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항아리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항아리

등록 2009.09.17 09:09수정 2009.09.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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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작고 아담한 엄마의 항아리 ..

작고 아담한 엄마의 항아리 .. ⓒ 정현순

▲ 작고 아담한 엄마의 항아리 .. ⓒ 정현순

"그 항아리들 사오는 거유?" "아니요. 친정어머니께서 쓰시던 항아리인데 돌아가셔서 기념으로 놔둘려고 가지고 왔어요" " 돌아가셨어~~ 난 아직도 항아리를 보면 아주 좋아. 저렇게 예쁜 것을 요즘 사람들은 왜 모르지"하시며 집으로 들어가신다. 차에서 항아리를 내리는 것을 본 할머니가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시면서 내게 하는 말이었다. 몇 동에 사는 것까지 물어보신다. 그분은 70대~80대사이로 보이는 연세 지긋한 할머니시다.

 

며칠 전 난 남동생 집에 가서 작은 항아리 두 개를 가지고 왔다. 언젠가 올케가 "혹시 항아리 필요하세요? 필요하시면 가지고 가세요. 우리 혼자 쓰기에는 너무 많아서요."했던 기억이 나서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그렇게 큰 항아리는 아니란다.

 

 만약 그 항아리를 누구 주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올케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이 제법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항아리로 집안 인테리어나 화분으로 인기가 아주 좋아 분리수거로 내놓아도 금세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쓰신던 항아리라 아무도 주지 않았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어느날 문득 나도 어머니를 오랫동안 생각할 기념될 물건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항아리를 가져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여기저기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있을 테니 말이다 .하여 항아리를 가지러 가서 봤더니 아담한 것이 아주 예뻤다. 깨끗이 씻어나서 더 그렇게 빛이 나고 예뻐 보였을까? 난 올케에게 "항아리가 아주 예쁜데 나주고 후회할 것 같으면 그냥 가지고 있어도 돼"했다.

 

올케는 "형님이니깐 드리지요. 남이 달라고 하면 안 주지요"한다. 그러면서 자기네 쓸 것도 충분히 있다고 가지고 가란다. 거실에 나란히 놓여있는 항아리를 보니 마치 친정어머니를 보고 있는 듯했다.

 

4년 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장독대는 늘 풍성했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항아리는 아주 소중하게 자리를 잡고있었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한 작은 약탕기부터  아주 작고 앙징스러운 항아리,  중간항아리, 김치가 몇 십 포기 들어가는 아주 큰 항아리, 새우젓항아리, 소금항아리. 간장, 된장, 고추장항아리 등 쓰임새도 모양도 골고루 층층이 있었다.  냉장고가 있기전에 쓰시던 엄마의 항아리들도 함께했다.

 

어린시절, 단독주택에 살았을 때의 모습이 흑백의 사진처럼 선명하다. 마치 키순서대로 줄을 서있듯이 그렇게 어머니의 장독대는 정리정돈이 잘되어있는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했다. 그런 항아리에 고추장, 된장을 담아놓고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보았을 어머니. 닦고 닦고 또 닦고.

 

장독대를 보면 그 집 주부의 살림솜씨를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어머니의 장독대는 늘 정갈 그자체였다.  그리곤 맛있게 잘 익은 된장, 간장을 나에게 나누어 주셨던 어머니생각이 간절하게 나는 날이었다. 

 

그렇게 예쁜 항아리를 고르려고 이리보고 저리 봤을 어머니. 내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상하게도 어머니생각이 더 많이 나곤 한다. 어머니로서 또 같은 여자로서 어머니가 자꾸만 생각난다.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후회와 아쉬움이 점점 깊어만 가는 것은 가을탓일까?

 

우리 집 베란다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를 잡아 작고 아담한 항아리 두 개를 갖다 놓았다. 보고 또 봐도 잘 가지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가 놀러왔다. 난 " 딸 저 항아리 정말 예쁘지 않니?"그렇게 물어보았지만 건성으로 "응 그러네."한다. "얘 그거 할머니가 쓰시던 거야. 기념으로 가지고 왔어"하니 그제야 다시 한 번 쳐다본다.

 

난 친정이 시골인 친구에게 메주 두덩어리를 부탁했다. 내년에는 작고 아담한 항아리에 간장, 된장을 담아놓고 먹을 생각이다. 친구는 "자주 담그는 것도 아닌데 이왕 담그는 거 한말은 해야지. 두덩어리를 하니" 한다. "그러게 그냥 두덩어리만 부탁해"했다. 

 

그 항아리에  메주 한말로 간장을 담그기에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 항아리에 간장, 된장을 담아놓고 나도 어머니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또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잘 익은 된장, 간장을 딸아이에게도 나누어 주련다. 내 어머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2009.09.17 09:09ⓒ 2009 OhmyNews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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