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시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시인 임효림 스님, 세 번째 시집 <그늘도 꽃그늘> 펴내

등록 2010.09.14 19:38수정 2010.09.14 19:38
0
원고료로 응원
a 시인 임효림 스님 시인 임효림 스님 세 번째 시집 <그늘도 꽃그늘>(실천문학사)을 읽는 기쁨이 크다.

시인 임효림 스님 시인 임효림 스님 세 번째 시집 <그늘도 꽃그늘>(실천문학사)을 읽는 기쁨이 크다. ⓒ 이종찬

▲ 시인 임효림 스님 시인 임효림 스님 세 번째 시집 <그늘도 꽃그늘>(실천문학사)을 읽는 기쁨이 크다. ⓒ 이종찬

 

내가 쓴 시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네가 나를 그렸느냐

내 얼굴이 네 얼굴이냐

그렇게 묻는 듯이

 

나도 모를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이 글은 시인 임효림 스님이 얼마 앞에 펴낸 <그늘도 꽃그늘>이란 시집 마지막 장에 제목도 없이 무슨 화두처럼 박혀 있는 '시인의 말'이자 시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시를 쓰고 있는 글쓴이도 가슴이 뜨끔하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내가 쓴 시가 나를 보고 비웃고 있다니... 이 얼마나 솔직하게 스스로를 이 세상 밑바닥으로 크게 낮추는 마음인가. 이 글은 어쩌면 우리 시인들에게 시인 스님이 던지는 화두라 할 수 있다.

 

글쓴이는 이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거나 마음이 울적하고 외로워질 때면 시인 효림 스님이 주지를 맡고 있는 봉국사로 가곤 한다. 이 시는 지난 6월 12일(토) 저녁 무렵에 박선욱 시인과 함께 봉국사를 찾았을 그때, 효림 스님이 처음으로 읊어주었다. 효림 스님이 이 시를 읊을 때 하필이면 장대비가 쏟아졌다. 시인들 종아리를 마구 때리는 회초리처럼 이 시와 장대비가 그대로 한 몸이 되었다.

 

지난 3일(금) 낮 4시에 봉국사를 다시 찾았을 때 스님은 글쓴이에게 찻잔을 건네주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세상 이치란 것이 밤송이와 같다"라고. 이날도 글쓴이는 이 말에 무슨 깊은 뜻이 담겨 있을까 싶어 귀를 바짝 추켜세웠다. 스님이 말씀하시길 밤송이는 익지 않으면 절대 벌어지지 않고 촘촘한 가시로 자기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 밤을 먹을 다람쥐도 그 곁을 서성이며 저절로 익어서 벌어지기를 기다린다.

 

그리하여 마침내 밤송이가 벌어지면 다람쥐는 잽싸게 밤송이가 달린 가지를 흔들어 알밤을 땅바닥에 떨어뜨린 뒤 겨우 내내 양식으로 삼기 위해 여기 저기 숨겨 놓는다. 하지만 그 다람쥐도 숨겨놓은 밤송이를 다 찾아 먹지 못한다. 까닭에 다람쥐가 땅에 묻어놓았다 찾아먹지 못한 그 밤이 마침내 싹을 틔워 새로운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은 먹이사슬 때문에 서로 잡아먹히고 잡아먹으면서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효림 스님은 "만약 다람쥐가 그 수많은 밤을 먹어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 숲은 온통 밤나무만 남게 되어 마침내 스스로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이는 비단 밤나무뿐만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한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단지 사람만이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함께 나누어 먹어야 할 것을 제 홀로 독자치하고 있을 뿐.

 

"이 세상은 생각보다 추운 곳이다"

 

이 밤

차갑게 뜬 달이 저렇게까지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그대가 나를 못 잊어 그리워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지금

산골 물소리가 저렇게까지 내 마음을 흔드는 것도

여전히 그대가 나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계절이 깊어가는 이 밤에

내가 이토록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순전히 그대가 나를 너무나 그리워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나를 그리워하는 까닭에' 모두

             

