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 본사 외벽에서 한 관계자가 오는 11월 11일 개막하는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알리기 위해 대형 현수막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유성호
이번 경주회담으로 중국의 위안화 절상 속도가 가팔라질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중국은 이번 경주 합의문을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이나 '위안화 절상폭 확대'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위안화 절상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서두를 일은 아니라는 기존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경주회의 하루 전인 22일 달러당 6.6759위안이던 위안/달러 환율(기준환율)은 경주회의 이후 29일 현재 달러당 6.6908위안을 기록 중이다. 오히려 위안화 가치가 소폭 떨어진 모습이다. 물론 이후 위안화 가치의 절상 흐름은 이어지겠지만, 위와 같은 모습은 중국이 G20회담의 영향으로 위안화 가치를 조절하고 있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국민일보>가 경주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0%는 내년까지 위안화 절상 폭이 5% 미만에 그칠 것으로 응답했다(국민일보, 2010.10.25). 미국은 현재 20~40%의 위안화 절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예상되는 위안화 절상속도는 상당히 더딘 수준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번 경주회담을 계기로 중국이 위안화 문제에 있어 기존의 입장과 다른 새로운 방향의 정책을 펴게 될 것으로 평가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환율문제에 있어 정부에서는 기존의 '시장 지향적(market oriented)'이라는 표현(6월 캐나다 토론토 정상회의 선언문에서 사용)이 이번 경주회의 합의문에서 '시장 결정적(market determined)'으로 바뀐 것을 엄청 진전된 표현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고정 환율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시장 지향적'과 '시장 결정적'이라는 문구 차이가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결국 중국은 자국의 경제현황과 경제가 감수할 수 있는 속도로 위안화를 절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추가 시장개입 카드 만지작거리는 일본 23일 경주회담이 있은 이후에도 엔화의 가치는 계속 오르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23일 경주회의 이후 81엔선이 붕괴되며 25일 80.40엔(동경 외환시장 기준)까지 급등해 15년 반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 후 엔화 강세기조는 지속되어 29일 18시 현재 달러당 80.77엔을 기록 중이다. 여전히 80엔 선을 위협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가 이루어지면 80엔선 역시 위태롭다. 엔/달러 환율의 사상 최저치는 지난 1995년 4월 기록한 79.75엔이었다. 사상 최저치 경신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엔화 가치가 계속 오르는 한 일본으로서는 외환시장에 개입할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지켜보고만 있긴 힘들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상은 23일 경주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엔고가 정착·장기화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필요할 때에는 단호한 조치를 취한다고 하는 일본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고 언급했다(연합뉴스, 2010.10.24). 그 이후에도 노다 재무상은 26일 의회에 출석해 필요할 경우 시장에서 단호하게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며 외환시장 개입 의지를 드러냈고, 28일에도 필요하다면 엔 강세 억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기존의 발언을 재확인 했다.
또한 일본은 엔고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의 수출입은행과 유사한 국제협력은행(JBIC)의 외화 융자를 1조5000억 엔만큼 더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융자 폭을 늘려놓으면 비상시에 동원할 외화 융자금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달러화를 추가적으로 사들일 수 있게 되어 상대적으로 엔화가치를 낮출 수 있다. 직접 외환시장에 개입하려니 눈치가 보이자 국책은행을 통한 간접적인 방도를 찾은 것이다. 일본은 자국경제가 어려워지면 질수록 이와 같은 다양한 간접적인 방도를 찾으려 할 것이다.
미국의 약달러 기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일본이 가만히 앉아 환율 변동을 지켜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수출로 경제회복의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들 미국의 2차 대규모 양적완화 등에 대한 여타 국가들의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들도 잦아들기 보다는 더 확대되어가는 모양새다. 캐나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많은 나라들이 자국통화 강세를 우려하며 필요시 외환시장 개입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26일(현지시각) 마크 카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필요시 외환시장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며 외환시장 개입 의사를 내비쳤다. 또한 그는 캐나다달러가 지속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러한 통화강세는 캐나다 경제성장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27일 싱가포르 중앙은행인 싱가포르통화청(MAS)은 해외 자금 유입으로 아시아국가들이 위험에 직면했다며 싱가포르달러가 강세를 나타낼 때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26일 제티 아크타르 아지즈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총재도 링깃화가 급격한 변동성을 보일 경우 시장에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고,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27일 필리핀 중앙은행이 페소화 가치를 관리하기 위해 특정 범위 내에서 시장 개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라빈 고단 남아프리카공화국 재무장관은 자국 수출업체와 노동조합 등의 압력이 커지자 외환보유액 증액 등을 통해 란드화 강세를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이상 '연합인포맥스', '한겨레' 참조). 금융거래세를 2%에서 6%까지 인상하고, 경주회의에 불참하기도 한 브라질 역시 자국통화 방어기조는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환율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위와 같은 모습들은 아무리 좋은 합의문을 만들어도 각국 경제의 기초여건(펀더멘털)이 개선되지 않는 한 각 국가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미국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져있다. 미국은 각종 경기부양 수단을 동원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에 따라 '약달러'를 통한 수출확대정책으로 돌파구를 찾아보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도 상당기간 '미국 달러화 약세-신흥국 통화 강세' 구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국 통화를 방어하기 위한 각국의 움직임들도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환율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G20 회담의 성과를 포장한답시고 환율전쟁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을 내놓다가는 커다란 실책을 범할 수 있다. 당장에 각국들이 만족할 만한 합의를 도출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현 시점에서 말 그대로 환율전쟁을 막기 위한 공조의 노력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합의문 작성을 위한 합의는 더 큰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합의문을 자국의 이익에 맞게 해석하거나, 이행하지 않으면 불신의 골이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덧붙여 환율전쟁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노력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환율전쟁은 경기침체, 규제 장치 없는 자본시장, 달러체제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난해한 문제다. 장기적으로 자본시장 규제, 달러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통화체제의 논의가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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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전쟁 봉합?... 이제부터가 진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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