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내려했는데, 순간 배가 너무 고픈 거예요"

자살 다룬 청소년 소설 <우아한 거짓말>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등록 2010.06.30 16:46수정 2010.06.3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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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요일에 들은 우울한 소식

비오는 수요일 우울한 소식을 접했다. 살아 온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남겨두고 지구별과 이별한 박용하 때문이다. 나는 단지 박용하의 이름만 알 뿐이지만  마음이 우울해져 온다.  얼마 전에는 트위터에다 자신의 자살을 예고한 젊은이가 실제로 목숨을 끊어 적잖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자살 충동이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더욱 우울한 것인지 모른다. 때로 나도 '아, 이렇게 힘들게 사느니 그냥 팍 죽어 버렸으면 좋갰다'라는 생각을 하니 말이다.


누구나 자기 앞에 놓인 삶의 무게는 버겁게 느껴진다. 사실 사는 게 그냥 시들했던 사춘기 때에는 자살 충동을 느껴 구체적인 자살 방법을 생각해 본 사람이 한 둘일까. 내 경우는 두려움이 앞서 매번 머릿속 계획으로 끝났다. 지금은 그저 '소 힘줄보다 더 질긴 것이 목숨'이라는 말로 현실의 어려움을 버텨내며 삶의 내성을 키워내고 있다. 물질적 빈곤과 생존을 위한 삶이 버거워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절대빈곤 지수가 줄어든 현대사회에서 왜 젊은이들의 자살이 늘어만 가는 것일까? 상대빈곤과 박탈감, 관계의 단절과 고립감이 생의 의욕을 잠식해 삶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관계 단절의 사회가 자살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죽음 뒤에 늘 우울증이나 심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했다는 꼬리표가 붙으니 말이다.

내 아이에게는 가난이나 고통을 절대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지나친 보호의식, 사회에 팽배한 경쟁주의가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는 내성 약한 아이로 만들고 있다. 기아와 굶주림 가난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나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가 맛난 것으로 먹이고 입히는 대한민국 아이들의 행복지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것이 그 반증이다.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

가정의 달인 5월에 <학교도서관 저널>은 대담 특집으로 청소년 자살과 자살 충동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대안을 세울 것인가에 대한 토론 내용을 실었다. 놀라운 사실은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며 해마다 그 비율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부모나 학교 안팎의 교사들까지 청소년 자살 문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거나 생각해 보는 것은 껄끄럽다고 했다. 청소년 자살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매년 수능이 끝나고 나면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날린 청소년 사망 기사를 접하는 대한민국이다. 수능이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왕따를 당해서, 시험 성적이 나빠서, 부모에게 꾸중을 들어서 푸른 청춘을 접는다.

내 아이에게 밝은 면만 보여주겠다고 자살을 다룬 책을 치우고 쉬쉬하는 것으로는 매년 늘어가는 청소년 자살을 막을 수 없다. 인터넷 세대인 아이들의 놀라운 정보력 앞에 부모들은 자신들 보호망의 무력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차라리 문제점을 드러내고 정공법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자살'과 '우울증' 쉬쉬하며 덮을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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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왕따로 인한 청소년의 자살 문제를 다룬 김려령 청소년 소설 ⓒ 창비

<우아한 거짓말<(김려령 지음. 창비)과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박채린 지음. 사계절)는 청소년의 자상과 자살 충동을 그린 청소년 소설이다.

김려령의 소설 <우아한 거짓말>은 왕따로 자살한  '천지'라는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주변인물을 통해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전말을 밝히는 이야기다. 왕따로 인한 중학생의 자살이라는 주제가 무겁기는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왕따로 인한 유사한 죽음을 수없이 경험한 바 있다.

"메일로 말씀드렸지만 천지하고 화연이, 상하 관계는 아닌 것 같았어요. 둘만의 교집합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서로 필요에 의한 건진 잘 모르겠지만, 그걸 유지하는 방법이 좀 나빴지 않나 싶고요."
"화연이가 상처를 주고 천지가 상처를 입는 관계였겠네요."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거예요. 화연이가 그렇게 독한 애가 아니거든요. 까불까불 거짓말도 잘하긴 하는데 , 금방 사과하는 타입이에요. 관심 끌려고 하는 애들 있잖아요."
"친구들 때문만은 아니겠죠. 저도 항상 천지를 혼자 뒀거든요. 알아서 잘하는 애라고만 생각했어요. 내가 그랬어요." -우아한 거짓말 중-

부모의 이혼으로 일찍 철든 아이 천지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엄마나 언니에게 말하지 않는다. 교묘한 거짓말로 천지를 괴롭히고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화연은 왕따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천지를 왕따 시키며 물량공세로 아이들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천지나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짐을 평생 그림자처럼 지고 살아야 할 화영이나 똑같이 희생자들이다. 선택의 길이 달랐을 뿐이다.

