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329) 고의적

― '고의적으로 사기를 친', '고의적인 과장', '반 고의적으로' 다듬기

등록 2010.10.20 15:30수정 2010.10.2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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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고의적으로 사기를 친

 

.. 한 나라로서 우리는 고의적으로 다른 관대한 나라에서 사기를 친 셈이고, 단지 그 나라가 부자라는 이유로 도둑질을 한 셈이니까요 ..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뜨레너드 위벌리/박중서 옮김, 인돌, 2005) 32쪽

 

'관대(寬大)한'은 '너그러운'으로 다듬고, "사기(詐欺)를 친"은 "속인"이나 "속아넘긴"으로 다듬습니다. '단지(但只)'는 '다만'이나 '그저'로 손보고,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손봅니다. 그래도 "사기를 친 것이고"나 "도둑질을 한 것이니까요"라 하지 않고 '셈'을 넣은 대목은 더없이 반갑습니다. 이와 같이 잘 추스른 말투가 곱게 뿌리를 내리면 좋겠습니다.

 

 ┌ 고의적(故意的) : 일부러 하는

 │   - 고의적 실수 / 고의적으로 부딪치다 / 그 교통사고는 고의적인 것이었다 /

 │     그는 고의적인 반칙으로 경기장에서 퇴장당했다

 ├ 고의(故意) : 일부러 하는 생각이나 태도

 │   - 너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고의가 아니었다

 │

 ├ 우리는 고의적으로 사기를 친 셈이고

 │→ 우리는 일부러 사기를 친 셈이고

 │→ 우리는 미리 짜고서 속인 셈이고

 │→ 우리는 짐짓 속여넘긴 셈이고

 │→ 우리는 마지못해 거짓말을 한 셈이고

 └ …

 

좋은 일을 일부러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러'라 하면 어쩐지 좋지 않은 일이나 못된 일을 하는 자리가 먼저 떠오릅니다. "너 일부러 그랬지?" 하는 말투는 "너 나를 괴롭히려고 마음먹고 한 짓이지?"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웃음기 어린 말씨로 "너 일부러 그랬지?" 하고 읊을 때에는 "너 내가 싫어할까 봐 넌지시 도와주었구나!" 같은 느낌이거나 "너 나를 놀래키려고 몰래 그렇게 했구나!" 같은 느낌입니다.

 

우리 둘레에서 '고의적'이라고 하는 '-的'붙이 말투가 나타나는 자리 가운데 운동경기가 꽤 많습니다. 요사이는 '테크니컬 파울'이라고도 하고 '비신사적 행위'라고도 하는데, 이와 더불어 '고의적인 반칙'이라는 말투를 함께 씁니다. 언젠가 "저런 괘씸한 반칙을 하면 안 되지요"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축구 경기를 들려주던 사회자가 '고의적'으로 저지른 반칙 하나를 놓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하다가 살며시 읊은 말인데, 이 말을 들으며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참말로 '고의적' 반칙이란 일부러 저지른 반칙이요, 일부러 저지른 반칙이라 할 때에는 더없이 괘씸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고의적인 반칙은 '괘씸한' 반칙인 한편, '못된' 반칙이요 '궂은' 반칙이며 '나쁜' 반칙입니다.

 

 ┌ 고의적 실수 → 일부러 저지른 잘못 / 알고 한 잘못

 ├ 고의적으로 부딪치다 → 일부러 부딪치다 / 억지로 부딪치다

 ├ 그 사고는 고의적이었다 → 그 사고는 일부러 일으켰다 / 그 사고는 괘씸했다

 └ 고의적인 반칙으로 → 일부러 저지른 반칙으로 / 못된 반칙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부러 저지른 잘못이란 '속으로 다 알면서' 저지른 잘못입니다. 좋지 못한 줄 모른 채 저지른 잘못이 아닙니다. 좋지 못한 줄 알면서 저지른 잘못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괘씸하다고 할 터이니, "뻔히 알면서 저지른 잘못"이나 "버젓이 알면서 한 잘못"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부딪칠 까닭이 없는데 부딪쳤으니 '일부러' 부딪쳤습니다. '억지로' 부딪친 셈입니다. '괜히' 부딪친 노릇입니다. '대놓고' 부딪친 모습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저지르는 잘못이란 잘못인 줄 모르고 저지른다기보다 어엿이 알면서 저지르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람들한테 저지르는 괘씸한 짓이든, 우리 말과 글을 엉터리로 망가뜨리는 짓이든, 우리는 다 알면서 아무렇게나 저지르는 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ㄴ. 고의적인 과장은

 

.. 이러한 무익하고 고의적인 과장은 차에서 하나의 邪道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다도와 일본의 미>(야나기 무네요시/김순희, 소화, 1996) 77쪽

 

'무익(無益)하고'는 '쓸데없고'나 '도움이 안 되고'로 손봅니다. '과장(誇張)'은 '부풀리기'나 '뻥튀기'나 '겉치레'로 고쳐쓰고, "하나의 邪道"는 "잘못된 길"이나 "그릇된 길"이나 "엉뚱한 길"이나 "틀린 길"이나 "빗나간 길"이나 "엇나간 길"로 고쳐써 봅니다. "말할 필요(必要)도 없다"는 "말할 나위도 없다"나 "말할 값어치도 없다"로 다듬어 줍니다.

