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가 사이좋게 사는 마을

김수종의 문경, 예천, 영주 여행기 ④

등록 2009.08.04 12:55수정 2009.08.0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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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봉현면 유전리에 위치한 본가에서 저녁식사를 한 다음, 마당을 산책하는데 영주시내에 살고 계시는 형님 내외분과 조카가 왔다. 오랜만에 동생 부부와 조카가 와서 방문을 한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인 질녀만을 제외하고 온 가족이 모여서 묵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연우는 사촌 형 연수와 함께 예천에서 사온 잠자리채를 들고 마당을 누비며, 잠자리 두 마리를 잡아왔다. 자연보호와 환경을 위해 잠자리를 잡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내 놓아주는 것이 좋다는 내 권고에 연우는 문밖으로 나가 두 마리 모두를 날려 보냈다. 다음 날 오후에 잡은 세 마리도 잡기만 하고 이내 날려 보냈다.

        

a 영주 영주시 봉현면의 부모님 과수원

영주 영주시 봉현면의 부모님 과수원 ⓒ 김수종

▲ 영주 영주시 봉현면의 부모님 과수원 ⓒ 김수종

 

형님 가족이 떠나고, 우리 가족과 부모님은 이내 잠자리에 들었다. 1,500평 규모의 작은 과수원을 경영하고 계시는 부모님은 과수원 가운데 조그만 집을 짓고 살고 계신다. 원래 엄친께서는 영주시내에서 30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7년 전 귀촌하여 농사를 짓고 계신다.

 

농사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관계로 정말 취미생활을 하는 정도로 과수원을 하고 계시지만, 일조량이 많으며 토질이 좋고 일교차가 심한 해발 500M 정도의 고지대라 과일은 맛이 좋은 편이다.

 

우리 가족은 보통 겨울이 지나 늦은 봄까지 영주에서 보내 온 사과를 즐길 수 있고, 된장이나 고추장, 김치는 늘 부모님이 직접 만들어 보내주는 관계로 맛있게 시골의 맛을 느끼며 살고 있다.

          

a 영주 부모님 과수원 언저리에 있는 큰 미류나무

영주 부모님 과수원 언저리에 있는 큰 미류나무 ⓒ 김수종

▲ 영주 부모님 과수원 언저리에 있는 큰 미류나무 ⓒ 김수종

특히 할머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된장만을 찾는 연우 때문에 다른 된장을 입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식구들은 어머님이 만들어 주시는 음식에 길들어져 있다.

 

8월 1일(토), 아침에 일어나니 연우는 벌써 신이 나서 마당을 배회하고 있다. 잠자리채를 들고 설치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흔들흔들 흔들어대며 걷는 모습 또한 어릿광대와도 같아 재미있다.

 

나도 연우랑 같이 산책을 하면서 잠자리채를 휘둘다가 집으로 들어가 아침식사를 마쳤다. 연우가 좋아하는 감자국에 김, 오이, 계란찜이 좋았다.

 

식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어디로 갈까 고민을 했다. 늘 가던 부석사, 소수서원, 선비촌은 뒤로 하고 하버드 출신의 미국인 현각스님이 주지로 계셨던 부석면 남대리의 현정사, 어제 갔던 예천의 회룡포나 안동의 하회마을 같은 분위기의 물돌이 마을인 무섬마을, 영주에 몇 군데 있는 전통된장공장, 고택 순례, 그것도 아니면 은어축제가 열리는 봉화군으로. 많은 고민을 하다가 우선은 연우랑 집사람은 가보지 못한 무섬마을로 길을 잡았다.

               

a 영주 무섬마을

영주 무섬마을 ⓒ 영주시청

▲ 영주 무섬마을 ⓒ 영주시청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水島里), 무섬마을. 물 위에 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영주와 봉화를 지나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동쪽 일부를 제외한 3면을 휘돌아 흐르고, 내 안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톱 위에 마을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마을 뒷산은 태백산 끝자락, 앞산은 소백산 끝자락이 만났고 앞쪽으로는 태백산 물과 소백산 물이 합쳐진다. 풍수학적으로도 매화나무 가지에 꽃이 핀 형세 또는 물 위에 연꽃이 뜬 형세로 기운이 좋은 땅이다.

