2년이 지났지만 사법부 안팎에 던져준 파장이 적지 않다. 당사자인 김명호 전 성대교수가 상해와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음으로써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끊이질 않고 있다.

 

석궁사건은 사법불신의 현주소

 

그런 가운데 석궁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인터뷰 전문 블로거 서형(필명) 작가가 쓴 <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 펴냄)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라는 무시무시한(?) 부제가 붙어 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이 책은 석궁사건을 현미경으로 보듯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서형 작가는 직접 법정에서 보고 들은 내용과 재판기록·판결문·관련자 인터뷰 등을 책의 뼈대로 삼았다. 2년간 이 사건에 매달린 결과물이다.

 

서형은 석궁사건을 "원칙대로 고집스럽게 살면서 주변에 적당히 사는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성질 깐깐한 한 수학자"가 벌인 판사와의 한판 승부"라고 규정한다.

 

책 앞부분에는 이 사건의 배경이 되는 사건들이 나온다. 김명호 교수가 91년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가 된 후 95년 대학별 고사 채점위원으로서 출제오류를 지적한 사실 때문에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고 승진심사에서 탈락한 사건, 96년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건, 그후 외국생활을 하다가 2005년 귀국하여 다시 재판에 매달리게 된 일까지 상세히 적고 있다.    

 

김 교수가 법원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95년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하면서다. 그는 부교수지위 확인소송을 냈다가 기각당했다. 그후 2005년 다시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으나 2007년 1월 12일 다시 기각당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 석궁사건이 발생했다.

 

서형은 이 판결을 두고 "법원이 사학집단의 조직 논리를 정당화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사학재단으로부터 부당한 징계와 재임용탈락의 희생을 겪고 법에 호소했지만, 법원도 학교의 재량이라며 사학재단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성질 깐깐한 한 수학자"가 벌인 판사와의 한판 승부

 

석궁사건 재판을 지켜봤던 서형은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한다. 서형은 재판 절차가 불공정성했으며 특히 피해자인 박홍우 판사의 진술이 과연 믿을만한지, 현장에 있었다는 부러진 화살은 어디로 갔는지, 화살에 맞은 상처가 경미한 까닭이 무엇인지, 피해자의 와이셔츠에는 왜 혈흔이 없는지 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서형은 "대한민국 사법부는 김명호라는 한 수학자에게 4년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형량을 부과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도전한 사람이 얼마나 가혹한 운명을 경험해야 할지를 보여주었다."고 결론내린다. 

 

사법부를 향한 서형의 평가는 더욱 냉혹하다.

 

"김 교수가 석궁을 왜 들고 갔는지, 정말 쏜 것인지, 아니면 조작된 것인지 등의 문제와는 별개로, 선출되지 않은 최고의 권력으로서 한국이 사법부는 이대로 관용하기 어려울 지경이 아닌가 한다. 한국에서 가장 위선적인 집단이 누군가를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법률가 집단을 꼽을 것이다. 21세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법복을 입고 나와 사법 정의를 외쳐대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초현실적인 부조리극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또다시 충격에 빠졌다. 엊그제 저녁 약속이 있어 열차를 탔는데 석궁사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책에 빠져서 그만 엉뚱한 역에 내리고 말았다. 약속장소에 도착해서도 만나기로 한 벗들이 옆에 온 줄도 모른 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작년에 그를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나눈 법원 개혁과 관련된 대화의 몇 토막이 이 책에 실려있다. 그밖에도 서형은 이 사건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기자·피디·판사·사법피해자의 목소리도 담았다. 그래서 "김명호 교수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채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김명호 교수의 시각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사건을 보는 서형의 시각은 나와는 많이 다르다. 김 교수의 재임용 탈락 재판을 '사학재단 감싸기'로 도식화하거나 석궁사건을 사법부 도전에 대한 괘씸죄로 보는 시각과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고 일부 오해도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사법부를 향한 물리적 폭력은 사법부를 바꾸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내 생각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이에 대한 논쟁은 자칫하면 특정 개인에 대한 평가와 연결될 수 있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정작 화살을 맞고 아파할 사람들은?

 

나는 석궁사건을 특정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동안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누적돼 석궁을 쏘게 했다는 시각이 오히려 맞다고 본다. 아울러 사법부가 바깥과 소통하는 데 너무 소홀했던 점도 한 몫 했다고 본다. 결국 법원이 더 많이 변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일을 보자.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사태로 다시 사법불신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국민들은 아마도 "법원, 그럴 줄 알았다"고 비웃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법원에는 2천여명의 판사를 포함하여 1만여명의 공무원이 있다. 만일 사법부를 향해서 석궁을 쏘면 누가 맞을까. 출세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오버'하는 판사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높은 사람들의 눈치만 보는 소신없는 공무원들? 법원을 성공과 권력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위선적인 인간들? 천만의 말씀이다.

 

내가 보기엔 그런 사람들은 용케도 화살을 피해간다. 설사 화살을 맞더라도 별로 아파하지 않는다. 정작 화살에 맞고 상처를 받을 사람들은 나름대로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판사들이다. 신 대법관이 재판독립과 사법신뢰를 저버렸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판사와 법원공무원들이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법원을 희망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화살을 맞고 쓰러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내겐 불편하다. 나를 더 아프게 한다.

부러진 화살 -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

서형 지음,
후마니타스, 2012


#석궁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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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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