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의 명물, 할머니표 손수레마트에 낚이다

저울은 없고, 정직한 노동과 인심만 한가득인 손수레마트를 아시나요?

등록 2010.08.29 11:13수정 2010.08.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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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의 몇 배는 돼 보이며 몸무게의 몇 배는 됨직한 달구지에 이른 아침부터 상추, 쪽파, 부추, 알타리 같은 직접 기른 채소를 싣고 나와 채소가 다 팔릴 때까지 시내 구석구석을 끌고 다니며 파는 할머니가 있다.


남원시로 이사해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 할머니의 달구지와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게 여겨진 한편,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고생하시는 것 같은 안스러운 감상 때문에 한두 가지씩 물건을 팔아드리게 되었는데, 어느새 이 할머니의 단골이 돼 버리고 말았다.

a  시내 인근에서 직접 농사지은 푸성귀들을 싣고 다니며 파시는 할머니의 손수레마트

시내 인근에서 직접 농사지은 푸성귀들을 싣고 다니며 파시는 할머니의 손수레마트 ⓒ 김혜정


이사 후, 아직 변변한 살림을 갖추지 못해 냉장고도 없이 근근히 사는 처지에 이런 물건들이 무에 그리 많이 필요할까만은, 달구지를 끌고 나타난 할머니가 사무실 앞에 멈추어서서 안에 있는 내게 시선을 던지며 뭐 하나 팔아달라고 하기만 하면 박하게 거절을 할 수가 없게 된다.

a  저울이 없는 할머니의 손수레마트는 오가는 마음에 따라 봉지에 담는 양이 결정된다.

저울이 없는 할머니의 손수레마트는 오가는 마음에 따라 봉지에 담는 양이 결정된다. ⓒ 김혜정


할머니가 그날그날 싣고 나와 권하는 대로 상추를 사기도, 파를 사기도, 부추를 사기도 하는데 저울이 없는 할머니의 계량은 어디까지나 할머니의 마음 가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인 것이어서 마트나 시장에서 사는 것과는 달리, 손님과 사이에 오고가는 마음에 따라 봉지에 담는 양이 결정된다.

시장의 물가나 시세와 전혀 무관하게 상추 천 원 어치나 부추 천 원 어치도 언제나 넉넉히 담아줄 만큼 박하지 않은 인심이 할머니의 장삿법이며 고작 천 원, 이천 원, 기껏해야 삼천을 넘지 않는 싼 물건 값으로 인해 별 다른 흥정이 필요치 않은 게 할머니표 손수레마트의 거래원칙이다.

a  자세를 다듬어 포즈를 취해 주시는 할머니.

자세를 다듬어 포즈를 취해 주시는 할머니. ⓒ 김혜정


사진 한 번 찍어도 괜찮겠냐고 여쭈었더니, "날 뭐 할라고 찍어?" 하시면서도 자세를 다듬어 미소까지 지으시며 포즈를 취해주신다. 욕심이라곤 티끌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할머니의 푸근한 표정이 고맙고도 애잔하다.


a  요즘 보기 힘든 짚끈으로 묶은 알타리무 한 단을 샀다.

요즘 보기 힘든 짚끈으로 묶은 알타리무 한 단을 샀다. ⓒ 김혜정


할머니의 채소들은 비닐끈이 아닌 볏짚으로 이처럼 단끈을 묶는데, 나는 이 볏짚 끈이 언제 봐도 참 좋다. 화학농법에 의존하기 이전, 자연에 순응하며 생태질서를 따라 농사짓던 정직하고 순수한 옛적 농부의 마음과 정성이 볏짚끈에서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서이다.

a  볏짚끈, 그리고 착한 가격에 마음이 끌려 한꺼번에 세 가지나 되는 푸성귀를 샀다

볏짚끈, 그리고 착한 가격에 마음이 끌려 한꺼번에 세 가지나 되는 푸성귀를 샀다 ⓒ 김혜정


그래서 어느 때는 이 볏짚끈에 이끌려 한꺼번에 세 가지나 되는 푸성귀들을 살 떄도 있다.
물론 한 단에 고작 1000원, 2000원, 많아야 3000원이 넘지 않는 착한 가격이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다.


a  부춧단을 묶은 짚끈이 허리를 질끈 동여맨  새색시 초록치마 같다.