사실 어른이건 아이건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고립감, 경쟁 사회에서 느끼는 외톨이의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우아한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 시기나 질투심, 험담과 비꼼을 칭찬을 곁들여 우아하게 포장해 교묘한 비틀기로 남들에게 퍼트리는 것이다. 안팎으로 높아지는 담장과 외줄타기 경쟁사회는 관계의 단절과 내면의 황폐함을 부추긴다. 

앞만 보고 질주하다 외로워 문득 뒤돌아 본 길에 나를 위해 미소 지어줄 대상이 없다는 사실은 또 다른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우울한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손잡아 줄 대상이 없다 싶으면 때론 생을 포기하고 싶어 질 것이다. 나를 외면한 상대들에게 멋진 복수와 사과를 동시에 받아내고 싶은 심정이 자살이라는 형태로 생을 접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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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청소년 자살 충동을 그린 박채린 소설로 간접 경험을 통해 용기를 얻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전해진다.. ⓒ 사계절

박채린 작가의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는 청소년들의 자살 충동을 좀 다른 각도로 접근한다.  태정, 선주, 새롬, 세 명이 모의 자살을 통해 각자 마음에 품은 뜻을 이루려고 한다. 우연히 그들의 모의를 알게 된 하빈은 안전요원으로 지상에 파견된 천사 K-758을 자처하며 사이프러스라는 공간에서 그들을 만나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만든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했던 작가는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청소년 책을 내게 된 동기를 아이의 고백을 담은 서문에서 밝힌다.

'있잖아요. 사실은 제가 며칠 전에 죽으려고 했었어요. 농담이 아니에요. 진짜예요. 학교 갔다 집에 왔는데 마침 아무도 없는 거예요. 아무도 없기를 바랐는데 막상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기분이 이상했어요. 마음을 굳게 먹고 제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꼭 닫았죠. 아무도 없는데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창문을 열었어요. 침대 옆에 창문이 있어서 침대 위로 올라가면 쉽게 창틀로 올라 갈 수 있어요. 모든 게 너무 간단해 보였어요. 제 방 창문에는 창살이 없고 우리 집은 10층이니까요. 창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었어요. 그래. 더 이상 혼자 울 필요가 없어. 외로워하기 싫어. 이제 끝이야. 정말 끝이야. 끝을 내자. 그런 생각을 했던 같아요. 그런데요. 그 순간 배가 너무너무 고픈 거예요.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서문 중-

먹고 싶은 우동이나 먹고 죽자 하면서 우동을 끓여먹고 잠이 들어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아이가 고백했다. 다시  삶을 선택한 제자의 용기에 너무 감사해 눈물을 흘렸다며 작가는 말한다.

"자살 충동이 남들에게는 하찮고 사소해 보이는데서 시작되듯  살아있으려는 용기 역시 소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자살 충동을 경험한 청소년들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때론 아이에게 묻자 "애야, 별 일 없는 거니?"

김려령 작가는 <우아한 거짓말>의 말미에서 청소년 독자들에게 진지하게 당부한다.

"어른이 되어보니, 세상은 생각했던 것처럼 화려하고 근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생보다 미리 세상을 버렸다면 보지 못했을, 느끼지 못했을, 소소한 기쁨을 품고 있었습니다. 혹시 내 어렸을 적과 같은 아픔을 지금 품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뜨겁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미리 생을 내려놓지 말라고. 생명 다할 때까지 살라고. 그리고 진심을 담아 안부를 묻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우아한 거짓말 중 작가의 말-

허기가 한 아이를  죽음의 길목에서 삶의 길목으로 방향을 틀게 했듯이 따뜻한 말 한마디나 문자가 벼랑 끝에 선 청소년을 살려 낼 수 있다. 우리들이 가슴의 빗장을 열어 날린 미소 한방이 죽음 앞에 머뭇거리던 아이의 발걸음을 되돌리는 힘이 될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의 생을 선택하는 우주의 구슬을 골라 지구별에 온다는 가정을 통해 천사를 자처하는 하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지금의 이 삶을 내가 선택한 거라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게 있어.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힘든 순간이 닥쳐도 자신이 선택한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거야. 그건 모든 구슬이 마찬가지야. 우주의 구슬 프로그램 변수 가운데 자살로 끝나게끔 프로그래밍 된 경우는 없다는 말이야. 그런데 요즘 그 프로그램에 버그가 생겼어. 원래 프로그램에 없는 자살 사건이 자꾸 생기잖아. 우리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그 이유를 분석하고 있는데 아마 우주의 먼지 때문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어. 우주의 먼지가 구슬에 붙어서 프로그램에 오류를 일으키면 영혼들은 지금 이 삶이 원래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는 마음 깊은 곳의 확신을 잃게 되는 거야.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중-

자기 앞의 생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는 사실,  함께 사는 어른들의  삶 또한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용기는 아이들에게 삶을 견뎌내는 내성이 될 것이다. 우아한 거짓말이나 포장이 아닌, 진심을 담아 이따금 아이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자.

"얘야. 별 일 없는 거지?  힘들어도 살아볼 만한 세상이란다."

우아한 거짓말

김려령 지음,
창비, 2009


#자살과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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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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