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내게 상사가 한 말 "당신과 일하고 싶지 않다"

[여성의 날 특집 ②] 2011년을 살아가는 그녀들의 이야기, 허스토리텔링

등록 2011.03.08 08:54수정 2011.03.1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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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많은 이에게 봄은 새로움과 설렘이겠지만
이번 봄은 나에게 유독 특별하다.

2003년에 결혼해서 바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하며 정신없이 보내온 8년, 그 딸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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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결혼, 어느덧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하며 정신없이 보내온 8년의 시간 ⓒ 한국여성단체연합


결혼하고 자의든 타의든 나는 많이 달라졌다

계획과 달리 바로 아이가 생겼고 출퇴근 시간만 4시간이 걸렸던 직장의 상사는 임신으로 힘들어 하는 나에게 "당신과는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임신 8개월째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낳고 백 일부터는 다시 이 일 저 일 기웃거렸다. 아이 얼굴보다는 컴퓨터 모니터를 많이 보고 아이 옹알이보다는 통화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렇게 뒤돌아보니 사회에서 나에게 부여한 이름은 슈퍼우먼 워킹맘이었고 우리 아이는 어린이 집 5년 동안 제일 늦게 하원하는 아이가 되었다. 내가 하원 시간보다 늦는 날이면 선생님들이 알아서 딸과 저녁 데이트 시간을 보낼 정도로 아이도 나름 어린이집에서 베테랑 원아가 되어 있었다.

작년엔 뉴스에서 로또당첨이라고 말하는 병설유치원 2곳에나 당첨이 되었지만 아무리 늦어도 오후 4시 이전에 모든 활동이 끝난다는 수업시간표에 워킹맘인 나는 한숨만 쉬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리엔테이션도 가고 몇 번을 고민하며 방법을 찾고 망설이다가 결국 로또당첨을 포기한 일도 있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혼자 바빠?
왜 그렇게 바빠?
뭐 하는데 그렇게 바빠?

이렇게 바쁜 나는 현재 여성단체 활동가이다. 4년 전 아주 우연히 그러나 운명적으로 나에게 신(新)세계가 열렸다.


나는 2007년부터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성연합은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정책활동(직장 내 성희롱 금지, 산전 후 휴가 90일 확대, 성폭력∙가정폭력방지법 제정, 호주제 폐지, 아동보육료 지원, 여성국회의원수 확대 등)을 주로 하는 여성운동을 하는 여성단체다.

여성운동. 아직 나에게도 가끔은 낯선 이 네 마디 말. 그러나 이 짧은 네 마디 말이 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고 여성들의 삶을 얼마만큼 성장시켰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웃을 수 있게 되었는지 그건,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나도 안 지 얼마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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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 그리고 3.8 세계여성의날 여성운동 이 짧은 네 마디가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그 변화를, 함께 경험하고 싶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그 소중한 경험 중 하나가 바로 '3.8 세계여성의 날'이다. 알고 계셨는지? 평소 기념일을 잘 챙기는 나도 여성단체에서 일하기까지는 이런 날이 있는지도 몰랐다.

100여 년 전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는 행진에서 시작된 여성의 날의 존재, 왜 여성의 날이 시작되었고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이 날을 어떻게 기념하고 있는지를 알았을 때 내 기분은 신선을 넘어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그리고 '나는 왜 몰랐지?' '내 주변 사람들은 왜 모르지?' 하는 안타까움도 동시에 들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왜 분노하지 않을까? 왜 바꾸려 하지 않을까?

그때부터 난 자칭 여성의 날 홍보대사 노릇을 하였고 누구보다 열심히 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를 준비했다. 그래서일까? 내 주변 사람들은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구나' 정도까지는 알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또다른 고민이 들었다.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야. 그래, 그런데 그래서?'  한마디로 "So What?"     

마침 올해 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행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변화' '실험' 이 고민의 키워드로 나왔다. 보다 대중과 함께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래, 바로 내 고민이다! 여성의 날이라는 것 외에 이 날에 어떤 메시지를 나눌 수 있을까? 여성의 날은 여성단체만의 기념일이 아니라 엄마 아내 여자친구 딸 자매 직장동료, 우리의 날임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 끝에 올해는 회원단체들과 함께 2011년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들기로 하였다. 회원단체가 운동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 이름하여, '허스토리텔링!' 2011년에도 아직 끝나지 않는 그녀들의 이야기다.

최근 언론에서는 홍익대 청소노동자 문제나 기륭전자사태 등 우리 사회의 여성 차별 문제를 잘 다루지 않고 있다. 허스토리텔링은 사회가 주목하지 않는 아내폭력, 장애여성의 모성과 건강권, 식당여성노동자, 워킹맘, 비혼모, 이주여성 인권 폭력문제 등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직접 트위터나 블로그에 올려 스스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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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텔링 - 김대리, 임신 축하해!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직장문화 바꾸기 캠페인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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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텔링 - 장애여성의 모성권 또 다른 나 여성장애인, 차별을 말하다 ⓒ 한국여성장애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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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텔링 - 가정폭력은 범죄입니다 가정폭력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 한국여성의전화



이 글을 읽고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시는지?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그런데, 막상 이렇게 이야기를 모아놓고 보아도 답이 없었다. 휴우, 이 이야기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선 현상이 일어난 원인, 사회에 미치는 영향,  대안을 제시하라고 하는데… 속상하고 아픈 마음이 앞서니… 그만큼 답답한 것이 여성의 현실이겠지.

100년 전 3월 8일, 생존권을 이야기하던 미국의 여성노동자를 기억하는가? 100년이 지난 한국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2011년 제23회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서울 YMCA는 8년여간의 기나긴 투쟁 끝에 드디어 참정권을 인정받았다. 분석적으로, 통계로 증명하지 않아도 여성의 삶이 고단함은 허스토리텔링을 읽는 여러분 모두 공감하리라.

여성운동을 한다고 하지만
나는
의외로(?)
평범한 아줌마다.

술 먹고 늦게 집에 오는 남편에게 쫑알쫑알 화도 내고 아이의 학교생활, 친구생활이 어떨까 전전긍긍하는 서른 다섯 아줌마다.

나를 변화시킨 여성운동이 어렵거나 까칠하지 않게 느껴지기를 바라며 더 많은 사람이 여성운동의 소중한 가치인 평등, 평화, 나눔, 소통을 공유하고 함께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진 워킹맘, 여성운동가, 초보 학부모의 3월 8일이 이렇게 간다. 2011년을 살아가는 그녀들의 이야기 허스토리텔링은 사실 나의 이야기, 나의 빵(생존권)과 장미(인권)이다.
#여성의날 #허스토리텔링 #여성연합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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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창립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연대를 이뤄나가는 전국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로 구성된 여성단체들의 연합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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