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이 있어 서울은 아름답다

[공간의 미학] 서울의 아이콘, 광화문 삼거리에서 세종로 사거리까지

등록 2010.02.16 16:48수정 2010.02.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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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너의 목숨이 사양길을 더듬고 있다.
네가 이세상에 있었다는 기억이
차가운 망각 속에 묻히려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만 좋다는 말이냐. 가혹한 끌과
무정한 철퇴가 너의 몸통을 파먹어들 날이 멀지 않았다.
이 일을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많지만
아무도 너를 살릴 수는 없단다. 불행하게도
너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너의 일을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말이다.
<광화문 구명>중-'유종열(야나기 무네요시)'

a 광 화문

화문 ⓒ 송유미


광화문은 한국 존재 가치의 상징


지난 주 2월 11일 서울 광화문에 다녀왔다. 구정을 앞 둔 광화문 거리는 이상할 정도로 한적했다. 광화문은 현재 복원공사 중이라 가림막을 덮고 있는데 이 광화문을 덮고 있는 가림막의 작품 이름은 강익중씨의 '광화에 뜬 달'…광화문은 다 알다시피 이씨 왕조의 궁궐, 경복궁의 정문이다. 그래서일까. 경복궁의 광화문은 여느 성문과 달리 이씨 조선 역사와 함께 숱한 시련을 유난히 많이 겪은 성문으로 꼽혀진다.

지금까지 광화문이 서울 한복판에 건재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국권의 상징인 광화문을 헐려고 할 때, 대한제국 숱한 백성들의 거센 반대 때문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인이 아니면서도, 유종열(야나기 무네요시)이라는 일본 미술사 학자이자 민예 운동가가 일본인이면서도, 한국의 존재가치와 광화문의 빼어난 건축미를 파괴하려는 자국의 만행에 분노하고 항의하고 슬퍼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광화문이 크게 훼손된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방이후 광화문은 또다시 수난을 겪는데 바로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석축만 남게 된다. 그후 1968년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 파괴된 문루를 다시 짓고 광화문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재건한 광화문은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나, 당시 광화문의 축을 경복궁의 중심축에 맞춘 것이 아니라, 중앙청으로 쓰이던 구 조선총독부청사의 축에 맞추어, 그 결과 3.5도 가량 본래의 축과 어긋나게 틀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광화문은 역사의 변화와 함께 조금씩 변모했지만, 광화문은 이제나 저제나 한국 존재가치의 상징이다. 이 광화문 삼거리에서 세종로 사거리 차량이 통제되고 그 옛날 육조 거리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 및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등 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으로써, 세종로사거리와 청계광장으로 이어지는 세종로 중앙에 길이 555m, 너비 34m로 조성되었다.

a 세종로 그 육조 거리 속으로

세종로 그 육조 거리 속으로 ⓒ 송유미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에는 월대(月臺)를 재현하고, 해태상을 복원하였다. 세종로공원 주변 구간인 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에는 과거 한양의 중심거리였던 육조거리의 흔적을 재현하고 이를 형상화한 축소모형도 설치하여 국가를 상징하는 거리의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


서울은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반도의 수도. 이 수도를 세운 이씨 왕조의 국권의 상징인 광화문은, 그 옛날 나랏님들이 드나드는 정문이기도 했지만, 이 도성 밖은 그 옛날부터 민중의 광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여느 성문과 달리 그 규모와 격식 면에서도 매우 웅장하고 화려하다 하겠다. 

광화문은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오문'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태조 3년(1395) 정도전에 의해 '정문'으로 이름을 바꾸지만, 세종 8년(1426)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광화문이라 이름을 지어 올리면서, 지금의 '광화문'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름의 뜻은 국왕의 큰 덕이 온 나라와 백성을 비춘다는 의미.


a 세종 대왕

세종 대왕 ⓒ 송유미



서울이 아름답다는 것은 현대 건물이 있어서가 아니요, 거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요, 물론 산천이 짜였다는 것만도 아니리라. 여기 고궁과 고원과 고건물이 있기 때문에 서울은 서울로 풍아를 지키는 아름다운 도시가 아닐까.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서울역에 내려 택시의 창으로나 전차의 창으로나 또는 걸어서 들어오는 서울의 어귀에 만약 남대문이 보이지 않아 봐라, 허망감을 어디다 비할 것인가.
<서울 1>중-'김환기'

a 이순신 장군 동상

이순신 장군 동상 ⓒ 송유미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로, 육조거리는 지금의 세종로...

