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축제

하나세상 주관 '작은 음악회'를 다녀와서

등록 2009.07.04 12:20수정 2009.07.0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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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음악회'라고 했다. 하지만 큰 음악회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음악회였다. 중소 도시 김천에서 이런 이름의 큰 음악회가 열릴 수 있는 것은 작은 기적에 해당될 것이다. '작은'이라는 수식어를 마다하고 내가 굳이 '큰'을 고집하는 것은 규모가 커서가 아니다. 거대한 것을 다 품고 있는 내용 면을 따져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연출한 음악회는 그래서 아름다움이 서려 있었다. 나는 이 음악회를 지켜보면서 '약자들의 합창'이라는 단어 조합이 자꾸 떠올랐다. 장애인은 물론 사회적 약자이다. 장애인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도 그들과 아픔을 같이 하는 면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 또 어린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 대접을 온전히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도 약자이다.

이들이 어제(7월 3일) 잔치를 베풀었다. 이름하여 '하나세상 작은 음악회'. 벌써 4회째라고 한다. 주관 단체를 일별해 보니 OneStep아동발달지원센터, 김천YMCA, 장애인부모회 김천시지부 등이었다. 이들이 '하나세상'이란 이름으로 모였다. '하나세상'은 장애인 비장애인이 힘을 합쳐 비누를 만들어내는 공동 작업장의 이름이다. 하지만 숨은 뜻은 이보다 훨씬 크다.

인간이 아무리 잘 나도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 관계는 서로 돕고 사는 사회일 때 돈독하게 된다. '하나세상'은 바로 그런 사회를 꿈꾼다. 모두 그런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말로 행동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건강한 자는 힘으로, 배운 자는 지식으로 또 많이 가진 자는 물질로 서로를 도와야 한다. 이럴 때 살기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갈고 닦은 것을 발표한다는 것은 비장애인에 비해 몇 갑절의 훈련이 요구된다. 그래도 발표하기 위해 무대에 서면 엉성하기 그지없다. 예술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린 스스로 균형을 깨는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가 있다. 오늘 하나세상 '작은 음악회'는 바로 그런 자리였다. 그들의 어눌한 노래에서 그리고 서툰 율동에서 오히려 감동을 받게 했다. 저 정도의 발표를 하기 위해서 그들이 투여한 시간은 얼마이며 쏟은 정성은 또 얼마일까?

마음과 외모가 동시에 예쁘다고 소문난 박윤경 아나운서의 사회도 돋보였다. 아주 편안하게 그리도 여유를 찾게 만들어주는 그의 목소리에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깔끔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소개로 처음 등장한 '황금물결'은 대학 CCM 동아리라고 했다. 아마추어도 아닌 그렇다고 프로는 더욱 아닌 그들의 밴드 연주는 우리의 민요 '아리랑'이어서 더 친근감이 갔다. 뒤이어 보리피리의 중창, 김천시자원봉사센터수화봉사단의 '사노라면' 수화는 열정이 녹아 있어서 좋았다. 사랑의 집 미니멈크루의 B-boy 댄스는 록 음악에 맞추어 재빠르게 움직이는 몸동작인데, 춤추는 자들과 청중이 하나되어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봉계아동지역센터 태권무에선 어려움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게서 기상(氣像)을 엿볼 수 있었고, 장애인부모 세 쌍이 출연해 보여준 스포츠 댄스는 아픔을 이긴 뒤의 몸짓-아주 매끈하면서도 뒷맛을 잇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난타(亂打)'는 어지럽게 두드린다는 말이다. 여기엔 길이의 장단도 필요 없고, 소리의 강약이 제각각이어도 괜찮다. 장애 · 비장애 아동들이 함께 한 이 난타 공연에서 그들의 맺힌 한이 소리로 동작으로 승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효동어린이집 아동들의 인라인퍼포먼스는 장내를 어지럽게 만들어 즐거운 환호를 지르게 했다. 무리를 지어 사라지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사라지는 그들의 집단무(集團舞)에서 인라인의 현대미와 강강수월래의 고전미를 결합한 듯한 느낌은 나만 느낀 것일까? 김천 지역에서 장애인 사역으로 모범을 보이고 있는 장애인사랑교회의 찬송가 수화는 분위기를 급전직하(急轉直下) 경건 · 거룩으로 일순간 바꾸어놓았다. 저 멀리 스탠드에서 역시 수화로 지휘하는 그 교회 목사님에게서 거룩 속에 솟아나는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모처럼 경험하는 감동이었다. 한걸음어린이집 슈퍼스타 율동으로 참가 단체의 장기를 모두 끝냈다. 시간의 너무 빨리 지난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금방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끝에 와 있다는 것, 재미있고 유익했다는 말일 것이다.


마지막 메인 이벤트로 준비된 '한빛예술단 브라스 12중주'의 관악연주 및 노래는 은은하면서도 웅장한 음률로 황악산의 한밤을 장식했다. 과연 프로다웠다. 장애인도 노력 여하에 따라 뛰어난 소리를 낼 수 있고 또 매끄러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약자를 위해 소외 계층을 위해 불철주야 뛰는 그들의 앞으로의 활약이 더 기대된다. 나는 요즘 찬양에서 은혜 받는 기회가 잦다.

비로 오락가락한 날씨에 행사 준비 팀이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다행히 축제가 시작되고 나서 바로 비가 그쳐 우리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이번 행사의 후원이 김천시로 되어 있지만, 결코 한가하지 않을 시장이 직접 참석해서 인사말을 해준 것은 참석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의원들도 함께 했고, 사회복지 관계자들도 자리를 같이 해서 힘을 보탰다.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이런 마음이 우리 김천시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자부심을 갖게 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해도 소외받는 계층의 행사에는 함께 해주는 것이 시대의 조류에 부합하는 공무원 상(像)이라고... 신경림은 그의 시 어딘가에서 '못난 사람끼리 만나면 아무도 못난 것이 아니다'라는 시어(詩語)를 만들어 냈는데, 오늘 우리들의 행사가 바로 그랬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약하고 부족해서 기 펴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엮어낸 잔치, 그것은 분명 '우리들의 축제'였다. 잔치를 준비한 실무자들의 노고도 무척 돋보였다. 그들에게 심심한 찬사를 보낸다.
#하나세상 #작은 음악회 #김천 YMCA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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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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