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10)

― '제사의 시기', '경제 만능의 시기', '청춘의 시기' 다듬기

등록 2010.07.07 10:34수정 2010.07.0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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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제사의 시기

 

.. 부여에서는 제천대회를 영고라고 하였는데, 제사의 시기가 '은정월'로 기록되어 있다 ..  <최광식-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살림, 2004) 31쪽

 

'기록(記錄)되어'는 '적혀'나 '적바림되어'나 '되어'로 다듬어 줍니다. "영고라고 불렀는데"라 하지 않고 "영고라고 하였는데"라 적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 시기(時期)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진행되는 시점. '때'로 순화

 │   - 가을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시기이다

 │

 ├ 제사의 시기가 '은정월'로 기록되어 있다

 │→ 제사를 한 때가

 │→ 제사를 할 때가

 │→ 제사를 하던 때가

 │→ 제사를 지낸 때가

 │→ 제사를 모신 때가

 │→ 제사를 올린 때가

 └ …

 

한자말 '시기'는 우리 말이 아닌 한자말입니다. 그래서 국어사전 말풀이에서는 이 낱말을 쓰지 말고 '때'로 고쳐쓰도록 적어 놓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말 '때'를 알맞고 바르게 쓰는 사람은 드뭅니다. 우리 말이 아닌 한자말 '시기'를 쓰는 사람이 몹시 많으며, 이 낱말을 안 써야 알맞거나 바른 줄 깨닫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적어도 국어사전이나마 뒤적인다면 옳고 바르게 가다듬을 말글을 헤아릴텐데, '시기'처럼 흔히 쓰는 한자말을 따로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이런 흔한 한자말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지 않습니다. 말뜻이며 말쓰임이며 살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넋을 살리거나 우리 얼을 살찌울 곱고 좋은 말글을 찾아나서지 못합니다.

 

그나마 말뜻과 말쓰임을 곰곰이 생각했더라도 "제사의 때"처럼 토씨 '-의'를 달아 놓는 분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적어도 "제사 때"처럼 적거나 "제사를 하던 때"처럼 적어야 하는 줄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 제사를 은정월에 했다고 적혀 있다

 ├ 제사를 은정월에 지냈다고 나와 있다

 └ …

 

한국사람이기에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해야 합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사람다운 한국글을 익히며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한국말이 아니요, 까다로운 한국글이 아닙니다. 사랑스러우며 즐겁게 주고받을 한국말이고, 홀가분하며 살가이 나눌 한국글입니다.

 

 

ㄴ. 경제 만능의 시기

 

.. 돈을 버는 자만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경제 만능의 시기에는 어디서나 통용되는 생의 철학이었다 ..  <레기네 슈나이더/조원규 옮김-소박한 삶>(여성신문사,2002) 57쪽

 

"돈을 버는 자(者)만이"는 "돈을 버는 사람만이"나 "돈을 벌어야만"으로 손질합니다. "인정(認定)을 받는다는 것은"은 "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기는"이나 "받아들여진다는 대목은"으로 다듬고, '통용(通用)되는'은 '이야기하는'이나 '말하는'이나 '떠도는'으로 다듬으며, "생(生)의 철학이었다"는 "생각이었다"나 "처세 철학이었다"나 "소리였다"쯤으로 다듬어 봅니다.

 

 ┌ 경제 만능의 시기에는

 │

 │→ 돈이면 다 된다는 때에는

 │→ 돈이면 그만이라는 때에는

 │→ 돈만 사랑하는 때에는

 │→ 돈만 앞세우는 때에는

 └ …

 

오늘날 우리 터전은 "경제(經濟) 만능(萬能)"을 외치고 있습니다. 옳은 삶이나 바른 넋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경제만 들먹이고 있습니다. '경제'란 다름아닌 '돈'입니다. 한자로 '經濟'라 적든 영어로 'economy'라 적든 오늘날 사람들은 바로 '돈' 하나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오늘날입니다. 돈이면 그만인 온누리입니다. 돈만 사랑하는 삶터입니다. 돈만 앞세우는 나날입니다.

 

돈이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돈이라야 으뜸입니다. 돈 앞에서 설설 기는 사람들입니다. 돈보다 나은 뜻이나 넋이나 꿈을 살피지 못합니다.

 

 ┌ 경제만 떠드는 때

 ├ 경제만 들먹이는 때

 ├ 경제만 섬기는 때

 ├ 경제만 우러르는 때

 └ …

 

돈만 알고 돈만 밝히며 돈만 생각하고 있는 이 나라에는 아무런 사랑이나 믿음이 깃들지 못합니다. 돈만 보고 돈만 따지며 돈만 헤아리고 있는 오늘날에는 따스함이나 넉넉함이란 자리하지 못합니다. 돈에 홀리는 사람치고 제 마음바탕을 차릴 줄 아는 매무새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ㄷ. 청춘의 시기

 

.. 아니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소중한 내 청춘의 시기를, 그렇게 나를 팔기 위해 발버둥치며 죽어 갈 수는 없었다 ..  <김예슬-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느린걸음,2010) 48쪽

 

'인생(人生)'은 '삶'으로 다듬고, '소중(所重)한'은 '커다란'이나 '뜻있는'이나 '아름다운'으로 다듬으며, '청춘(靑春)'은 '젊음'으로 다듬습니다. "팔기 위(爲)해"는 "팔려고"나 "팔아치우려고"로 손질합니다.

 

 ┌ 내 청춘의 시기를

 │

 │→ 내 청춘을

 │→ 내 젊음을

 │→ 내 젊은 나날을

 │→ 내 젊은 날을

 │→ 내 젊은 한때를

 └ …

 

이 자리에서는 "내 청춘을"이라고 적바림하면 넉넉합니다. 굳이 '-의 시기'라고 붙이며 군더더기를 늘어뜨리지 않아도 됩니다. 한자말 '청춘'을 우리 말 '젊음'으로 손질해서 "내 젊음을"이라고 적바림해도 잘 어울립니다. 또는 "젊은 나날"이나 "젊은 날"이나 "젊은 한때"라 적어 볼 수 있겠지요.

 

곰곰이 헤아려 보면, "젊은 날" 같은 글월은 딱히 띄어서 쓰기보다는 '젊은날'처럼 한 낱말로 삼을 때가 한결 알맞으리라 봅니다. '어린날-젊은날-늙은날'처럼 짝을 맞추어 쓴다면, '유아기-청년기-노년기' 같은 말마디를 살뜰히 걸러낼 수 있습니다. 같은 뜻으로 '어린때-젊은때-늙은때'처럼 적어 볼 수 있어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말글을 새롭게 돌아보고 새삼스레 살피며 싱그럽게 살찌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얄딱구리하거나 어설프거나 뒤틀린 말투를 걷어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글을 일구거나 가꾸거나 보듬지 않는 가운데 옳고 바르고 알맞고 슬기롭게 이야기하거나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때와 곳에 걸맞게 새말을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리와 흐름을 곱씹으며 말빛과 말느낌을 북돋울 수 있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7.07 10:34ⓒ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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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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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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