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인 하늘재에서 문경새재까지

여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부봉

등록 2009.10.28 10:19수정 2009.10.2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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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부봉이 아름답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부봉이 아름답다.   ⓒ 김연옥

▲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부봉이 아름답다.   ⓒ 김연옥

 

산행을 하다 보면 한 번은 꼭 가고 싶은 산이 있다. 내겐 부봉(917m, 경북 문경시 문경읍)이 바로 그런 산이다. 어쩌면 바위산이라 꽤 위험하다는 이야기 때문에 도리어 내 특유의 호기심이 자극되었는지도 모른다.

 

부봉(釜峰)은 여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하나로 펼쳐져 있는 산이다. 높이로 따진다면 제2봉(933.5m)이 으뜸인데, 정상 표지석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제1봉에 세워져 있다. 지난 18일, 드디어 나는 경남사계절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늘 내 마음 한 자락에 자리잡고 있던 부봉 산행을 나서게 되었다.

 

아침 7시에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이라 전해지는 하늘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께였다. 하늘재(525m, 명승 제49호)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고개로 신라 아달라왕 3년(156)에 북진을 위해 열린 길이다.

 

계립령, 지릅재, 대원령이라 부르기도 했던 하늘재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전략거점이다 보니 고구려, 백제와의 영토 분쟁이 잦아 전쟁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지만, 조선 태종 14년(1414)에 지금의 문경새재 길이 열리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a 탄항산(856m) 정상  

탄항산(856m) 정상   ⓒ 김연옥

▲ 탄항산(856m) 정상   ⓒ 김연옥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산에는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진한 가을 냄새가 내 코끝을 흔들어대고, 내 가슴 속에도 축복처럼 가을이 곱게 내려앉았다. 빨간색, 노란색 물감을 풀어 색칠해 놓은 듯한 숲길을 걸으니 마치 화려한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탄항산(856m) 정상에 이른 시간이 오전 11시께. 나는 일행과 함께 부봉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a 부봉 제1봉(917m) 정상  

부봉 제1봉(917m) 정상   ⓒ 김연옥

▲ 부봉 제1봉(917m) 정상   ⓒ 김연옥

 
낮 12시 30분께 로프를 잡고 바위를 타고 올라 부봉 제1봉(917m) 정상에 도착했다. 알록달록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면서도 조화로운 가을산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산행의 피로를 날려 보냈다. 거기서 달콤한 모과주를 곁들여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제2봉과 3봉 사이에 있는 부처바위를 지나 5분 정도 걸어가자 제3봉(911m) 정상으로 오르는 바위가 나왔다. 길이가 긴 편은 아니지만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바위를 타려고 하니 은근히 겁이 났다. 산행 길에 이따금 로프를 잡고 바위를 타야만 할 때면 더러 이 로프가 튼튼할까 하는 불안감도 든다.

 

a 부처바위(사진 오른쪽)  

부처바위(사진 오른쪽)   ⓒ 김연옥

▲ 부처바위(사진 오른쪽)   ⓒ 김연옥

a 부봉 제5봉 정상에서 바라본 제6봉(916.2m)의 아름다운 풍경.  

부봉 제5봉 정상에서 바라본 제6봉(916.2m)의 아름다운 풍경.   ⓒ 김연옥

▲ 부봉 제5봉 정상에서 바라본 제6봉(916.2m)의 아름다운 풍경.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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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옥

  ⓒ 김연옥

 

그러나 바위를 타는 산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나는 힘을 내어 올라갔다. 여기서 점심을 먹었으면 하고 모두들 못내 아쉬워했을 정도로 3봉 정상은 참으로 넓고 조망이 탁 트여 가슴속까지 시원했다. 부봉은 자주 로프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스러운 느낌도 들지만 한편 스릴을 즐길 수 있어 산행이 상당히 재미있다.

 

제5봉(916m) 정상에서 바라본 제6봉(916.2m)의 풍경은 위엄이 서려 있으면서도 몹시 아름다웠다. 6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수월했다. 우리는 6봉 정상에서 시원한 물을 들이켜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동화원 쪽으로 가서 문경새재로 하산을 서둘렀다.

 

a 문경새재로 내려가는 길에.  

문경새재로 내려가는 길에.   ⓒ 김연옥

▲ 문경새재로 내려가는 길에.   ⓒ 김연옥

 
초점(草岾), 조령(鳥嶺)이라 불렸던 문경새재(명승 제32호,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는 대표적인 조선 시대의 옛길로 민속적,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었다는 험한 고개였지만 영남 지방에서는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 길로 이용되어 숱한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사연 많은 고개이기도 하다.

 

a 상처 난 소나무가 들려주는 뼈아픈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텐데...  

상처 난 소나무가 들려주는 뼈아픈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텐데...   ⓒ 김연옥

▲ 상처 난 소나무가 들려주는 뼈아픈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텐데...   ⓒ 김연옥

 

문경새재를 걸어가면 V 모양으로 움푹 팬 상처를 지닌 소나무들을 볼 수가 있다. 일제 말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연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해서 송진을 채취했던 자국이다. 반 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 마음이 몹시 아팠다.

 

오후 3시 20분께 조곡관에 도착했다.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던 문경관문(사적 제147호,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가운데 두 번째 관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문경새재에 관문을 설치해야 하는 필요성이 꾸준히 논의되어 오다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3개의 관문이 완성되었는데 제1관문을 주흘관, 제2관문을 조동문 또는 조곡관,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 불렀다.

 

a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   ⓒ 김연옥

▲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   ⓒ 김연옥

a 문경관문 제1관문 주흘관.  

문경관문 제1관문 주흘관.   ⓒ 김연옥

▲ 문경관문 제1관문 주흘관.   ⓒ 김연옥

 

오후 4시 10분께 문경관문의 첫 번째 관문인 주흘관에 이르렀다. 폐허가 되어 있던 곳을 복원해 놓은 조곡관과 조령관에 비해 주흘관은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관문이다. 굳이 산행을 하지 않더라도 문경관문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 공무로 출장한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조령원터(鳥嶺院址), 한국식 통나무집이라 할 수 있는 귀틀집 등 문경새재 도립공원에는 꽤 볼거리가 많다.

 

옛길 따라 걸어 내려오면서 문경새재로 한양을 넘나들던 옛사람들의 삶을 그려 보았다. 그들이 이룬 꿈, 그리고 결국 이루지 못하고 꺾인 잃어버린 꿈들이 내게도 느껴지는 듯했다. 삶은 정답이 없는지도 모른다. 어떤 삶의 형태가 행복한 것인지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연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되지 않을까.

#하늘재 #부봉 #문경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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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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