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72)

― '회생의 기회' 다듬기

등록 2009.12.29 11:58수정 2009.12.2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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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생의 기회

 

.. 소망의 여지가 없으며 회생의 기회가 허락되지 않는 마지막 땅이라고 체념했던 노후 ..  《유선진-사람, 참 따뜻하다》(지성사,2009) 147쪽

 

 "소망(所望)의 여지(餘地)가 없으며"는 "바랄 것이 없으며"나 "꿈이 없으며"나 "꿈이 깃들 자리가 없으며"로 다듬고, "허락(許諾)되지 않는"은 "받아들여지지 않는"으로 다듬습니다. '체념(諦念)했던'은 '주눅들던'이나 '한풀 꺾여 있던'으로 손질하고, '노후(老朽)'는 '늙음'이나 '늘그막'으로 손질해 줍니다.

 

 ┌ 회생(回生) = 소생(蘇生)

 │   - 회생 불능 / 병이 너무 깊어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     그들은 죽음으로부터 회생의 길을 찾은 듯

 ├ 소생(蘇生/甦生) : 거의 죽어 가다가 다시 살아남

 │

 ├ 회생의 기회가 허락되지 않는

 │→ 다시 살아날 수 없는

 │→ 되살아날 수 없는

 │→ 되살 수 없는

 └ …

 

 한자말 '회생'은 "돌아오다(回) + 삶(生)" 짜임새로 되어 있습니다. 이 낱말은 '소생'과 같다고 하는데, '소생'은 "되살아나다(蘇) + 삶(生)" 짜임새입니다. 그러니까, '회생'은 "돌아온 삶"이요, '소생'은 "되살아난 삶"입니다. 움직씨 꼴로 적자면 "다시 살다"요, 한 낱말로 치자면 '되살다'나 '되살아나다'입니다.

 

 ┌ 다시 일어설 수가 없는 마지막 땅

 ├ 새롭게 살아갈 길이 없는 마지막 땅

 ├ 한 번 더 살아날 꿈이 없는 마지막 땅

 └ …

 

 말 그대로 "다시 살아나다"를 가리키는 낱말이니, 우리가 예부터 익히 써 온 '되살다'나 '되살아나다'를 넣으면 넉넉합니다. 또는 '다시 살다'나 '다시 살아나다'를 넣으면 됩니다. 구태여 "다시 살아나다"를 뜻하는 한자말을 지어내거나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또한, 이 보기글에서는 "다시 일어서다"라든지 "다시 서다"라든지 "한 번 더 살다"라든지 "한 번 더 일어서다"를 넣어 줄 수 있습니다. 글흐름을 살피면서 '다시서기' 같은 낱말을 빚어내도 잘 어울립니다. 글맛을 돌아보면서 '다시살기' 같은 낱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글느낌을 헤아리면서 '새삶' 같은 낱말을 일구어도 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되살기'나 '되살아나기' 같은 낱말도 쓸 수 있습니다. 글흐름과 글맛과 글느낌에 따라 얼마든지 알맞고 싱그럽고 해맑게 우리 넋과 얼을 담을 수 있습니다. 오래오래 써 오던 낱말이 있고, 오늘부터 새롭게 엮어서 쓰는 낱말이 있습니다. 내 나름대로 새로 써 볼 낱말이 있으며, 둘레에서 널리 쓰는 낱말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회생 불능 → 살아나지 못함 / 되살지 못함

 ├ 회생의 기미 → 살아날 낌새 / 되살아날 기운

 └ 죽음으로부터 회생의 길 → 죽음에서 벗어날 길 / 죽음을 딛고 살아날 길

 

 살아나는 길은 여럿입니다. 되살아날 길은 여러 갈래입니다. 우리 스스로 즐겁게 살아나고자 한다면 우리 슬기를 모두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힘차게 되살아나고자 한다면 우리 깜냥을 갈고닦아야 합니다. 모두어 놓은 슬기를 알차게 여미어 말과 넋과 삶이 살아날 길을 톺아봅니다. 갈고닦은 깜냥을 튼튼하게 다스려 글과 얼과 터가 되살아나갈 길을 내다봅니다.

 

 살고자 해야 빛나는 삶입니다. 살려고 해야 일어서는 삶입니다. 살 뜻을 키워야 샘솟는 삶입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알뜰살뜰 돌보는 동안 차츰차츰 힘을 얻습니다. 내 넋을 믿으면서 꾸준하게 보듬는 사이 차근차근 기운을 차립니다. 내 말을 아끼면서 따스하게 껴안는 가운데 꾸준하게 새숨을 북돋웁니다.

 

 하잘것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사랑해야 사랑스러운 삶이 됩니다. 보잘것없어 보인다 하여도 믿어야 믿음직한 넋이 됩니다. 형편없어 보인다 해도 아끼고 가꾸어야 튼튼하고 싱그러운 말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제까지 우리 삶과 넋과 말을 제대로 사랑하거나 믿거나 아끼거나 가꾼 적이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꾸밈없이 돌보거나 보듬거나 껴안은 일이 드물지 않느냐 싶습니다. 맑고 밝고 바른 삶과 넋과 말은 거의 생각조차 않았다고 느낍니다. 더 많은 돈에 휘둘리고 더 높은 이름에 휩쓸리며 더 큰 힘에 억눌린 채 살아가는 우리들이라고 느낍니다. 어쩌면, 우리는 여태껏 어느 한 번도 참답게 살아온 적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참다이 살아갈 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 만합니다. 되살거나 되살아나기는커녕 한 번도 살아낸 적이 없는지 모릅니다. 오히려 우리한테는 '되살아날' 길이 아닌 처음으로 옳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즐겁고 아름다우며 따뜻하게 '살아갈' 길을 함께 붙잡고 어깨동무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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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11:58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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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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