시인 임효림 스님 세 번째 시집 <그늘도 꽃그늘>(실천문학사)을 읽는 기쁨이 크다. 이 시집은 스님이 두 번째 시집 <꽃향기에 취하여>를 낸 뒤 4년 만에 내는 신작시집이다. 이 시집  해설을 쓴 이경철 문학평론가가 그랬듯이 이번 시집을 흐르는 '시의 물꼬'는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과 주고받는 그리움이다. 그것도 그냥 그리움이 아니라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위에 적어놓은 시에서도 '그리움'이란 이 세 글자가 차갑게 뜬 달을 아름답게 빚어내기도 하고, 산골 물소리를 통해 스님 마음을 마구 흔들다가 마침내 잠조차 이루지 못하게 만든다. 이 시는 시인 효림 스님이 지난 3일(금) 낮 4시쯤 글쓴이가 봉국사를 찾았을 때 <그늘도 꽃그늘>에서 직접 가려 뽑아 읽은 시여서 그런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이번 시집은 모두 4부에 50편이 이 세상과 부처님 세상을 이어주는 염주알처럼 동그란 눈빛을 보내고 있다. '속' '설악에 눈이 내리고' '소월 시를 차운하다' '강물이 흐른다' '도피자' '소주잔을 비운다' '바위도 흔들린다' '내 시의 자화상' '저 산같이 되려면' '다 깊이 뿌리내리고 살 일이다' '천산' 등이 그것.

 

시인 효림 스님은 지난 3일 만남에서 "산과 들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모두 외롭게 보이듯이 야생으로 살아온 우리들 모두는 고독한 존재"라며 '외롭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를 들춘다. 스님은 이 시에 나와 있듯이 "이 세상은 생각보다 추운 곳이다"라며 "'내 체온으로는 / 그대의 가슴을 덥히고 / 그대의 가슴으로는 / 내 마음을 달구'며 살아가야 한다"고 다독였다. 

 

사람들이 마음으로 마구 밟고 다니는 그 길이 되어 보았는가

 

a 그늘도 꽃그늘 이 시집  해설을 쓴 이경철 문학평론가가 그랬듯이 이번 시집을 흐르는 ‘시의 물꼬’는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과 주고받는 그리움이다. 그것도 그냥 그리움이 아니라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그늘도 꽃그늘 이 시집 해설을 쓴 이경철 문학평론가가 그랬듯이 이번 시집을 흐르는 ‘시의 물꼬’는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과 주고받는 그리움이다. 그것도 그냥 그리움이 아니라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 이종찬

▲ 그늘도 꽃그늘 이 시집 해설을 쓴 이경철 문학평론가가 그랬듯이 이번 시집을 흐르는 ‘시의 물꼬’는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과 주고받는 그리움이다. 그것도 그냥 그리움이 아니라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 이종찬

얼마나 많은 발길이

내 여린 가슴을 밟고 지나갔는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밟힌 가슴의 상처가 살아난다

 

오늘은 내가

발자국을 남기며 길을 간다 -'길을 가며' 몇 토막

 

이 시에서 말하는 길은 우리가 흔히 걸어 다니는 길(도로)이기도 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도'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깐, 부처와 예수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살펴보자. 부처는 마야부인이 친정으로 아기를 낳으러 가다가 태기를 느껴 룸비니 동산에 있는 사라수(沙羅樹) 아래에서 낳았다. 그녀는 석가를 낳은 뒤 7일 만에 이 세상을 떠났다.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와 약혼자인 목수 요셉이 호구조사 등록을 하러 간 다윗 고향인 베들레헴에 있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물론 예수가 태어난 장소나 예수 탄생을 둘러싼 이야기 등에 대해서는 서로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처와 예수는 다 같이 폭신한 침대가 아닌 길바닥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길' 하면 수행자와 '도'가 떠오르는 것도 아마 이 두 성인이 길에서 태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이번 시집에서 효림 스님은 길을 걸으며 스스로 '길'이 된다. 그 길 위를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다. 오죽 많이 밟혔으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 밟힌 가슴의 상처가 살아난다"고 했을까. 근데, 오늘은 스님이 그 길을 밟고 지나간다.

 

"나도 지나가고 / 다른 많은 시간이 지난간 뒤에 / 바람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밤이 찾아오면 / 내가 밟고 간 상처 때문에 / 이 길도 잠 못 이룰까"라고 중얼거리며. 이 시에서 길은 곧 도이고, 도가 곧 길이다. 그 도를 찾아 길을 밟고 지나가는 수행자 또한 스스로 길이 된다. 사람들이 수행자를 만나면 마음으로 마구 밟고 다니는 그 길 말이다.   

 

"그대의 배신은  내 마음을 더욱 거룩하게 한다"

 

불행하게도 천심을 알았으니

나는 아무래도 서러운 사람이다

 

먹구름이 민심을 덮고

역사가 요동을 칠 때면

내 눈에 끝없이 눈물이 흐른다 -'저항' 몇 토막

 

효림 스님은 스스로 서러운 사람이라고 여긴다. 왜? 세상이 어지러워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흐르기 때문이다. 스님은 "삶이 고달프고 힘든 것은 그렇다" 치지만 "짓밟히고 뭉개지고 / 배곯아 죽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스스로에게, 옆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물음표를 툭 던진다.