부춧단을 묶은 짚끈이 허리를 질끈 동여맨 새색시 초록치마 같다. ⓒ 김혜정


허리를 질끈 묶은 새색시 초록치마같아 보이는 싱싱한 부춧단. 단 돈 1000원을 건네기 미안할 정도로 푸짐하게 단을 묶어 내오신다.

a  손수레마트에서 장만한 푸성귀들로 푸짐하게 반찬을 만들었다.

손수레마트에서 장만한 푸성귀들로 푸짐하게 반찬을 만들었다. ⓒ 김혜정


푸성귀들을 사들고 퇴근한 저녁은 본의 아니게 바쁘다. 비록 거두어 먹일 식구는 없지만 이웃이나 직장동료 등, 언제 어느 때고 맛있게 먹어줄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이것저것 양념을 해서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한다. 이때의 시간은 제법 경건하기도 하고 온전히 집중하는 데서 얻는 충일감으로 가득하곤 한다.

특히 할머니의 손수레마트에서 받아온 푸성귀들을 다룰 때면 언제나 흐뭇한 기분이 든다.
정직하고 욕심 없는 할머니의 농심(農心)에 더하여 역시 정성스러운 요리 솜씨를 보태어 맛깔스러운 음식을 창조한다는 기쁨이 배가된다.

a  멸치액젓으로 간하고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어 얼큰하게 담은 부추김치

멸치액젓으로 간하고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어 얼큰하게 담은 부추김치 ⓒ 김혜정


부추는 몸을 덥게 하는 보온효과가 있다고 한다. 부추의 아릴 성분은 소화를 돕고 장을 튼튼하게 하며 강정효과가 있고, 음식물에 체해서 설사를 할 때 이 부추로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 특히 효과가 좋다고 한다.

땀을 많이 흘리고 무더위에 지친 입맛을 추스릴 겸, 부추와 실파를 섞어 얼큰하고 간간한 부추김치를 담았다. 멸치액젓으로 간하고 태양초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매실효소, 통깨 등을 넣고 발갛게 버무렸더니 보기만 해도 침이 절로 돈다.

a  점심시간마다 펼쳐지는 도시락파티. 각자가 집에서 정성껏 장만한 음식들을 싸와 함께 나누면 맛도 두 배, 즐거움도 두 배가 된다.

점심시간마다 펼쳐지는 도시락파티. 각자가 집에서 정성껏 장만한 음식들을 싸와 함께 나누면 맛도 두 배, 즐거움도 두 배가 된다. ⓒ 김혜정


다니는 직장에서는 점심시간에 어디 음식점엘 가거나 배달을 시켜 먹는 이가 없이 전부가 각각 집에서 장만한 도시락을 싸갖고 와서 점심시간이면 아예 돗자리를 펴놓고 이렇게 도시락 잔치가 벌어지곤 하는데, 메뉴도 다양하고 각자의 솜씨에 따라 맛도 가지가지인 훌륭한 점심시간을 갖는 일은 일상의 큰 즐거움이다.

할머니의 밭->손수레마트->우리집 부엌->도시락 뷔페잔치로 이르는 맛있는 순환의 고리가 즐겁고도 감사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봄 작성되어 본인의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에도 실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지난 봄 작성되어 본인의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에도 실린 글입니다.
#손수레마트 #부추김치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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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서 우리 시대의 삶에 공감하며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문화, 예술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고 미디어 컨텐츠의 창작에도 많은 관심 가지고 있다. 몇 군데 사회단체에서 우리 사는 세상이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게 하는 일에 조금씩 힘을 보태며 어울리며 나누며 살려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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