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이해와 맞아떨어진 4대강 사업?

[取중眞담] 대기업-국책기관-부처 손잡고 '맞춤형 연구용역' 의혹

등록 2009.12.21 19:10수정 2009.12.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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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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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정비사업 낙동강 18공구(함안보)·22공구(달성보) 기공식이 '낙동강 살리기 희망 선포식'이란 이름으로 2일 오후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하리 달성보 공사 현장에서 열렸다. 공사현장에서 '현대건설' 간판과 굴삭기들이 보인다. ⓒ 권우성


이명박 정부는 '신념'처럼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하천정비사업'이라고 주장한다. 홍수를 예방하고 하천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특정산업 육성 프로젝트'를 연상시킨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건설산업'과 '장비산업', '조경산업'이 결합된 대형국책사업이다. 당연히 '4대강 특수'라는 것도 이 3대산업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실체를 '건설-장비-조경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국가프로젝트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런 시각을 뒷받침하는 징후들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턴키공사 입찰 담합 의혹이 제기됐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최근에는 국책연구기관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핵심 건설기계인 굴삭기의 등록대수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굴삭기 등록대수 통계 조작 의혹'은 턴키공사 입찰 담합 의혹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다. 여기에는 특정 대기업뿐만 아니라 국책연구기관과 일부 부처가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기산협-지경부 의기투합, 굴삭기·펌프트럭의 수급조절 실시 '무산'

일단 2006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김동철(광주 광산갑, 민주당) 의원은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건설기계대여업을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건설기계의 총공급량을 규제하기 위해 수급조절제도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덤프, 레미콘, 타워크레인 등 건설운송노조뿐만 아니라 건설기계 사용자들의 단체인 대한건설기계협회(건기협)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것이었다. 이들은 건설기계 종사자들의 심각한 생존문제가 건설기계의 과잉공급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수급조절을 통해 공급과잉상태를 해소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최상의 대안이었다.    


김 의원의 개정안은 지난 2007년 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는 '건설기계수급조절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해 4월 1차 회의에 이어 올 6월 2차 회의를 열었다.

2차 회의의 안건은 '건설기계 수급조절 시범사업'이었다. 굴삭기·덤프트럭·믹서트럭·펌프트럭·불도저·기중기·롤러 등 7개 기종이 수급조절 대상이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굴삭기·덤프트럭·믹서트럭·펌프트럭 등 4개 기종에 한해 2년간 수급조절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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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해양부가 의뢰한 건기연의 '건설기계 수급계획 수립 연구' 용역 보고서. ⓒ 오마이뉴스

국토해양부는 이러한 시범사업을 위해 2차 회의 개최 9개월 전인 지난해 9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에 '건설기계 수급계획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이에 따라 건기연은 '건설기계 기종별 향후 5년간(2009~2013년) 등록대수 예측'까지 분석한 결과를 같은 해 12월 내놓았다.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1월 현대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등이 주도하는 한국건설기계산업협회(건기산협)도 건기연에 '굴삭기 등록실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이는 정부의 굴삭기 수급조절 실시에 대비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연구용역 결과는 2차 회의가 열리기 전인 지난 3월에 나왔다.

국토해양부는 자신들이 발주한 건기연의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6월 2차 회의를 열고 굴삭기·덤프트럭·믹서트럭·펌프트럭의 수급조절 실시 여부를 논의했다. 하지만 건기산협과 지식경제부측 심의위원들이 건기연의 또 다른 연구용역 결과를 근거로 굴삭기·펌프트럭의 수급조절 실시 방안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결국 믹서트럭·덤프트럭 2개 기종만 향후 2년간 신규등록을 제한하기(수급조절)로 결정했다.

국책연구기관, 특정 대기업에 4대강 특수 안겨주려 '맞춤형 연구용역'

굴삭기·펌프트럭의 수급조절 실시를 무산시킨 '무기'는 건기산협이 건기연에 의뢰한 '굴삭기 등록실태 조사 연구' 용역 결과였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에서 수차례 보도한 것처럼, 이 연구용역 결과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핵심적인 문제점은 건기연이 굴삭기 등록대수를 의도적으로 잘못 추정한 것이다. 건기연은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51대가 감소했고, 2007년 말 현재 굴삭기 등록대수는 7만6914대라고 밝혔다.

