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은 사업이지 자선이 아닙니다

[서평]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등록 2010.01.21 14:34수정 2010.01.2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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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불신이 팽배한 요즘의 상거래 풍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노력하는 이들이 있어서 세상이 살만한 것 아닐까. ⓒ 시대의창

"된장 좀 있어?"
"우리는 없구. 동네에 하는 분들 몇 있지."
"얼마씩 해?"
"글쎄, 물어봐야지."
"1킬로."

시골에 사는 이유로 도시에 사는 분들의 주문을 받고는 한다. 요즈음은 가공식품이 대세인데 절임배추나 김장김치, 메주나 된장, 고추장 등이 인기 있는 품목이다. 거의 이곳에서 나는 채소와 곡류를 가공해서 만들기 때문에 시중에서 어떤 원재료가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심지어 대형마트나 농협의 마크가 찍힌 것도 마찬가지다) 식품류를 불신하는 깐깐한 소비자들이라면 자연히 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시의 소비자와 시골의 생산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몇 년 하다 보니 좀 난처할 때도 있다. 아예 장사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이윤 없이 중계만 하는 입장에서 맛이 어떠니 가격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이다. 특히 비싸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았는데 마을 내부에서도 가족과 친척들이 사가는 가격에 제3자에게 똑같이 파는 것은 욕먹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중계'에 소극적이 되고 말았다.

직거래를 하게 되면 농민들은 중간상인들에게 팔 때보다 이익도 많이 남아서 좋다. 제값을 받는 것은 농업에 보람도 느끼게 만든다. 사는 이들 입장에서도 누가 생산자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신뢰가 쌓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신뢰 아래에서는 재배할 때에도 농약과 화학비료사용에 대해 신중하게 된다.

이런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밭떼기로 팔아서 넘기는 이유는 농사만 지어본 농민들이 판매를 직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헐값에 넘기게 되면 생산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손해가 쌓이는 경우도 있다. 뉴스에서 보겠지만 밭을 갈아엎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팔아서 남는 것이 없고 손해라고 판단되면 차라리 그 밭에 다음 작물을 위한 거름이라도 되라는 심정인 것이다.

커피를 무척 좋아한다. 처와 나는 하루 10잔 정도 마실 때도 있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줄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애호가이다. 믹스가 된 봉지커피만 마시다가 6개월 전부터 아름다운가게에서 파는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있다. 볶은 커피콩을 사다가 갈아서 먹는데 갈 때의 향기가 방에 퍼져서 무척 기분이 좋아진다. 물을 내려서 마시는 순간까지 향에 취할 수 있는데 더욱 기분 좋은 것은 내가 소비하는 일이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기회'가 된다는 점 때문이다. 안데스와 네팔의 커피콩 농가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으니 커피맛이 훨씬 풍요롭다.

무역세계에서는 자본의 힘에 의해 물류의 소집과 이동이 이루어진다. 이때 변방의 힘없는 나라의 생산자들은 가장 쉽게 '착취'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회사가 추구하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생산단가를 낮추고 마진을 높여서 파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회사의 배를 불리게 할지는 몰라도 나아지는 것 없는 피폐한 노동에 갇혀서 생산하는 이들이나 이런 영혼의 산물인 물품을 사게 되는 소비자의 경우도 불행하긴 마찬가지이다. 내가 물건을 사면서 그저 물건을 떼어다가 진열하는 일만 하는 사람들만 이득이라 생각하면 불편한 건 사실이다. 채소 값이 오를 때면 농민들이 돈 좀 만지겠구나 라는 생각은 섣부르다. 도매상이나 대형마트의 이윤은 더 높아진다는 '비밀'을 알게 되면 왠지 씁쓸해진다.

초등학교에 다녀야할 아이들이 축구공 몇 개를 만들기 위해 하루 12시간씩 바느질을 하고, 모기가 득실거리는 맹그로브 숲 해안가에서 모기에 물리지 않기 위해 담배를 물고 조개를 줍는 모습, 망망대해 바다의 불안한 인공 섬에서 6개월씩 나가서 고기를 잡는 일은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흉한 모습이다.


대기업이 보유한 대형마트들은 공산품, 식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의 목을 조아 최소마진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납품을 요구하는 일이나 몬센토, 카길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동남아나 남미,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이 개량한 종자를 퍼뜨리고 그에 맞는 제초제, 비료 등을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일은 이미 변방의 농업 국가들에게는(대한민국을 포함한) 피할 수 없거나 포기해야 할 현실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커피, 코코아, 면화를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농민들에게 제값을 주고 구매하고 그들이 좀 더 품질 좋은 생산물을 내놓을 수 있도록 전기를 놓거나 기계를 구매하거나 우물을 파거나 학교를 지원하는 등의 일을 하는 일은 이윤만을 생각하는 기업이나 정치적 이해에 빠진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일들을 소위 잘사는 나라들의 민간단체, 또는 사회적기업 등이 '좋은 뜻이 담기고 질 좋은 생산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한다'는 의미로 실천하고 있다.

이 책은 <아름다운 거래>라는 공정무역의 이념과 현실을 취해한 다큐를 제작하기 위한 4년간의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영국, 일본, 한국,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네덜란드와 인도, 네팔, 필리핀, 가나, 파키스탄, 스리랑카의 교류에 관한 이야기다. 서로가 애정과 사랑을 담아 거래하는 아름다운 모습에 관한 내용이며 신뢰와 사랑을 기반으로 한 거래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공정한 임금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죠. 공정무역은 사업이지 자선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한 농민들의 생산품을 공정한 금액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고 말하는 영국 카페 다이렉트의 임원 사이먼의 말과 "우리는 원조가 필요 없어요. 우리는 거지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정당한 가격으로 우리의 커피를 구입하기만 한다면 원조 없이도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라는 멕시코 커피농부의 말은 우리가 공정무역이라는 단어를 대할 때 마음에 대한 힌트다.

'농부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큰 회사들만 이익을 취하는 게 아닌가?'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공정무역'이라는 말없이도 공정해지는 사회로 변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덧붙이는 글 |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박창순, 육정희 지음/ 시대의 창/ 16,000원


덧붙이는 글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박창순, 육정희 지음/ 시대의 창/ 16,000원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 공정무역 따라 돌아본 13개 나라 공정한 사람들과의 4년간의 기록

박창순.육정희 지음,
시대의창, 2017


#공정무역 #공정여행 #FAIR T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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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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