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105) 사람질

[우리 말에 마음쓰기 948] 북녘은 '사람질', 남녘은 '사람값'

등록 2010.08.13 15:42수정 2010.08.1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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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질, 사람값

 

.. "글쎄 네가 언제 사람질을 하겠니. 에미 속을 태워두 너처럼 태울 데라구야." ..  <류원무-우리 선생님>(연변인민출판사,1983) 22쪽

 

중국에서 살아가는 한겨레하고 북녘에서 살아가는 한겨레는 남녘에서 살아가는 한겨레하고 견주어 우리 토박이말을 퍽 홀가분하게 새로 일굽니다. 그때그때 쓸모에 따라 우리 토박이말을 알맞게 가다듬습니다.

 

남녘에서 살든 북녘에서 살든 중국에서 살든 일본에서 살든 러시아에서 살든 중앙아시아에서 살든, 한겨레라면 그예 한겨레입니다. 더 잘난 사람이 없고 더 못난 사람이 없습니다. 똑같이 우리 말을 하고 서로 우리 글을 씁니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살가이 마주하면서 말을 나누고 글을 주고받습니다. 저마다 제 깜냥껏 알맞춤하게 새말을 보듬으면서, 저마다 제 슬기를 빛내어 제 이야기를 펼치는 글줄을 엮습니다.

 

 ┌[남] 사람질 : x

 ├[북] 사람질 = 사람노릇

 │  - 오목장 총감루 다 꿰차도 사람질 하긴 글렀다

 ├[북] 사람노릇 : 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할 역할

 └[북] 사람구실 : 사람으로서의 역할

 

북녘사람 국어사전에는 '사람질'이라는 낱말이 실립니다. 이와 함께 '사람노릇'과 '사람구실'이라는 낱말이 실립니다.

 

남녘사람 국어사전에는 '사람질'이라는 낱말이 안 실립니다. 이와 함께 '사람노릇'이든 '사람구실'이든 실을 마음이 없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남녘사람 국어사전에는 '사람값'이라는 낱말은 하나 실립니다. "사람으로서의 가치나 구실"을 뜻한다는 말풀이가 달립니다. 북녘사람 국어사전에도 '사람값'이라는 낱말은 실립니다. 북녘 국어사전 말풀이는 "사람으로 쳐줄 만한 값"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겨레 두 나라로 지내는 남북녘에서 쓰는 국어사전 올림말과 말풀이를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우리 흐름을 찬찬히 짚어 봅니다. 남녘에서는 '역할(役割)'이라는 일본 한자말을 쓰지 말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르치기는 하면서도 이 일본 한자말 '역할'은 참 자주 온갖 곳에 함부로 나타납니다. 북녘에서는 '역할'이라는 낱말을 씻거나 털 낱말로 삼지 않습니다. '사람역할'이라는 낱말은 쓰지 않으나 '사람노릇-사람구실' 말풀이에 '역할'이라는 낱말을 넣습니다.

 

 ┌ 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할 역할

 │→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노릇

 ├ 사람으로서의 역할

 │→ 사람으로서 할 구실

 ├ 사람으로서의 가치나 구실

 │→ 사람으로서 매기는 값이나 구실

 └ …

 

아직 우리 겨레는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며 곱게 가꾸어 가는 길에 접어들지는 못합니다. 북녘이라고 우리 말글을 더 알차게 가꾸지는 못하지만, 남녘은 돈벌이는 잘하고 가방끈은 길지만 우리 말글을 더 못난쟁이로 짓누릅니다.

 

북녘은 올림말을 다루는 틀이나 넋이 한결 낫다 여길 만하지만, 북녘 또한 올림말을 풀이하는 자리에서는 여러모로 모자라거나 아쉽습니다. 남녘은 올림말을 다루는 틀이나 넋부터 어설프다 할 만하지만, 이 어설픈 올림말을 풀이하는 자리에서는 더 어리숙할 뿐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합니다.

 

남녘 학자이든 북녘 학자이든 우리 말글을 우리 말글답게 추스르거나 다스리거나 돌보거나 어루만지고자 하지 못합니다. 우리 삶을 살피고 우리 사람을 돌아보며 우리 터전을 생각하는 눈길을 틔우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학자가 되기까지 배우는 말이며 글이며 우리 말글다운 말글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탓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누리 여느 사람들은 우리 말글답지 않은 말글로 나누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뜻을 얼추 알아듣습니다. 이를테면 맞춤법이 틀린 말을 하더라도 알아듣고, 띄어쓰기가 틀린 글을 읽더라도 알아차립니다. 잘못 쓴 말이나 글이라 해도 웬만큼 헤아립니다. 그러니까, 얄궂을 뿐 아니라 몹시 나쁜 말마디나 글줄을 엉터리로 쓰고 있어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합니다.

 

 ┌ 네가 언제 사람질을 하겠니

 ├ 네가 언제 사람값을 하겠니

 ├ 네가 언제 사람이 되겠니

 ├ 네가 언제 사람길을 걷겠니

 └ …

 

사람이 사람다운 일을 한다면 '사람일'이고, 사람으로 사람으로서 몸짓을 보인다면 '사람짓'입니다. 사람으로서 걸어갈 길은 '사람길'이며, 사람이 꾸리는 삶은 '사람삶'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사람터'나 '사람곳'입니다. 사람이 품는 넋이면 '사람넋'이겠지요.

 

이리하여 사람꿈, 사람빛, 사람몸, 사람결, 사람멋, 사람얼, 사람집, 사람말, 사람내, 사람힘, 사람품 …… 같은 낱말을 하나둘 얻습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가운데 내 삶을 돌아보면서 알뜰살뜰 새로운 낱말을 찬찬히 얻습니다. 일부러 짓는 낱말이 아니라, 내 삶터에 걸맞게 시나브로 샘솟는 낱말을 얻습니다.

 

어쩌면 국어사전에 실리지 못하는 수많은 낱말들이 있어 우리 말삶이 빛나고 우리 글삶이 넉넉한지 모릅니다. 굳이 국어사전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때와 곳에 알맞게 살뜰히 쓰는 숱한 낱말들이 어우러지며 우리 말결을 가꾸고 우리 글힘을 북돋우는지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8.13 15:42ⓒ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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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살려쓰기 #토박이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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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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