이는 건기연이 국토해양부에서 의뢰한 연구용역에 적용한 굴삭기 등록대수와도 전혀 다른 결과다. 건기산협 연구용역에서는 7만6914대라고 추정했던 건기연이 국토해양부 연구용역에서는 10만7860대라고 기술한 것.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은 책임연구원이 연구용역을 진행했음에도 3만여 대의 등록대수 차이가 발생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국토해양부의 최종 검증 결과에서도 2007년 말 현재 굴삭기 등록대수는 10만5160대로 나타났다.  

건기연은 왜 '연구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연구용역 결과를 내놓은 것일까? 여기에는 굴삭기 등 건설기계를 제작하는 대기업들의 이해관계가 깊숙하게 개입돼 있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건기산협에서 의뢰한 건기연의 연구용역 결과를 따르자면, 국토해양부의 판단과 달리 국내 굴삭기 공급은 '과잉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과잉공급상태가 아니라면 '4대강 굴삭기 특수'는 고스란히 대기업에 돌아갈 수 있다.

국토해양부의 판단대로 굴삭기가 공급과잉상태라면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추진되는 몇 년간은 굴삭기 신규등록을 할 수 없다. 그에 따라 현대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등 대기업은 4대강 특수를 '충분히' 누릴 수 없다.
   
국회 국토해양위의 한 관계자도 "굴삭기가 수급조절 품목에 포함되면 신규 굴삭기를 사더라도 등록을 할 수 없다"며 "이렇게 되면 굴삭기를 생산하는 대기업은 굴삭기를 팔아먹을 수 없기 때문에 '4대강 특수'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건기연은 특정 대기업에 4대강 특수를 안겨주기 위해 '맞춤형 연구용역'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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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정비사업 낙동강 18공구(함안보)·22공구(달성보) 기공식이 '낙동강 살리기 희망 선포식'이란 이름으로 2일 오후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하리 달성보 공사 현장에서 열렸다. 달성보 공사현장에서 굴삭기들이 한창 작업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이익단체의 입김에 정부 부처가 휘둘려서야... 감사원, 철저하게 감사해야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 부처에 있었다. 대기업이 이끄는 이익단체가 정부의 정상적인 정책수립을 방해하는 데 정부 부처가 동참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정부 유착 의혹'마저 제기될 판이다.

지식경제부측 심의위원은 지난 6월 열린 2차회의에 참석해 시종일관 특정 대기업 편에 서서 "굴삭기와 펌프트럭은 반드시 수급조절 실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식경제부의 전신인 산업자원부 비상계획관 출신인 건기산협 부회장도 똑같은 근거를 가지고 똑같은 주장을 폈다. 

심지어 지식경제부는 지난 10월 감사원 지시에 따라 건기연의 연구용역 결과를 감사했지만 굴삭기 등록대수와 직결되는 중고 굴삭기 수출통계자료(관세청)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문제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또한 2차 회의 초·중반부까지 굴삭기 등 4개 기종 수급조절 실시를 주장하던 국토해양부마저도 끝에 가서는 꼬리를 내렸다. 굴삭기·펌프트럭은 제외한 채 덤프트럭과 믹서트럭 2개 기종에 한해 수급조절을 실시하자는 수정안을 내놓은 것.

특히 위원장인 권도엽 국토해양부 1차관은 "재심의를 위해 1개월 안에 회의를 다시 열겠다"고 결정해놓고도 6개월이 다 지나도록 회의를 열지 않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검증을 통해 건기연의 연구용역 결과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음을 확인하고도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엄정한 정책수립을 해야 하는 정부 부처가 대기업이 이끄는 이익단체의 입김에 휘둘린다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기산협의 핵심기업이자 '4대강 굴삭기 특수'의 최대 수혜자가 될 현대중공업의 대주주가 집권 여당의 대표라서 부처들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다행히 김황식 감사원장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조사를 직접 지시했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김 원장이  굴삭기 통계 조작 의혹 사건에 관심이 많고 우리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본격적인 조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감사원이 정식 감사를 통해 국책기관의 굴삭기 등록대수 통계 조작 의혹을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라 믿는다. 지난 10월 지식경제부의 '부실감사' 전철을 다시 밟지는 않아야 '대기업-정부 유착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감사원은 명심해야 한다.
#굴삭기 등록대수 통계 조작 의혹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건설기계산업협회 #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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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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