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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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신 국무총리 실장이 1월 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실에서 세종시 발전방안 조감도를 보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3일 권태신 국무총리실 실장(총리실장)이 친이 직계 최대모임인 '함께 내일로' 토론회에서 쏟아낸 말이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권 실장은 이날 강연에서 갖가지 화려한 수식어로 세종시 수정안 '반대파'를 비난했다고 한다. "충청권을 나쁘게 만들면서 신뢰를 내세우는 것은 지도자로서 바른 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박근혜 전 대표를 정면 겨냥했다. "세종시는 그 자체가 수도 분할로 50년, 100년 뒤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발언도 나왔다.
압권은 '사회주의' 발언이다. 그는 세종시 원안을 "사회주의 이념을 적용한 도시"라고 했다. 물론 "도시 전문가들이 해 준 말"이라고 슬쩍 발을 빼는 센스를 보여줬지만, 정치권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세종시 수정교(敎)' 목사(정운찬 총리) 밑에서 '전도사'라도 하려면 맹목에 가까운 확신도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권 실장의 '사회주의' 발언은 도가 지나쳤다. 도시 전문가들이 사석에서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할 수는 있어도, 고위공직자가 공개 강연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의 말 덕분에 세종시 원안을 주장하는 모든 세력은 졸지에 사회주의자가 돼 버렸다. 보수 우파를 자처하는 한나라당 내 친박 의원들은 물론 '원안+알파'를 고집하는 박근혜 전 대표 역시 사회주의자로 낙인이 찍혔다.
권 실장의 노림수가 여기서 그쳤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세종시 원안에 대한 비이성적인 혐오감을 불러오는 데 있었다. '사회주의=빨갱이'라는 일부 국민들의 잘못된 감정을 자극해서라도 여론을 돌이켜 보자는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킬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청와대의 생각이 '사회주의 도시'라는 말 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뻔뻔함의 '고수' 권태신, "참여정부 땐 공무원 더 안 할 줄 알고 세종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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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 남소연
권 실장의 발언 때문에 정치권은 화가 났다. 특히 사회주의자가 돼 버린 '친박계'는 뭇매를 때리고 있다. "영혼을 팔아 버린 공무원"(구상찬), "권력에 해바라기하는 공무원"(현기환), "카멜레온도 울고 갈 공무원"(자유선진당 임영호), "맑스와 엥겔스가 웃겠다"(민주당 우상호 대변인)라는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기가 찬 일은 권 실장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으로 일하면서 행정부처 이전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입안한 도시를 '사회주의 도시' 운운해 버린 셈이다. 그는 3일 강연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행정부처 이전이 끝날 때쯤이면 공무원 안 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뻔뻔함도 이 정도는 돼야 '고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총리는 권 실장을 감싸고 있다. 정운찬 총리는 4일 오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권 실장의 말은 와전된 것"이라고 옹호해 반발을 자초하고 있다.
권 실장은 이번 일로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뉘우침에도 때가 있는 법, 후회하고 있을 겨를은 없어 보인다. 친박계와 야당의 주장대로 "사과하고, 공직을 떠나는 게" 지금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고위공직자가 '혀'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과거의 교훈이다. 그 교훈 중에 하나를 뽑아 권 실장에게 권한다.
병종구입(病從口入), 화종구출(禍從口出).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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