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자인 그는 정치인을 믿지 않았다

[국제나그네의 독일아리랑] 전과자 마르코의 세상보기

등록 2010.10.03 14:49수정 2010.10.0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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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Marko)는 내가 다니는 회사의 6년차 베테랑 일꾼이며 정규직이다. 따라서 나이는 쉰을 훌쩍 넘었지만 이제 갓 1년이 돼 가는 비정규직인 나보다 임금도 '세고' 회사에서의 입지도 탄탄하다. 그는 현재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회사 근처에 위치한 교도소에서 장기간 복무를 했던 이른바 '전과자'다.


어느날 마르코는 나와 함께 퇴근을 하다가 정말,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그는 눈 앞에 빤히 보이는 교도소 높은 담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기 보이는 국립호텔에서 내가 장기간 무료로 투숙을 했지. 한 3~4년 했던가? 먹고, 자고, 운동하고 심심하면 담배도 마음껏 피고…. 하! 그때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해. 적어도 담배는 눈치 보지않고 실컷 피웠으니까."

그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징역살이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보니 도대체 담배를 제대로 피울 수 있는 장소가 없어서, 담배를 일도단마, 단칼에 딱 끊어버리고 싶지만…, 마음뿐이지 '사막배암'이 지나간 자욱처럼 질질 끌고 있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하소연 하는 것이었던 것.

'전과자 낙인'... 독일엔 그런 거 없다

a  "세상의 정치가는 모두 마피아지!"를 부르짖는 마르코(Marko)

"세상의 정치가는 모두 마피아지!"를 부르짖는 마르코(Marko) ⓒ 조영삼

요즘, 세상 어디를 가나 금연구역이 늘어감에 따라 마르코같은 '끽연가'들의 설 자리가 거의 없어지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니까.


마르코는 출소를 몇 달 앞두고 사회 적응훈련 차원에서 교도소 당국의 추천으로 교도소에서 지금의 회사로 출퇴근 하다가 능력을 인정받아 출소 후 정규직원으로 채용된 경우다. 물론 그때는 독일이 호경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겠지만.

독일에선 전과자 '낙인'이 찍혔다고 해서 취직하는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또 뱀눈을 하고 바라보거나 색안경을 끼고 나름대로의 주관적인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이들도 거의 없다.


본인들도 교도소 생활을 스스럼 없이 일반사람들에게 말하고 회사나 주변 사람들도 그냥 하나의 '잼 있는 이야기'로 들을 뿐이다. 내가 10년 동안 다녔던 전자회사에도 마르코처럼 교도소 출소를 앞두고 생산직으로 입사를 한 뒤 역시 능력을 인정받아 관리직으로 옮긴 크리스티앙이란 사람이 있었다.

'전과'가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눈이 부셔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또 다른 범죄를 모색하는 한국의 상황과는 많이 다른 듯했다. 물론 여기까지가 선진독일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외국인이나 구 동독인들의 문제로 들어가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 어쨌거나 숙명적으로 평생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국제 나그네'의 시각에서 보면 독일이란 나라는 요지경의 나라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

그 어느 정치인보다, 한국을 잘 알린 '차붐'

마르코는 자칭타칭 축구 마니아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 기간에는 휴가를 내고 멀리 떨어진 대도시까지 가서 축구장 만한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서 다른 마니아들과 함께 "도~이칠란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하얗게 밤을 샌 날이 부지기수였다고 목에 힘주며 나에게 자랑했으니까.

'지가 무슨 붉은악마라고'. 하긴 한국의 붉은악마가 지구촌 구석구석, 축구마니아들의 응원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음은 뿌듯한 일임에 틀림없다.

마르코는 서른 살을 간신히 넘긴 나이임에도 차범근을 안다. 아니 알고 있을 정도가 아니라 내 앞에서 '차붐'의 신화를 신나게 써 내려갈 정도다. 차범근이 독일에서 활약했을 당시 독일의 분데스리가는 자타가 인정했던 세계 최강이었다. 지금은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그나 영국의 리그 등에 밀려 가까스로 변방을 면한 상태에 처해 있지만.

마르코 왈, "차붐붐? 아, 대단했지. 분데스리가 290 몇 게임인가에 출전해서 99골을 넣었는디, 세 경기마다 한 골을 총알 탄 사나이처럼 적진 깊숙히 침투해서 총알 슛을 쏘아 대었는데 동양인 치곤 진짜 빨랐데이."

'하! 요 친구 보게나. 나이도 어린 녀석이 마치 지가 직접 본 것처럼 손짓 발짓 동작을 취해가면서 흥분의 도가니라니, 웃기는 녀석이지만 그닥 기분이 나쁘지는 않는데.'

하여튼 독일의 축구 마니아인 젊은 친구들까지 차범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독일사람들에게 차범근은 그냥 '동양축구의 전설' 그 자체다. 물론 축구에 한정된 경우겠지만, 차범근은 당시 '조용한 아침의 나라' 였던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국격'에 대해 밥 먹듯 이야기하는 그 어떤 정치가나 외교관보다 조금이나마 개선하는데 일조했다 할 것이다.

전과자 마르코는 정치인을 믿지 않았다

현재 독일정가의 정점에는 구 동독출신 물리학자였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있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동독출신에 아직 나이도 젊다. 그는 영구 집권할 것 같던 독일통일의 신화적 인물인 헬무트 콜 전 수상의 추천으로 정말 '별 볼일 없는' 변방의 동독출신 물리학자에서 일약 독일정가의 신델렐라로 급부상했다.

그는 정치적 대부인 콜 전 수상을 제치고 젊은 나이에 총리 자리에 올라 역시 장기 집권을 별로 의심하지 않았던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수상관저를 차지하며 현재까지 연임하고 있다. 지금 경제불황과 실업자 문제로 고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기가 밑바닥은 아닌 것 같다.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CDU)과 기독교사회당(CSU) 그리고 자유민주당(FDP)의 연합정권을 이끌면서 정치적 대부인 헬뮤트 콜을 넘어서는 장기집권을 꿈꾸고 있는 듯도 하다. 독일은 연임제한이 없다. 따라서 국가의 주인인 유권자의 신임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영구집권도 가능하다. 성숙된 민도와 시스템으로 인해 독재의 가능성이 배제된 까닭이다.

그런데 '내나라내땅'의 반쪽들인 남누리와 북누리의 현실은? 한쪽은 통일을 위해서는 친북과 친남, 연북과 연남을 해야만 한다고 아직도 믿고 있는, 갈 곳 잃은 이  '국제나그네' 조차도 설득할 수 없는 논리로 3대 세습을 준비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잃어버린 기득권 10년'을 되찾기 위해, 아니 영원한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국민을 농단하고 있으니, 아하! 슬프고 슬프도다.

우리의 소원, 통일 후에 북한출신 대통령? 북한출신 국무총리? 북한출신 장관? 독자 여러분! 상상이 가는지 묻고 싶소이다.

나는 전과자출신 마르코에게 물었다. "마르코, 니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누구냐."
그의 예기치 않은 촌철살인의 답변, "나인!  전혀 아니다. 나는 정치인을 믿지 않아. 세상의 정치가는 모두 마피아 집단이니까."
#들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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