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버린 우리 말투 찾기 (37) 것 7

[우리 말에 마음쓰기 848] 백 살에 가까운 것, 가장 많은 것은 독일인, 널려 있는 게

등록 2010.01.29 13:53수정 2010.01.2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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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백 살에 가까운 것입니다

 

.. 두바 할아버지는 거의 백 살에 가까운 것입니다 ..  <마인다트 디영/김수연 옮김-황새와 여섯 아이>(동서문화사,1990) 146쪽

 

말끝에 붙이는 "가까운 것입니다"로 볼 수 있지만, 사람을 가리킨다는 느낌도 얼핏 드는 '것'입니다. 더욱이, 할아버지를 이야기하는 자리이니 '분'이나 '사람' 같은 말을 적어 주어야 낫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대로 두어도 말이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말이 된다고 해서 다 말이라 하겠습니까. 뜻을 알 수 있으니 괜찮은 글이라 할 수 없고, 뜻만 나타내면 끝나는 글일 수 없습니다.

 

 ┌ 거의 백 살에 가까운 것입니다

 │

 │→ 거의 백 살에 가까운 분입니다

 │→ 거의 백 살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 거의 백 살에 가깝습니다

 │→ 거의 백 살에 가깝답니다

 │→ 거의 백 살에 가까운 나이입니다

 │→ 거의 백 살 가까이 살아왔습니다

 │→ 거의 백 살인데요

 └ …

 

단출하게 적고 싶다면, "백 살에 가깝습니다"나 "백 살인데요"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백 살에 가까운 나이인데요"나 "백 살에 가까운 나이입니다"처럼 적어도 좋습니다.

 

"거의 백 살 가까이 살아왔습니다"라든지 "거의 백 해나 살아오셨답니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저마다 어떻게 느끼는가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가장 알맞게 적바림하면 됩니다. 우리들이 우리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만히 되짚으면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나부터 어떤 느낌을 나타내고 싶은지 살피고, 내 말을 듣는 쪽 눈높이를 곱씹으며, 이렇게 주고받는 말마디가 글로 적혀서 우리 뒷사람한테 이어질 수 있다는 대목까지 내다보아야겠습니다. 한 마디로 끝나는 말이란 없고, 한 줄로 마무리되는 글이란 없습니다. 말 한 마디에 사랑이 담기기도 하고, 글 한 줄에 미움이 깃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말글에 어떤 느낌과 넋을 싣고 있는지 차근차근 짚어내야 합니다.

 

 

ㄴ. 가장 많은 것은 독일인

 

.. 프로치다섬에 오는 번역가의 대부분은 외국인이다. 이탈리아인은 20명 중 두세 명 정도이다. 가장 많은 것은 독일인이다 ..  <쓰지 유미/송태욱 옮김-번역과 번역가들>(열린책들,2005) 234쪽

 

"번역가의 대부분(大部分)은 외국인(外國人)이다"는 "번역가는 대부분 외국인이다"로 손보거나 "번역가는 거의 모두 외국사람이다"라든지 "번역가는 거의 모두 나라밖에서 오는 사람이다"라든지 "번역가는 거의 다 나라밖에서 온다"로 손봅니다. '이탈리아인(-人)'은 '이탈리아사람'으로 다듬고, "20명(二十名) 중(中) 두세 명(名)"은 "스무 명 가운데 두세 명"이나 "스무 사람 가운데 두세 사람"으로 다듬으며, '정도(程度)이다'는 '-쯤이다'나 '-쯤 된다'로 다듬습니다.

 

 ┌ 가장 많은 것은 독일인이다

 │

 │→ 가장 많은 사람은 독일사람이다

 │→ 독일사람이 가장 많다

 │→ 독일사람이 가장 많이 찾아온다

 │→ 독일사람이 가장 많이 온다

 └ …

 

사람을 가리키며 '이것'이라느니 '저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낮잡아 이르는 말투로 "이것이 건방지게 어디를 넘보아?"처럼 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귀엽게 이르는 말투로 "이것이 벌써 집안일을 참 잘한답니다."처럼 씁니다. 사람을 낮잡는 '이것'은 나와 견주어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사람을 깎아내린다 할 테며, 귀엽게 이르는 '이것'은 어른한테는 쓰지 못하고 아이들을 가리키면서 씁니다. 아이들한테 '강아지'라느니 '돼지'라느니 일컬으며 귀엽다고 하는 말투하고 '이것'은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면, 이 보기글에 쓰인 '것'은 어떠한 말투라 할는지요. 독일사람을 낮추려고 쓴 '것'일까요? 독일사람을 귀엽게(?) 바라보고 싶은 느낌을 담은 '것'일까요? 아무 생각 없이 넣은 '것'일까요? 나라밖 책을 우리 말로 옮기면서 제대로 적바림하지 못한 대목일까요?

 

어느 쪽인지는 훤히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만, 이렇게 번역해 놓은 글이 참으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해 놓고도 번역가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출판사 편집자가 잡아채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 또한 느끼지 못합니다. 모두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ㄷ. 널려 있는 게

 

.. 사실 사진이란 사진가가 그 기회를 발견할 때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기회란 널려 있는 게 아니다 ..  <박태희 옮김-필립 퍼키스와의 대화>(안목,2009) 59쪽

 

 '사실(事實)'은 '가만히 보면'이나 '따지고 보면'으로 다듬고, '발견(發見)할'은 '찾아낼'이나 '알아볼'로 다듬습니다. "존재(存在)하지 않는다"는 "있지 않다"나 "태어나지 않는다"나 "생겨나지 않는다"로 손질해 줍니다.

 

 ┌ 기회란 널려 있는 게 아니다

 │

 │→ 기회란 널려 있지 않다

 │→ 기회란 널려 있다고 볼 수 없다

 │→ 기회란 널려 있지 않은 셈이다

 └ …

 

사진을 찍는 사람이 내 마음에 와닿을 모습 하나 알아채며 사진기 단추를 누를 수 있는 때는 흔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때는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때를 스스로 일구며 마련하는 사진쟁이입니다. 이러한 때를 꾸준히 가다듬으며 북돋우는 사진쟁이입니다.

 

기회란 널려 있지 않다지만, 어떻게 보면 기회란 늘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안 느끼거나 못 느낄 뿐입니다.

 

내 가슴을 울리는 사진 한 장 찍을 기회 또한 널려 있고, 우리 삶을 빛낼 말 한 마디 일굴 기회 또한 널려 있습니다. 즐겁게 사진 한 장 찍을 기회란 널려 있으며, 즐겁게 말 한 마디 나눌 기회란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내다보면서 지내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집니다. 새로워지거나 거듭날 수 있는 사진이며 말입니다. 뒤떨어지거나 굴러떨어질 수 있는 사진이며 말입니다. 곱거나 맑은 느낌 담뿍 담을 수 있는 사진이요 말입니다. 꾀죄죄하거나 초라하게 뒹굴 수 있는 사진이요 말입니다.

 

우리는 어느 길로 접어들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느 길을 좋아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느 길을 마련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느 길에 서려고 할까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1.29 13:53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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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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