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에게만? 광장 통제 명분 잃었다

[取중眞담] '이명박표' 청계천과 '오세훈표' 광화문광장 홍보 노렸나

등록 2009.11.29 20:50수정 2009.11.2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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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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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을 위해 29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 동안 세종로네거리에서 광화문까지 세종문화회관앞 도로와 광화문 광장이 전면차단되었다. 세종문화회관앞 도로에 세워진 차량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 권우성


민주적인 광장 이용에 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본의 아니게 드라마 <아이리스>가 불씨를 지폈다.

KBS 2TV 드라마 <아이리스>의 29일 서울 광화문 현장 촬영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드라마 제작진은 서울시와 정부로부터 광화문에서 세종로사거리로 향하는 편도 5차로를 12시간 동안 이용하는 협조를 받았다.

이런 전례 없는 파격적인 촬영 협조 밑바탕에는 홍보 효과 기대심리가 깔려 있다. 김선순 서울시 홍보담당관은 "이 드라마가 내년 초 일본 방영이 확정됐고 아시아와 유럽 판매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서울의 모습을 해외에 널리 알릴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아이리스>가 지핀 광장 이용 논란... 최종 이득은 누구에게?"

지난 22일 <한국경제>는 청와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이 대통령은 <아이리스>가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고 대통령과 관계되는 일인 데다, 청계천 장면도 나오고 해서 방영 초기 자주 봤다"고 보도했다.

<아이리스>에는 '이명박표' 청계천과 '오세훈표' 광화문광장 등 서울의 다양한 모습이 등장한다. 게다가 국내에서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병헌·김태희 등 한류스타까지 나온다. 여기에 29일 광화문 촬영 자체가 큰 뉴스가 됐다. 서울시와 정부로서는 당연히 홍보효과를 기대할 만하다. 이래저래 <아이리스>는 서울시와 이명박 정부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와 정부는 마냥 웃을만한 상황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우선 인기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으로 시민들 인식에 깊이 새겨진 게 하나 있다. 바로 그동안 서울시와 정부가 광화문광장 이용을 허용할 때 공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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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야4당은 지난 8월 3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에 표현의 자유를!'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화 시위가 금지된 광장은 닫힌 공간'이라고 주장하며 광화문 광장 조례안 폐지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로 규정한 경찰이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참석자들을 강제연행하고 있다. ⓒ 권우성


그동안 정부는 광화문광장 등에서 대규모 집회·시위는 물론이고 1인시위도 금지해왔다. 지난 8월 3일에는 광화문광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기자회견을 연 시민단체 관계자 10명을 연행하기도 했다. 개장 이후 경찰은 광화문광장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역시 행사 허용을 ▲공익을 목적으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행사 ▲공연과 전시회 등 문화·예술행사 ▲어린이 및 청소년 관련 행사로만 국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와 정부가 드라마 촬영을 위해 차량 통제 등 대낮 12시간을 협조해줬으니 "편파적"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서울시와 정부 역시 이런 지적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2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이리스> 광화문 촬영이 전국적인 뉴스가 되는 바람에 이젠 시민사회단체가 더욱 거세게 광장 이용을 요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드라마를 통한 홍보 효과도 분명 있겠지만, 이후에 벌어질 정치적 논쟁을 고려하면 과연 (서울시에) 이득인지 아닌지는 좀 더 시간을 갖고 따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리스> 촬영으로 광장 이용 문제 의식 커져"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시민사회 진영은 앞으로 공정한 광장 이용을 위해 더욱 목소리를 높일 것이 뻔하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필요하면 영화든 드라마든 광화문광장에서 찍어야 하고, 서울시와 정부의 지원도 있어야 한다"며 "다만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부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행사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광장 이용 권리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 팀장은 "이번 <아이리스> 촬영을 보고 시민들이 광장 이용에 관한 문제의식을 더욱 많이 갖게 됐다"며 "주민발의를 통한 광장 조례 개정 운동을 더욱 강하게 진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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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을 위해 29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 동안 세종로네거리에서 광화문까지 세종문화회관앞 도로와 광화문 광장이 전면차단되었다. 가방을 들고 탈출하는 이병헌(김현준 역)을 보호하기 위해 김태희(최승희 역)와 김소연(김선화 역)이 엄호사격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누리꾼들도 현재 인터넷에서 댓글 등을 통해 광장 이용에 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아이리스> 촬영에 비판적인 의견도 많지만, 대부분 "며칠 전에 촬영을 공지했고 드라마와 영화는 장소 협조 없이는 제작이 불가능하다"며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비판적인 집회·시위도 공정하게 보장하라"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지금까지 "이중 잣대"로 "불공정"하게 광장 이용을 허용한 서울시와 정부의 향후 움직임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드라마는 짧고 언젠간 끝난다. 하지만 시민사회 진영의 요구는 줄기차게 이어질 게 자명하다. 누군가 광장 이용에 차별을 받는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시민들은 드라마 <아이리스> 12시간 파격 촬영 협조를 떠올릴 것이다.

결국 드라마 <아이리스>의 광화문광장 촬영은 새로운 고민과 과제를 던져 준 셈이다. 서울시와 정부의 손익계산서는 시간이 흐른 뒤 따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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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을 위해 29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 동안 세종로네거리에서 광화문까지 세종문화회관앞 도로와 광화문 광장이 전면차단되었다. <아이리스> 촬영이 한창인 세종문화회관앞 도로와 광화문 광장은 배우와 촬영팀으로 분주한 가운데, 우산을 든 일반 시민들은 도로 주변과 맞은편 인도에서 촬영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아이리스 #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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