 

 ┌ 이러한 무익하고 고의적인 과장은

 │

 │→ 이러한 값없는 부풀리기는

 │→ 이러한 쓸데없는 겉치레는

 │→ 이렇게 부질없고 엉뚱한 뽐내기는

 │→ 이처럼 쓸데없이 애써 우쭐거리는 짓은

 └ …

 

이 보기글에서 '고의적'이라는 대목은 군더더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의적인'이 받는 뒷말 '과장'이라는 낱말을 생각해 보면, '과장'이란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있는 모습보다 커 보이게 하려고 억지를 쓰는 일입니다. 억지를 쓰는 일이란 '일부러' 하거나 '애써서' 하는 움직임입니다. '자연스러운 부풀리기(과장)'도 있을 수 있겠으나, 부풀리기가 되는 일은 '처음부터 억지로 애써 하는' 느낌을 담기 마련입니다.

 

꼭 '고의적' 느낌이 나는 낱말 하나를 넣고프다면 "쓸데없이 애써 부풀리는"처럼 '애써'를 넣으면 됩니다. '굳이'나 '구태여'를 넣을 수 있고, '구질구질하게'나 '구지레하게' 같은 낱말을 넣어도 괜찮습니다.

 

무언가 잘난 척을 하거나 괜히 있어 보이려 하는 매무새를 가리키고 있는 만큼, '엉뚱한'이나 '볼썽사나운'을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말 그대로 '괜히 꾸민'이나 '억지로 꾸민'을 넣을 수 있습니다.

 

 

ㄷ. 반 고의적으로

 

.. 너무 고민한 나머지 도중에 해외로 도피하는 학생도 나왔고, 나처럼 반 고의적으로 탈락하는 학생도 생겼다 ..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사기사와 메구무/최원호 옮김, 자유포럼, 1998) 153쪽

 

'고민(苦悶)한'은 '근심한'이나 '걱정한'으로 다듬고, '도중(途中)에'는 '배우다가'나 '한창 배우다가'나 '사이에'나 '얼마 못 버티고'나 '얼마 안 가'로 다듬으며, '도피(逃避)하는'은 '내빼는'이나 '나가 버리는'으로 다듬어 줍니다. '해외(海外)로'는 '나라밖으로'나 '다른 나라로'로 손봅니다. '반(半)'은 '거의'나 '얼추'로 손질하고, '탈락(脫落)하는'은 '떨어지는'이나 '두 손 드는'이나 '그만두는'이나 '떨어져 나가는'으로 손질해 봅니다.

 

 ┌ 반 고의적으로 탈락하는

 │

 │→ 거의 일부러 떨어지는

 │→ 마지못해 떨어져 나가는

 │→ 조용히 나뒹굴어 버리는

 │→ 슬며시 두 손 들어 버리는

 └ …

 

'고의'라고 하는 한자말을 쓰기 때문에, 이 낱말에 '-的'을 붙인 '고의적'을 함께 쓰고야 맙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일부러'나 '부러'나 '짐짓'이나 '괜히' 같은 우리 말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으면, 이러한 낱말 뒤에 '-的'을 붙일 일이란 없습니다.

 

"반 고의로 탈락하는"이라고 적바림한 글과 "반 고의적으로 탈락하는"이라고 적바림한 글을 맞대 놓고 헤아려 봅니다. 두 글은 다르다 할까요. 두 글에서는 무엇이 다르다 할는지요.

 

이 보기글을 처음 우리 글로 적바림하면서 "반 고의로 탈락하는"이라 했다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는지 궁금합니다. '-적'을 달아 놓지 않았으니 어설프다고 느꼈을는지요. 그냥 그저 그대로 부드러이 읽고 지나갔을는지요.

 

 ┌ 나처럼 너무 힘들어 그냥 스스로 떨어진 학생도

 ├ 나처럼 거의 스스로 두 손 들고 만 학생도

 ├ 나처럼 스스로 그만두고야 만 학생도

 ├ 나처럼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손을 뗀 학생도

 └ …

 

일부러 어렵게 쓸 까닭이 없는 글입니다. 괜히 얄궂은 껍데기를 씌울 까닭이 없는 말입니다. 짐짓 군더더기를 붙일 까닭이 없는 글입니다. 억지로 짜맞추거나 어거지로 비틀어 놓을 까닭이 없는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 적바림할 글입니다. 수수하게 주고받을 말입니다. 꾸밈없이 쓸 글입니다. 넉넉하고 따뜻하며 싱그럽게 나누면 좋을 말입니다. 좋은 말이 되도록 좋은 넋을 북돋우며 좋은 넋을 사랑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10.20 15:30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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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국어순화 #한글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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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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