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새야, 네가 있어 행복했단다

[포토에세이] 한달 반, 딱새 관찰기

등록 2010.05.30 18:09수정 2010.05.3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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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딱새 지난 4월 11일, 그릴에 집을 짓는 딱새를 만나다.

딱새 지난 4월 11일, 그릴에 집을 짓는 딱새를 만나다. ⓒ 김민수


어느 봄날, 딱새가 그릴에 둥지를 짓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필이면 고기를 구워먹는 그릴에 집을 짓다니, 그래도 딱새에게 집을 빼앗긴 이도 있었는데 그릴정도야 포기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릴이 그에게 최선의 장소일지 아닐지는 의문이었습니다. 따가운 햇살에 그릴 안의 온도가 어떨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너무 뜨거워서 알이 골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새끼들이 부화할 즈음이면 오월의 햇살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싶었지요.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저온현상이 지속되는 바람에 딱새의 선택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a 딱새 지난 5월 9일, 딱새가 6개의 알을 낳다.

딱새 지난 5월 9일, 딱새가 6개의 알을 낳다. ⓒ 김민수


딱새가 여섯개의 알을 낳았습니다. 농담으로 혹시라도 꿩알이었다면 그냥 그릴에 통째로 구워먹었을 것이라고 농담도 했습니다. 어미가 알을 품고 있을 때 그릴 뚜껑을 닿고 불만 지피면 꿩먹고 알먹고 할 것이라고 말이지요.

작디 작은 여섯개의 알, 그 알 하나하나 생명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제는 그들을 지켜줘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가까운 곳에 집을 짓는 딱새, 아마도 사람을 의지해 들짐승들로부터 알을 지키기 위한 이유일 것도 같았습니다.

a 딱새 지난 5월 9일, 알을 품고있는 딱새를 만나다.

딱새 지난 5월 9일, 알을 품고있는 딱새를 만나다. ⓒ 김민수


그날, 어미새는 알을 품고있다가 불쑥 그릴을 열었던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알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어미새를 보면서 모성애를 생각하기도 했고, 저 작은 새도 저러한데 우리네 사람들은 과연 저러한가 싶은 생각도 했습니다.

너무 자주 그릴을 열어 불안감을 조성하면 안될 것 같아서 조금은 사람의 출입이 드문 구석으로 그릴을 옮겨주고, 그늘도 만들어주었습니다. 집을 옮겨도 딱새는 찾아온다는 새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그리했지만 불안했습니다. 혹시라도 어미새가 알을 품지 않고 떠나가면 어쩌나 하고 말이죠.


다행히도 딱새는 옮긴 곳으로 찾아왔고, 한동안 부지런히 드나드는 모습만 바라보았습니다.

a 딱새 지난 5월 16일, 새끼 여섯마리 부화하다.

딱새 지난 5월 16일, 새끼 여섯마리 부화하다. ⓒ 김민수


드디어, 새끼들이 부화했습니다. 여섯개의 알 모두 성공입니다.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면 딱새새끼들이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리며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맨 처음에 그릴을 열었을 때에는 어민줄 알고 입을 벌리더니만 몇 번 반복되니까 이젠 그릴을 열어도 반응이 없습니다.


이젠 새끼들이 불안해 할까봐 한동안 그릴을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5월 24일, 그릴을 열어보았을 때에는 예쁜 새끼의 모습이 아니라 다 자라지 않은 까만 털이 숭숭 박힌 못난 모습이었습니다. 여섯마리가 있기에는 좁게 느껴지는 작은 둥지, 이제 곧 날기를 연습하고 떠날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들이 날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도 담아보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일로 잠시 그들을 잊었습니다.

a 딱새둥지 5월 30일, 딱새 날기연습을 마치고 어디론가 떠나가다.

딱새둥지 5월 30일, 딱새 날기연습을 마치고 어디론가 떠나가다. ⓒ 김민수


그리고 5월 30일, 그릴이 조용해서 열어보니 이미 딱새는 새끼들을 죄다 데리고 어디론가 떠난 뒤였습니다. 새끼 딱새가 비행연습을 하던 것을 지켜보았다는 친구가 "그 놈들 날기 시작하니까 인사도 하지 않고 날아가데"합니다.

딱새의 빈 집, 허전했습니다. 잠시 빌려갔던 그릴을 다시 돌려받았지만, 딱새가 없는 빈 둥지가 있는 그릴은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동안 그릴이 얼마나 신났을까요? 뜨거운 석탄을 몸에 담고 고기를 굽다가 이렇게 살아있는 생명을 품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집짓는 과정에서부터 알을 낳고, 품고, 부화하고, 먹이를 물어다 주고, 딱새가 무럭무럭 자라가는 모습을 온 몸에 품고 비바람을 막아준 그릴, 그는 참 행복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나보다도 그들을 제 몸에 품고 있었던 그릴이 더 서운하겠죠.

그래도, 좋습니다. 자연의 섭리대로 그렇게 딱새는 자연으로 돌아갔으니까요. 한달 반, 딱새가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내년에는 제대로 된 집을 만들어줘야 겠습니다. 딱새, 안녕!
#딱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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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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