 

그렇다. 아무리 세월이 어려워도 까닭 없이 사람을 다치게 하면 되겠는가. 식량이 남아도는 데도 사람이 배가 고파 굶어죽게 만들면 되겠는가. 근데, 우리 역사는 그동안 그런 일들이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외침 때문에 혹은 폭정이나 군정 때문에. 지금은 군정이 아닌데도 양극화란 무시무시한 괴물이 사람들을 마구 짓밟고 있다. 마치 아수라장을 보는 것만 같다.

 

세상이 이렇게 어렵다 보니 "역심이라도 품어봐야지 / 누구 등에 칼이라도 꽂아야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자살, 성폭행, 납치, 테러, 살인 등도 모두 세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스님은 이 때문에, 이러한 천심을 알았기 때문에 서럽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아무래도 알아서 안 될 것을 알았나 보다"라며 서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편들은 이 시집 곳곳에 서러움처럼 박혀 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 어둠"(무명)이라거나 "우리는 무엇보다 시인이므로 / 이 사람 저 사람의 날카로운 말과 말의 사이 / 그 미묘한 사잇길로 / 아무 상처 입지 말고 지나가자"(사잇길), "그대의 배신은 / 내 마음을 더욱 거룩하게 합니다"(배신), "나는 하나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표적), "날마다 흘리는 눈물로도 / 씻겨지지 않는 피가 어디 있겠나" 등이 그러하다.

 

a 시인 임효림 스님 시인 효림 스님이 지난 3일(금) 낮 4시쯤 글쓴이가 봉국사를 찾았을 때 <그늘도 꽃그늘>에서 직접 가려 뽑은 시를 직접 읽고 있다

시인 임효림 스님 시인 효림 스님이 지난 3일(금) 낮 4시쯤 글쓴이가 봉국사를 찾았을 때 <그늘도 꽃그늘>에서 직접 가려 뽑은 시를 직접 읽고 있다 ⓒ 이종찬

▲ 시인 임효림 스님 시인 효림 스님이 지난 3일(금) 낮 4시쯤 글쓴이가 봉국사를 찾았을 때 <그늘도 꽃그늘>에서 직접 가려 뽑은 시를 직접 읽고 있다 ⓒ 이종찬

 

그리움으로 빚은 곱고 아름다운 시, 여광주(麗光酒)

 

햇볕에 그을린 저 바윗돌도

껍질을 벗기면 순결한 속살이 있다

 

그 속살에는 천둥소리도 들린다

천둥소리에는 도랑물도 흐른다 -'속' 모두

 

문학평론가 이경철은 '그리움으로 빚은 곱고 아름다운 시, 여광주'란 이름표를 단 해설에서 "언제인가 감동은 너무 커 먹먹한데 도저히 말로선 표현할 수 없는 시를 만났을 때 불현듯'시시주선(詩時酒禪)'이란 말이 찾아들었다"며 "언어도단(言語道斷), 말로써 드러낼 수 없는 묘오한 선(禪)적 지경과 그것을 기어코 언어로 표현해내야만 하는 시"라고 평했다. 

 

임효림 세 번째 시집 <그늘도 꽃그늘>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가장 얕은 곳에서 가장 깊은 곳까지, 마치 이승과 저승을 잇는 사무치는 그리움처럼 마음 깊숙이 사무친다. "높기는 그중에 푸른 하늘이 가장 높은데 / 그대의 노랫소리 가운데서도 / 높고 고운 소리는 하늘까지 가닿고"(가객)처럼 그렇게.

 

시인이자 스님(백담사 무금선원 교선사, 봉국사 주지)인 임효림은 1968년 출가를 한 뒤 전국 선원에서 참선수행을 했으며, 6월항쟁을 기점으로 재야시민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때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불교신문사 사장,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공동의장 등을 맡았다.

 

그 뒤 백담사 회주 오현 큰스님 가르침을 따라 시를 공부하다가 2002년 불교 잡지 <유심> 봄호에 '한 그루 나무올시다' 등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흔들리는 나무> <꽃향기에 취하여>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 <그 곳에 스님이 있었네>가 있다. 그밖에 <만해 한용운의 풀뿌리 이야기> <사십구재란 무엇인가> <행복으로 가는 기도> <자유로 가는 길 道> 등을 펴냈다. 지금은 성남 봉국사 주지와 백담사 무금선원(無今禪院) 교선사(敎禪師)를 맡고 있다. 전태일 문학상 특별상 받음.

덧붙이는 글 | <북포스>에도 보냅니다

2010.09.14 19:38ⓒ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북포스>에도 보냅니다

그늘도 꽃그늘

임효림 지음,
실천문학사, 2010


#시인 임효림 스님 #그늘도 꽃그늘 #실천문학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