 

마을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여겨진다. 반남 박씨(潘南 朴氏) 입향조(入鄕祖)인 박수가 안동에서 영주로 피난을 와 살기 시작한 뒤,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예안) 김씨(宣城(禮安) 金氏) 대(臺)가 영조 때 무섬에 들어왔다. 이 무렵부터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가 함께 세거해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마을 전체가 고택과 정자로 이루어져 있고, 천혜의 자연조건을 자랑한다. 옛 조선선비의 기품을 흠씬 맛볼 수 있는 곳이 무섬마을의 특징이다. 마을의 중심부 높은 곳에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 '만죽재(晩竹齋)'가 있다.

             

a 영주 무섬마을 만죽재 고택

영주 무섬마을 만죽재 고택 ⓒ 김수종

▲ 영주 무섬마을 만죽재 고택 ⓒ 김수종

 

만죽재가 지어진 것은 1666년(현종7)으로, 원래 당호는 '섬계초당(剡溪草堂)'이었으나 박수의 8대손이 중수하며 당호도 바꾼 것이라 한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정면에 5칸의 정침(正寢)을 두고 양쪽에 익사(翼舍 날개집)를 달았으며, 앞쪽에 사랑채가 달린 ㅁ자형 평면 구성을 하고 있다. 사랑채 앞면은 낮은 기단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밖으로 돌아가면서 툇마루를 놓았다. 지금은 입향조 박수의 11대 종부가 홀로 살고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해우당(海愚堂) 고택은 1879년(고종16)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락풍(金樂豊 1825~1900)이 1875년(고종12)에 건립한 것이다. 무섬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으로서 전형적인 ㅁ자형 가옥이다.

 

앞의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큰사랑과 아랫사랑을 두었는데, 특히 우측의 큰사랑은 지반을 높여 원주에 난간을 돌려 정자처럼 누마루를 꾸몄다. 이 누마루에 '해우당'이라고 쓴 흥성대원군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현재는 빈집이다. 

          

a 영주 흥선대원군이 쓴 해우당 현판

영주 흥선대원군이 쓴 해우당 현판 ⓒ 김수종

▲ 영주 흥선대원군이 쓴 해우당 현판 ⓒ 김수종

 

대표적인 이 두 건물을 포함하여 김덕진 가옥, 김뢰진 가옥 등 4채가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고종 때 병조참판을 지냈다는 박재연 고택, 김위진 가옥, 박덕우 가옥, 박천립 가옥, 김정규 가옥 등 5채가 도문화재자료로 잘 보존되어 있다.

 

마을의 대부분 가옥은 ㅁ자형이며, 까치구멍집이라 불리는 태백산을 중심으로 경북 북부지역에 분포하는 산간벽촌의 주택 형태다. 까치구멍집이라 함은, 부엌 연기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붕마루 양단의 하부에 만든 까치구멍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구멍들이 어찌나 앙증맞은지 모른다. 섬 아닌 섬, 무섬은 주택 배치도 마치 섬마을처럼 높은 곳을 등지고 대부분의 집들이 강을 바라보며 배치되어 있다.

                     

a 영주 무섬마을 모래사장에서 연우랑 물놀이를 하던 도중

영주 무섬마을 모래사장에서 연우랑 물놀이를 하던 도중 ⓒ 김수종

▲ 영주 무섬마을 모래사장에서 연우랑 물놀이를 하던 도중 ⓒ 김수종

 

마을엔 가게가 없다. 민박집도 거의 없다. 마을 입구에 2003년에 제정된 '무섬마을 헌장'이란 간판이 서있다. '마을 보존회의 허가 없이 술을 팔거나 식당, 매점을 열 수 없고, 유교 윤리를 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한다'고 적혀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 상업화되는 것을 보고 안 되겠다 싶어 무섬마을 주민들이 정한 규약이다.

 

선비정신과 반골정신이 강했던 무섬마을 사람들은 일제 때 아도서숙(亞島書塾)을 열어 양반 천민 할 것 없이 계몽사상을 가르치고 독립운동도 전개했다. 작은 마을이지만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이가 다섯 명이나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주 #무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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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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