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아지매! 카메라 좀 그만 보소

시금치 캐는 아주머니, 봄을 이야기하다

등록 2011.02.09 17:09수정 2011.02.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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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지수면에 있는 동지마을을 지나다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히 여기니 동행했던 마을 분이 시금치를 캐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수면은 남강이 S자 곡선을 그리며 지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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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지수면의 시금치 캐는 광경 ⓒ 김종길


강 건너는 대곡면이고 강 양쪽으로 모래톱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지금이야 이곳이 비옥한 농토로 부농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홍수가 나면 물이 잠기던 곳이었지요. 남강댐이 건설되고 긴 제방이 강을 따라 높게 쌓아진 후 비옥한 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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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캐는 아주머니들 ⓒ 김종길


그럼에도 강 주변에는 아직도 모래밭이 더러 있습니다. 흙을 덮고 일부 개간을 하여 지금은 각종 작물을 키우는 곳이 되었지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적어도 땅 아래 1m 정도는 모래층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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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캐는 아주머니들 ⓒ 김종길


강변 토질 특성으로 인해 시금치와 우엉이 잘 된다고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시금치 재배를 하고 있는 땅 바로 아래에 우엉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뿌리를 얕게 내리는 시금치와 땅 아래로 파고드는 우엉이 환상적인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지요. 한때 골칫거리였던 땅이 이제는 농민들에게 더할 수 없는 땅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곳의 우엉은 대형마트에 납품까지 한다고 하니 어깨춤이 덩실덩실 나올 법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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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캐는 아주머니들 ⓒ 김종길


동지마을과 안계마을까지 한 바퀴 둘러보고 난 후 사진을 찍을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몇 군데를 둘러보았지만 처음에 보았던 곳이 제격이었습니다.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시금치를 캐고 있는 아주머니들에게 다가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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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캐는 아주머니들 ⓒ 김종길


"무슨 촬영 나왔는가베."

아주머니들이 수군거립니다.


"아, 예 책자 촬영 때문에 나왔습니다.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아따, 그라모 모자도 벗고 얼굴도 닦아야 하는 디."

아주머니들은 머리를 손질하고 옷매무새를 다듬느라 부산을 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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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캐는 아주머니들 ⓒ 김종길


"초상권이 있는 디 돈을 주는 감요?"

농조가 섞인 말이 걸쭉합니다.

"허, 어쩝니까? 그냥 찍으시면 안 될까요?"

이쯤 되면 콧소리로 애걸을 합니다.

"예, 까짓것 그러지요 뭐."
"대신 사진 보내드릴께요."

단양 구인사의 신도라는 분들은 부산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밭떼기로 시금치를 사서 절에 시주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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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계속 주시하는 한 아주머니 ⓒ 김종길


어떻게 자세를 잡아야 하는지, 카메라를 봐야 하는지 등 질문이 폭주합니다.

"하시던 대로 자연스럽게 일을 하시면 됩니다. 카메라 의식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앞의 두 아주머니가 시금치를 캐기 시작하자 뒷줄의 아주머니들도 하나둘 자리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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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캐는 아주머니들 ⓒ 김종길


한참 찍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계속 카메라를 의식합니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흘깃흘깃 보며 눈치를 살피더니 아예 일어서 버립니다. 결국 한 소리합니다.

"아따 아지매 카메라 좀 그만 보소."

주위의 소리에 아주머니도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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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캐는 아주머니들 ⓒ 김종길


30여 분 정도 촬영을 하고 난 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디서 나왔소? 사진은 무엇에 쓴다요?"
"아마 인터넷에도 나오고 책에도 나올 겁니다."

깊은 인사를 하고 들판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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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에서 본 남강 지수면 옆구리를 유유히 흐르는 남강 ⓒ 김종길


아직은 겨울이지만 시금치 들판에는 봄기운이 조금씩 느껴집니다. 유독 매서운 올 겨울도 시금치 캐는 아낙들 가랑이 사이로 슬금슬금 빠져나갔습니다. 봄이 오기는 오나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금치 #지수면 #남강 #우엉 #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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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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