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의 얼굴 화장시킨 연쇄살인범, 4년 전 그인가

[서평] 마이클 코넬리 <콘크리트 블론드>

등록 2010.12.30 17:55수정 2010.12.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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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블론드> 겉표지 ⓒ 랜덤하우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 보슈 형사는 LA 할리우드 경찰서에서 근무 중이다. 그는 원래 LA 경찰청 강력반의 엘리트 형사였다. 하지만 연쇄살인범을 쫓던 도중에 무장하지 않은 범인을 총으로 쏴서 죽이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 연쇄살인범은 '인형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젊은 여자들만 골라서 죽인 다음에 희생자들이 가지고 있던 화장품으로 그들의 얼굴에 진하게 화장을 했기 때문이다. 마치 인형처럼.


해리는 인형사를 사살하고 사건을 종결시켰지만, 비무장범을 죽였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할리우드 경찰서로 좌천된다. 해리는 원래 아웃사이더의 성향이 강했지만 이 일로 인해서 더욱 경찰조직을 불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인형사가 4년 후에 다시 돌아왔다. 당시 자신을 추적했던 해리 보슈에게 보란 듯이 쪽지를 보내면서 컴백한 것이다. 그 쪽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멋진 보슈, 총알이 빗나가 안됐어. 여러 해 지났지만 난 아직 게임 중이야.'

해리 보슈의 악몽이었던 연쇄살인범 '인형사'

4년 전에 연쇄살인을 할 때도 인형사는 이런 쪽지를 보내오곤 했었다. 해리는 위의 쪽지를 보는 순간 인형사의 부활을 확신한다. 그렇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인형사는 분명히 현장에서 즉사했다. 해리가 쏜 총알이 심장을 관통하면서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인형사가 보낸 쪽지에는 최근에 자신이 죽인 여자가 어디에 묻혀 있으니 가보라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경찰이 그 장소에 가서 착암기로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들어가자 그곳에서 젊은 금발 여성의 시체가 나온다. 범인은 여자를 죽인 후에 땅에 묻고 그 위를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범행대상이나 방법이 과거 인형사의 수법과 아주 유사하다. 피해자의 얼굴에 화장을 해두었고 발톱에는 십자가를 그려놓았다. 피해자의 핸드백 가죽끈으로 목을 졸라서 죽인 것도 똑같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피해자를 땅에 묻어두었다는 점이다. 과거 인형사는 보란 듯이 아무 장소에나 시체를 유기했었다. 형사들은 신원미상의 이 시체를 '콘크리트 블론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해리는 이 사건 수사에 뛰어들지만 맘 편하게 수사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4년 전에 죽은 인형사의 미망인이 해리 보슈를 연방 지방법원에 고소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사건의 심리가 시작되던 그날 인형사의 쪽지가 날아오고 콘크리트에 파묻힌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설상가상으로 해리의 변호인은 법대를 졸업한지 5년도 되지 않은 풋내기다. 반면에 원고 측의 변호인은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이다. 애송이가 능구렁이를 상대하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사소송이기 때문에 여기서 패하더라도 해리는 별로 잃을 것이 없다는 점이다. 원고 측이 승소할 경우에 그쪽으로 가는 보상금은 국가에서 지불한다. 해리가 경찰서에서 잘리는 것도 아니다. 대신 해리는 '살인자'라는 오명을 갖게 된다.

원고 측이 패소할 경우에는 당시 해리의 행동이 정당방위였다고 인정받게 된다. 경찰청의 형사들은 모두 해리의 편이다. 문제는 법정에서 어떻게 12명의 배심원들을 설득시키느냐다. 해리 앞에 놓인 일은 두 가지. 재판에서 이기고 동시에 다시 나타난 연쇄살인범을 추적해서 검거해야 한다.

해리는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까

'해리 보슈 시리즈'의 장점 중 하나는 빠른 전개다. 사건의 시작에서 종결까지 채 열흘이 걸리지 않는다. 세번째 작품인 <콘크리트 블론드>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 법정에서 사건을 심리하는 장면과 해리의 수사장면이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그래서 더욱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작품 속의 다른 형사들이나 독자들도 사건의 빠른 해결을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연쇄살인범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이들은 기껏 쪽지까지 보내고 폼 잡으면서 살인행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할 때 붙잡히고 만다. 살인범의 입장을 동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해리가 잡아들이는 살인범은 꽤 운이 없는 셈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정신분석학자는 이런 살인범을 가리켜서 '검은 심장'이라고 표현한다. 검은 심장은 혼자서 뛰지 않는다.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가 그 뒤를 잇는다. 하지만 해리 보슈처럼 유능한 형사가 있다면 검은 심장도 쉽게 나타나지는 못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콘크리트 블론드> 마이클 코넬리 지음 / 이창식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덧붙이는 글 <콘크리트 블론드> 마이클 코넬리 지음 / 이창식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콘크리트 블론드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2015


#콘크리트 블론드 #마이클 코넬리 #해리 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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