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화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천안시, 건물·토지 환수 단행... 천안문화원 시대 사실상 막 내려

등록 2010.02.06 11:39수정 2010.02.0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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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화의 전당으로 한때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천안문화원. 영광도 길면 퇴락하는 걸까. 올해로 개원 56주년을 맞는 천안문화원이 건물과 토지를 시에 환수 당하는 사실상의 '사망선고'를 받았다. 직원들의 집단 사표 제출과 원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천안문화원 파행운영이 촉발된 지 무려 4년여만의 일.

 

천안문화원 안팎에서는 이렇게 종결될 수밖에 없었던 지금까지의 천안문화원 파행 사태에 대한 성찰과 함께 이제라도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당부의 목소리들이 나왔다.

 

54년 태동, 전국최고문화원에 선정

 

한국전쟁의 상혼이 미처 회복되지 않은 1954년. 변변한 문화공간 하나 없던 터에 천안읍 기관장들의 모임인 '화요회'가 천안문화원 창설에 의견을 모았다. 그해 7월 10일, 천안문화원은 천안읍사무소 2층의 방 1칸을 빌려 개원했다. 2년 뒤인 1956년 겨울에는 천안읍 보조금과 국가 보조, 각계 성금 등으로 문화동에 천안문화원 건물을 마련했다.

 

1992년에는 문화동 시대를 마감하고 성정동 694-9번지에 새로운 스타일의 신청사를 신축해 옮겼다. 소공원이 인접한 신청사는 전국 문화원 가운데 최대 규모로 건축양식과 미관에서도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천안문화원은 개원 이후 지역문화의 산파 역할을 자임했다. 년중 각종 전시활동과 음악회, 발표회 등이 끊이지 않았다. 다양한 취미생활강좌 및 문화예술 강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문화의 외연을 넓혔다. '향토사연구소'를 부설로 운영하면서 천안 향토사의 근간이 되는 수십 권의 책들도 펴냈다.

 

시세 확장과 함께 활발한 활동으로 천안문화원은 전국 평가에서 1999년 최우수문화원, 2000년 우수문화원, 2001년 표본문화원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2004년 7월에는 전국 시·군·구 220곳의 지방 문화원 중 가장 뿌리 깊은 문화원이라는 자부심 속에 개원 5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히 가졌다. 기념행사에는 충남도지사와 천안시장, 시의장 등 지역 인사들은 물론 문화부 장관도 참석해 천안문화원 개원 50주년을 축하했다.

 

반세기 역사 지나며 나락으로 추락

 

a  행정대집행이 준비되고 있는 천안문화원 모습.

행정대집행이 준비되고 있는 천안문화원 모습. ⓒ 윤평호

행정대집행이 준비되고 있는 천안문화원 모습. ⓒ 윤평호

반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천안문화원은 몇 해 뒤 갈등과 대립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천안문화원 파행사태는 2006년 9월 초 직원들의 집단 사표 제출과 문화원장의 성추행 의혹 고소로 표면화됐다. 이면에는 2005년 회원들의 추대로 새 원장으로 선출된 권연옥 원장과 기존 직원들간 반목이 잠복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반세기를 경과하는 동안 자체 혁신에 실패한 채 누적되고 곪아온 상처들이 일제히 표출된 것이다.

 

또한 몸집은 커지고 사업 영역은 넓어졌지만 예산의 대부분은 국비나 시.도비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투명하지 못한 회계관계도 문제를 키웠다.

 

일단 봇물 터지듯 발생한 갈등은 문화원의 주축을 이루는 회원과 회원, 회원과 이사, 이사와 원장 등 구성원간 극심한 편가르기 양상으로 치달았다. 자체 정상화 능력은 상실한 채 검찰조사와 날 선 법정공방으로 천안문화원의 명예는 갈수록 실추됐다. 파행운영이 지속되며 몇 년째 정부와 자치단체의 천안문화원 지원금 보조도 중단됐다.

