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더블' 될 때, 외로움이 사라진다

[서평] 박민규 소설집 <더블>

등록 2011.02.08 10:05수정 2011.02.0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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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표지 (전2권) ⓒ 창비

<더블> 표지 (전2권) ⓒ 창비

박민규의 <더블>은 쓸쓸하다. 18편의 단편소설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가슴 시린 쓸쓸함으로 무장했다. 외로움과 고독함이 더해진 건 어떤가. 소설 속 누군가의 고백,  "이 삶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이 세계가 누구의 것도 아니란 걸, 나는 그저 떠돌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사실을 나는 혼자 느끼고 또 느낀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를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라는 소리가 소설집 곳곳에서 자주 들려 오는 것 같다.

 

소설의 내용과 작가의 삶이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모습에서 어떤 아이러니함이 느껴진다. 한겨레문학상과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박민규는 이후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명실공이 한국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문단의 평가뿐만 아니라 대중의 반응도 뜨거웠다. <카스테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은 그해를 장식했던 주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대중이 박민규에게 환호를 보냈던 건 마이너들을 위한 그만의 특별한 위로 때문이었다. 냉장고 속의 카스테라와 문득 나타나 요쿠르트를 전해주는 요쿠르트 아줌마의 이야기는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이 사회가 불러주지 않아 우울해하던 사람들을 엉뚱하면서도 유쾌하게 위로해줬고 세상에서 가장 추한 여성을 사랑한 순진한 남자의 이야기는 외모지상주의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뜻밖의 순정과 로맨스를 퍼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소설집 <더블>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다르다. 뼛속까지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아주 적나라하게 말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말 모르겠다... 돌아보니 나쁜 꿈 같고... 같지만, 잠을 깨보면 언제나 먹고살아야 할 벌건 하루가 있었다. 낮은 길고, 일은 많고... 밤은 짧고, 꿈은 없는..."이라는 소설 속 누군가의 넋두리가 알려주듯 <더블>의 '그들'은 지치고 지쳤다. 바람이라도 불면 금세 날아가 버릴 것처럼 위태롭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도 지치게 만든 걸까. "가난보다 큰 질병은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가난'이 그렇게도 그들을 이리 슬프게 만든 걸까. 소설 속 그들은 열심히 살며 꿈을 꾸었다. 대단한 꿈도 아니고 허무맹랑한 꿈을 꾼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평범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불행하다. 아무리 노가다를 하더라도 돈은 모이지 않는다. 사랑마저도 돈이 없으니 떠나간다. 혹은 돈 있는 존재에게 농락하다기도 하다. 돌아보면 정말 "나쁜 꿈" 같은 일들만 벌어지고 있다.

 

더 허무한 건 그 나쁜 꿈을 지나온 다음이다. 꿈을 건너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건 무엇일까. 결코, 즐거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허무해지는 지도 모르겠다. 많은 한국인들이 경험했고 앞으로 경험할 법한 것들, 예컨대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 가서 즐겁다고 믿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나 대학 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 얻어서 즐겁게 산다고 믿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과 같다. <더블>에서는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 너머의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억울한지도 모르겠다. 단지 소설 속의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소설을 지켜보는 사람도 그렇게 느낄 것 같다. 왜냐하면 <더블>은 소설의 가면을 쓴, 어쩌면 지극히 사실적인 '현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실은 누구라도,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오랫동안 맴도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억울하고, 갈 곳 없다는 말이,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의 많은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기에 그런 것이리라.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심정을 나누고자 하는 박민규라는 작가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순살코기 같은 후회로 가득 찬 통조림" 같은 것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의 곁에 신이 없다면... 누군가의 곁에 인간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겠지"라는 말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박민규의 <더블>이 있으니 다행스러운 것이 아닐까.

 

결코 신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인간에 가까운, 인간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소설집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해도 되지 아닐까. 혼자, 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소중한 신호처럼 말이다. 비록 그것이 "입속에 고여 있던 흰 우유 한 모금이 순간 딸기우유로 변하는 느낌"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창비, 2010


#박민규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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