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들 "언젠가 터질 것이 터진 것일 뿐"

청와대의 거액 출연금 요구당한 기업들, 내심 반기면서도 '곤혹'

등록 2009.10.07 15:03수정 2009.10.0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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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는 2008년 1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 등이 참석한 'IPTV 상용서비스 출범 기념식'을 열었다.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는 2008년 1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 등이 참석한 'IPTV 상용서비스 출범 기념식'을 열었다. ⓒ 방송통신위원회


"이미 업계에선 몇 달 전부터 소문이 파다했었지요. 코디마(한국디지털미디어협회) 출범때부터 말이 많았고, (이번 모금건도) 언젠가 터질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국내 대형 통신회사 한 임원의 말이다. 7일 청와대가 한국디지털미디어협회(KoDiMA, 코디마)에 거액의 출연금을 내도록 통신회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관련 회사들은 구체적인 언급 자체를 꺼렸다.

업계 내부 종사들 사이에선 인터넷 쌍방향 TV서비스인 아이피티브이(IPTV) 사업 자체가 여전히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차원의 기업옥죄기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결국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업 입장에선 훗날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숨기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런 사실이 공개돼 단기적으로 기업 부담을 덜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기업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KT와 SK "논의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금액은 확정된 바 없다"

통신3사 가운데 하나인 KT는 청와대의 코디마 거액 출연금 요구에 대해, "기금 마련과 관련해 (청와대 등과) 협의를 한 적은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금액이나 내용 등에 대해선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이날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산하 방송정보통신비서관실 박노익 행정관이 지난 8월 초 KT·SK·LG 등 통신 3사 임원을 청와대로 불러 코디마 기금 출연을 요구하면서, KT와 SK에 각 100억 원씩, LG에 50억 원 등 모두 250억 원을 요구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KT와 SK 쪽에선 청와대까지 나서서 기금을 요청하자 결국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KT쪽에선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KT 관계자는 "대외협력 담당부서에서 코디마 기금과 관련해 논의를 한적은 있지만, 100억 원을 내기로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SK도 마찬가지. SK그룹의 통신계열사 한 임원은 "코디마 기금 출연 문제는 예전부터 논의가 됐었던 사안"이라며 "아직 구체적으로 얼마를 내기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기금 출연에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던 LG의 경우는 아예 구체적인 언급 자체를 꺼렸다. LG데이콤 관계자는 "코디마 기금 출연 문제에 대해선 뭐라 말할수 있는 것이 없다"면서 "관련 부서로부터 어떤 정보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사업은 지지부진한데, 정권 차원에서 돈내라 그러니..."

 지난해 12월 12일 열린 IPTV 상용서비스 개막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지난해 12월 12일 열린 IPTV 상용서비스 개막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 방송통신위원회


하지만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작년 10월께 코디마가 출범할 때부터 거액의 기부금 마련을 비롯해 여러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방송통신의 융합 상징으로 IPTV 사업을 밀어부치면서 기업들의 투자를 재촉하고 있지만, 해당 업체들은 경기침체에 따른 사업부진과 이에 따른 적자 누적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코디마 창립 때 협회 운영비 명목으로 통신 3사로부터 20억 원의 기부금을 받았다"면서 "그때 KT와 SK, LG 순으로 8(억)대 8(억)대 4(억)로 배분했고, 이후 각자 더 돈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통신사업자 협회를 비롯해 케이블TV방송협회 등 관련 협회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방송통신융합이라는 이름으로 코디마를 또 만들 필요가 있었느냐는 말이 있었다"면서 "(코디마) 회장이 차기 방통위원장 설까지 나돌 정도로 정권의 실세로 알려지면서, 업체들 입장에선 협회의 요구를 마냥 거부하기도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IPTV 업계 관계자는 "통신분야에서 정부가 내세울만한 사업이라는 것이 IPTV 활성화를 꼽고 있지만, 업체들 입장에선 초고속망 투자와 가입자 확보가 먼저"라면서 "안정적인 초고속망과 가입자라는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진 후에 IPTV 사업도 탄력을 받지만, 현재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KT의 쿡TV를 비롯해 SK브로드밴드의 브로드엔TV, LG데이콤의 마이LG TV 등 IPTV 가입자는 꾸준히 증가하고는 있지만, 증가 속도는 여전히 더딘 상태다.

9월말 현재 IPTV 가입자수는 모두 93만6000명. KT 등 IPTV 3사는 방통위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서 올해 224만2000명의 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었다. 목표치에 한참 모자란 수치다.

게다가 작년 말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 따라 IPTV의 수익성도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는 실정이다.

7일 방통위 국정감사에서도 이같은 IPTV 사업의 부실 문제도 제기됐다.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 IPTV 사업자들은 한해에도 수백억 원 이상에 달하는 지상파 재전송 대가로 인해 차별화된 콘텐츠 및 서비스 개발은 고사하고,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수익구조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이같은 상황에서 일부 업체에게 수십억원씩 기금을 내라고 하면 당연히 부담스러울수 밖에 없다"면서 "당분간 기금 조성이 미뤄지거나 잠정적으로 중단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엔 나중에 기업들이 다른 명목으로 돈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통위 #IPTV #코디마 #최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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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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