세종로는 그 옛날 육조 관아의 건물이 늘어서 있어 육조거리로 불리웠다고 한다. 이 육조거리의 역사는 이씨 조선왕조 건립과 함께 한다. 당시 거리의 폭은 수레 일곱대의 넓은 폭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로였다. 이씨 왕조의 일등 공신, 정도전의 일파들은 궁궐의 축조에 있어 제후국의 위상과 성리학의 이상국가론을 바탕으로, 수도 한양의 도시 공간을 설계하였다고 전한다.

서울은 전세계에서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수도로 손꼽히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된 창덕궁과 종묘 등을 위시하여,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융화된 공간이다. 이조 왕조 건국은 주자 성리학이란 정신적 토양 위에 건설된 수도이다. 이 수도 서울의 어원은 정도전이 궁궐을 짓고 성곽을 어떻게 쌓을까 고민 하다가, 눈이 녹지 않은 산등성이의 눈쌓인 자국을 따라 성을 쌓았다 해서, 설울(눈 쌓인 울타리)에서 서울이란 어원으로 바뀌었다는 재미난 일설도 있다.

서울의 중심은 이 성곽의 경계로 성안과 성밖으로 나뉜다. 성안은 지금의 종로구와 중구 지역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동상 주변에 조성되는 도심 속의 광장에는 세종로의 상징이자 도시경관축의 중심지로서 상징성을 나타내고 샤프분수, 바닥분수, 등 수경시설이 설치되어있다. 세종로사거리와 청계광장 사이의 청계천 연결부는 청계천과 경복궁을 연결하는 보행 네트워크의 연결 축으로 조성되어 있다.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광화문 광장에는, 창의와 실용의 정신으로 문화강국을 이루자는 뜻으로 높이 6.2m, 폭4.3m에 4.2m의 기단(基壇)위의 무게20톤 규모의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세종이야기 등 상설전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세종문화회관과 이순신장군동상 사이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광장 중앙에는 미술, 조형미술 등 다양한 전시공간으로 이용되고 해치마당에는 이용객을 위한 아리수 샘터, 안내소, 기념품점 등 편의시설과 전시장, 엘리베이터, 만남과 약속의 장소 등 문화갤러리 등이 들어서 있다.

a 기념 비

기념 비 ⓒ 송유미


a 기념 비

기념 비 ⓒ 송유미


a 세종 문화회관

세종 문화회관 ⓒ 송유미


이밖에 지하철 경복궁역과 광화문역에서 발생하는 지하 용출수를 청계천으로 흘려보내는 역사물길(水路)이 조성되었고, 이순신장군동상 뒤편에 지상과 광화문역을 연결하여 시민들이 쉽게 광장을 오갈 수 있도록 해치마당이 조성되었다.

상시광장 외에는 왕복 10차선의 차도부와 보도부로 이용하다가 행사 규모에 맞게 교통통제를 실시하여 중규모 행사 때는 너비 67m, 대규모 행사 때는 너비 100m까지 넓어졌다. 정말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600년전 우리 선조들이 노닐던 거리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a 현대와 옛날이 함께 하는 광화문

현대와 옛날이 함께 하는 광화문 ⓒ 송유미


a 광 화문 속으로

화문 속으로 ⓒ 송유미


a 광화문 광장

광화문 광장 ⓒ 송유미


a 광화 문 광장 속으로

광화 문 광장 속으로 ⓒ 송유미


600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중심은 예나 지금이나 세종로(육조거리)이다. 세종로는 이제 차량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마치 시간의 타이머신을 타고 온 듯, 어슬렁 어슬렁 나는 세종로(광화문 삼거리-세종로 사거리)를 왕복해 그 옛날 한량처럼 거닐고 또 거닌다. 어디서 불쑥 도포자락 휘날리며 삿갓을 쓴 북촌 한량이 나타날 듯 하다.

덧붙이는 글 | 광화문 광장 이용시, 광화문역(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역)에 하차하면 된다. 부역명은 세종문화회관으로, 인근에 광화문 광장과 세종문화회관, 광화문이 있다.


덧붙이는 글 광화문 광장 이용시, 광화문역(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역)에 하차하면 된다. 부역명은 세종문화회관으로, 인근에 광화문 광장과 세종문화회관, 광화문이 있다.
#광화문 #육조거리 #세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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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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