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엔 손발 오그라드는 '발연기'가 없다

[TV리뷰] 지상파 뺨치는 tvN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

등록 2010.03.13 13:14수정 2010.03.1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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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드라마 제작 현실에서 '100% 사전제작' 정착이 가능한 일일까?

드라마 방영일까지 당일 분량을 촬영하는 것에서 유래된 '생방송'과 낱장 대본인 '쪽대본'이 만연하고, 시청률에 따라 드라마가 엿가락처럼 늘어지거나 반 토막 나는 일이 허다한 드라마 환경 속에서 100% 사전제작이라는 건 꿈같은 이야기로 통한다.

사전제작은 무엇보다 시청자의 반응을 순간마다 캐치하여 드라마에 반영하는 피드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한다면 일반제작에 비해 위험부담이 커진다. 때문에 편성권을 쥐고 있는 방송사에서는 모험을 꺼리고, 지상파 편성이 거의 유일한 수익 통로인 외주제작사는 회당 평균 제작비가 2억 원에 이르는 16~20부작 미니시리즈 드라마 제작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이런 문제 때문에 대부분 드라마는 첫 방영 3개월 전에 촬영에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하루 10시간을 꼬박 촬영해도 10분짜리 방송 분량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현실에서 방영 시작 후 몇 회 만에 찍어뒀던 비축분은 동이 나고, 그때부터 드라마는 생방송 촬영으로 접어든다.

100% 사전제작 <풍년빌라>가 기대되는 이유

a  <풍년빌라>에 출연중인 이보영과 신하균.

<풍년빌라>에 출연중인 이보영과 신하균. ⓒ tvN


쫓기듯이 진행되는 촬영 일정으로 배우들은 대본을 충분히 숙지하고 연구할 시간이 부족해져 깊이 있는 연기를 펼치는 데 어려움을 겪고, 편집을 하루 이틀에 몰아쳐야 하는 제작진은 제대로 된 편집을 하기 어렵다. 이런 모든 문제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완성도 떨어지는, 설익은 밥 같은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이런 현실 속에서 100% 사전제작된 tvN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이하 <풍년빌라>)의 등장은 한편 놀랍고 또 반갑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제작진의 의도대로 끝까지 만들어지는 드라마, 시청률에 의한 연장방송이나 조기종영 없이 꾸준히 일관된 완성도가 유지되는 그런 드라마를 기다렸던 시청자라면 <풍년빌라>의 등장이 무척이나 반가울 것이다.


드라마 단역배우로 살아가는 오복규(신하균 분)는 우연히 자신의 옆집으로 이사 온 미모의 의상 디자이너 윤서린(이보영 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 그녀 주변에서 빙빙 맴돌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변호사에게 20여 년 전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가 얼마 전 죽었다는 사실을 통보받게 되고, 슬퍼하는 복규를 서린이 위로하면서 그렇게 그 둘은 가까워진다.

죽은 아버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가 남긴 유산인 풍년빌라 201호로 이사하는 복규. 다 낡아서 곧 허물어질 것 같은 그곳 풍년빌라에는 속을 알 수 없어 보이는 이웃들이 살고 있었다. 폐차장을 운영하면서 대포차를 만드는 형제, 안색 한 번 바뀌지 않고 태연히 거짓말을 하는 반장 아줌마, 그리고 원한해결 사무소를 운영하며 청부업을 하는 폭력배 아저씨까지, 누구 하나 평범한 사람이 없다.


코믹스러움과 비밀스러움의 만남

전체적으로 밝고 코믹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풍년빌라>는 그러나 이따금 진지하고 어두운 장면을 그려내며 시청자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복규 아버지가 빌라의 옥상에서 떨어져 죽던 그 순간 입주자 모두가 창문을 통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과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그의 죽음이 언급되었을 때 일제히 입을 다물며 당황했던 모습들은 그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복규가 좋아하게 된 서린 역시 모종의 비밀을 갖고 있었다. 미모의 의상 디자이너라는 지극히 평범한 외면과는 달리 복규 앞에서는 말과 행동이 180도 바뀌는 이중성을 지닌 캐릭터로 놀라운 싸움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드라마는 그녀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극의 곳곳에 배치해 시청자로 하여금 그녀의 정체와 복규에게 접근한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2회가 지나가도록 드라마는 좀처럼 사건을 전개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복규와 서린의 관계에 집중하며 풍년빌라에 사는 이웃들에 대한 설명으로 시간을 다 쓴다. 밝고 코믹스러운 분위기 곳곳에 진지하고 비밀스러운 일면을 배치해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 까닭은, 극 초반에 자칫 늘어질 수 있는 흐름의 끈을 다시 조이며 극에 대한 시청자의 집중을 끝까지 잃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일반적인 내용이 아닌 비밀을 둘러싼 범죄와 음모를 다룬 장르의 특성상 극의 초반 전개에 있어 그 흡입력이 여타 드라마들에 비해 높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풍년빌라>의 흡입력과 완성도는 기대할 만한 수준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100% 사전제작이라는 사실은 그런 기대감을 조금 더 높여준다.

백윤식, 신하균, 이보영, 김창완... '발연기'는 없다

a  <풍년빌라>에 '발연기'는 없다. 배우 백윤식.

<풍년빌라>에 '발연기'는 없다. 배우 백윤식. ⓒ tvN


100% 사전제작이라는 것 외에도 <풍년빌라>를 주목할 만한 이유는 또 있다. 신하균, 백윤식, 김창완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총 출연했다는 사실은 적어도 <풍년빌라>를 보면서 주·조연 배우들의 오그라드는 '발 연기'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전해주는 한편, 코믹과 서스펜스가 어우러진 독특한 장르 속에서 더욱 부각될 그들의 연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7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신하균은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오복규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고, 백윤식은 바깥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감금하고 흠씬 두들겨 패는 청부업자이지만 집안에선 딸의 성적표를 보며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가는 평범한 아버지에 불과한 박태촌을 그만의 스타일로 연기해냈다. 변호사 김상철 역의 김창완은 비록 짧은 시간 등장했지만 시청자에게 그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보영은 비밀투성이인 윤서린 캐릭터를 무난하게 연기했다는 평이다. 3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작인 <풍년빌라>에서 그녀는 일상에서의 모습과 복규 앞에서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부담 없이 연기해 파트너 신하균과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뤘다(<풍년빌라>는 100% 사전제작으로 KBS <부자의 탄생>보다 먼저 촬영됐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만한 점은 드라마의 배경이 재개발을 목전에 둔 허름한 빌라라는 것이다. 폐차장 형제 중 형인 상근이 "재건축된다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니라고. 재건축 부담금은 어쩔 것이며, 재건축되는 동안은 어디서 살 거야? 다른 데 들어갈 전세금은 어떻게 마련할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재개발 광풍이 불고 그것에 휩쓸려 크고 작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 세계의 일을 떠올리게 한다.

13평짜리 허름한 풍년빌라에는 시가 500억 원 상당의 금괴가 감춰져 있고 복규의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살해됐다. 입주자 모두가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한 가지씩 안고 있는 그곳에 복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가고, 그가 좋아하는 서린 역시 진짜 정체는 베일에 감춰진 상태. 복규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감춰진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풍년빌라>의 앞으로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기대해 본다.
#풍년빌라 #신하균 #이보영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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