 

천안문화원 파행초기 갈등의 두 당사자로 지목된 원장과 사무국장이 모두 물러난 뒤 2008년 새 원장의 선출로 잠시 정상화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지만 절차적 부실, 자격시비 문제가 불식되지 않으면서 천안문화원은 다시 파행운영의 수렁 속으로 더 깊이 빠져 들었다. 법원에 의해 몇 차례 원장대행이 선임됐지만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질된 천안문화원을 정상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천안문화원, 이제는 지워질 이름

 

a  이성규 천안시 문화관광과장에 천안문화원측에 행정대집행을 통보한다.

이성규 천안시 문화관광과장에 천안문화원측에 행정대집행을 통보한다. ⓒ 윤평호

이성규 천안시 문화관광과장에 천안문화원측에 행정대집행을 통보한다. ⓒ 윤평호

해를 넘겨도 천안문화원의 파행운영이 거듭되자 지역사회에서는 마지막 해법으로 시 소유의 재산인 천안문화원 건물과 토지를 천안시가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천안문화원의 성정동 부지 655㎡와 지하 1층, 지상 5층 2090㎡ 규모의 건물은 시 소유의 재산. 그동안은 천안시가 지역문화발전을 위해 천안문화원에 무상 임대했다. 지난해 말 천안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는 천안시가 천안문화원 재산 환수를 위해 행정대집행을 서둘러 시행하라는 의원들의 주문이 잇따랐다. 천안시도 올해 1월 중 행정대집행에 나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산환수를 위한 행정절차로 2009년 9월 1일 행정대집행 계고를 한 천안시는 지난달 20일 2차 계고, 이달 3일에는 행정대집행 영장을 천안문화원에 통지했다.

 

그리고 지난 5일 오전 9시30분, 천안시 관계 공무원과 경찰, 대행업체 직원 등 180여 명이 동원된 가운데 행정대집행이 단행됐다. 정승훈 천안문화원 사무국장이 시와 연관된 천안문화원 예산 운영의 문제점 등을 제기하며 반발했지만 행정대집행은 큰 탈 없이 마무리됐다.

 

천안시는 행정대집행을 통해 경매나 압류 물품을 제외한 각종 물품 등을 반출 한 후 천안문화원 건물을 폐쇄했다. 안전관리를 위해 무인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경비도 배치했다.

 

건물과 토지 등의 재산이 환수되었다고 해서 곧 천안문화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법인은 현재도 유효하다. 하지만 지방문화원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지방문화원은 사무실과 회의실, 강당, 전시실 등이 구비된 연면적 330㎡ 이상의 공간을 갖춰야 한다. 현재의 천안문화원 구성원들이 시설기준에 적합한 제3의 공간을 마련한다면 '천안문화원'의 간판을 유지하는 시나리오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 지원금이 끊긴 상황에서 새 장소 물색이 쉽지 않을 뿐더러 확보한다해도 이미 지역사회 신뢰는 돌이키기 어려운 만큼 천안문화원의 존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구 천안문화원 공간, 어떻게 활용될까?

천안문화원 역사 연연않고 새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의견 많아

행정대집행을 통해 비로소 천안시가 소유권을 행사하게 된 구 천안문화원의 건물과 토지. 이제 관심은 구 천안문화원 건물과 토지가 어떻게 활용될까에 모아지고 있다.

천안시는 구 천안문화원 건물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조성해 시민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성규 천안시 문화관광과장은 "문화예술쪽으로 사용된 건물이니 그렇게 사용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아직 구체적인 안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천안시가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문화재단과 관계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활용방안과 관련,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방안에 대해 이 과장은 "의견이 분분하면 오히려 어려워질 수도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비췄다.

윤성희 천안예총 회장은 "천안문화원이라는 이름에 연연해 활용방안을 모색할 필요는 없다"며 "문화예술활동 지원기구나 천안에 많은 문화예술동아리들의 거점으로 사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안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장을 역임한 김성열 천안시역사문화연구실장은 "'천안문화원'이라는 브랜드는 이제 구 시대의 유산이 됐다"며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건물과 공간이 활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냉각기간을 가진 뒤 '천안문화원'이라는 이름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천안문화원장을 역임한 민병달 전 원장은 "현재의 사람들은 손을 떼고 백지화에서 출발해 더 좋은 천안문화원을 만드는 데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561호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천안시 #천안문화원 #행정 대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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