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단강'에서 만난 '조선족양로원' 원장

'2011 겨울 만주기행'을 다녀와서(16)

등록 2011.03.15 12:02수정 2011.03.15 12:02
0
원고료로 응원
처음 방문하는 조선족 집(양로원)이어서 서울로 수학여행 가는 초등학생처럼 가슴이 설렜다. 호텔 1층으로 내려가니까 박영희 시인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늦게 내려온 일행이 박 시인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들도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모두 모이니까 다섯 명. 시곗바늘은 오후 8시 30분을 가리켰다. 너무 늦지 않았느냐고 묻자 박 시인은 "만주에 올 때마다 도움을 받는 분인데 우리가 늦어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 양로원은 호텔에서 가까운 목단강시(牡丹江市) 장안가(長安街)에 있었다.


a  중국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빙당고’ 손수레. ‘빙당고’는 딸기나 앵두 등 작은 과일 모양의 얼음과자를 말합니다.

중국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빙당고’ 손수레. ‘빙당고’는 딸기나 앵두 등 작은 과일 모양의 얼음과자를 말합니다. ⓒ 조종안


택시를 타고 가는데 심하게 덜컹거렸다. 좌석 쿠션이 딱딱해서 70년대 산 '포니'에 승차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기사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목단강시 밤거리는 인적이 뜸했다. 어쩌다 포장마차가 보였는데 불을 환하게 켜놓고 '빙당고'를 파는 행상이 눈길을 끌었다.

택시는 밤거리를 구경할 여유를 주지 않고 '행복민족양로원' 앞에 내려주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까 불을 꺼놓아 캄캄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만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검소하고 근면한 면에서는 한국이 중국을 따라갈 수 없다는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가 떠올랐다.

처음 방문이지만 낯설지 않아 

인기척을 듣고 원장이 나오더니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안으로 안내되어 주방에 있는 식탁에 둘러앉았다.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등을 갖춘 주방 분위기가 한국의 오래된 주공아파트와 흡사했다. 그래서인지 처음 방문인데도 낯설지 않았다.

a  처음 방문한 조선족 집에서 ‘닭 날개’, ‘양고기꾐’(양고기로 만든 꼬치구이) 등을 안주로 ‘더덕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일행.

처음 방문한 조선족 집에서 ‘닭 날개’, ‘양고기꾐’(양고기로 만든 꼬치구이) 등을 안주로 ‘더덕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일행. ⓒ 조종안


술상이 차려지고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의 정숙자 원장은 조선족 2세로 부모 고향은 강원도 철원이라고 했다. 나이도 생각보다 많았다. 식당에서 처음 인사할 때는 40대 후반으로 봤는데 50대 중반이라고 해서 놀랐다.  


가져간 김을 정 원장에게 건넸더니 깜짝 놀라며 고마워했다. 작년 8월에 다녀가면서 느낀 게 있어 조선족 집에서 민박할 때 선물하려고 세 톳을 준비했던 것. 만주는 바다와 먼 내륙이어서 향긋한 파래 냄새, 특히 맛좋은 전라도 김을 좋아할 것 같아서였다.

박 시인은 정 원장에게 '2011 겨울 만주기행'에 대해 설명했다. 두 사람은 5년 전부터 알고 지냈으며 친구처럼 지낸다고. 우리는 정 원장이 내놓은 '더덕술'을 마시며 깊어가는 만주의 밤을 두 시간 넘게 즐기다가 오후 11시쯤 돌아왔다.     


정 원장이 전하는 중국의 '조선족 양로원' 

정 원장은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던 1992년 한국에 나와 12년 일해서 번 돈으로 목단강에서 처음으로 조선족 노인만 받는 양로원을 차렸단다. 수많은 사업 중에서 양로원을 택하다니, 그가 다시 보였다. 봉사정신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a  음식을 만들면서도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는 정숙자 원장.

음식을 만들면서도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는 정숙자 원장. ⓒ 조종안

5층 건물의 1, 2, 3층을 사들여서 양로원과 살림집을 겸하고 있었다. 늦은 밤이어서 양로원에 입주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뵙지 못했다. 4층은 부모 없는 초등학생 80여 명이 거주하는 유료 합숙소(보육원)라고 했다.

양로원 입주 요금은 건강한 노인은 한 달에 5백 위안(9만 원), 상태가 좋지 않아 보호자가 필요한 노인은 6백 위안, 합숙소 어린이는 4백에서 450위안을 받는다고 했다. 합숙소도 부모가 한국으로 돈 벌러 나간 자녀가 대부분이라고.

처음 개원하던 2003년에는 입주 노인이 20명도 채 안 되었는데, 인테리어를 새롭게 단장하고 노인을 편하게 잘 모신다는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60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종업원도 2-3명 정도에 불과한 다른 양로원들과 달리 7명을 두고 있단다.

2007년 한국 방문 취업제 도입과 더불어 또다시 한국행 붐이 일면서 음식, 언어소통, 문화습관 등 다양한 면에서 민족 특색을 잘 갖추고 조선족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행복민족양로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부분 노인이 처음 양로원에 올 때는 자식에게 불평도 많고 섭섭하게 생각하지만, 곧 생활에 적응한단다. 정 원장은 양로원 노인들은 심심풀이 화투놀이와 윷놀이, 노래자랑 등 다양한 오락프로그램과 한국어가 나오는 TV를 시청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낸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시행하는 양로원 관련 학습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는 정 원장은 민족의 전통 명절은 물론 세계여성의 날(3월8일)에도 명절에 버금가는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고 설명했다. 특색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노인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고.

중국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주변에 자녀가 없거나 멀리 떨어져 생활 자립이 어려워 양로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독거노인이 늘고 있다고. 한국에 가게 되는 조선족 젊은이들이 부모를 정 원장 양로원에 모시려고 예약한 사람만 20여 명에 달한다고 했다.

옆에서 듣기만 하던 박영희 시인이 "원장님이 양로원 운영을 워낙 잘하셔서 <흑룡강 신문>에도 몇 차례 소개되었어요."라며 거들었다. 조선족 노인만 받는 다른 지역 양로원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양로원을 용이하게 운영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정 원장은 "한국으로 돈 벌러 나간 젊은이들이 부모 걱정하지 않고 직장에 충실할 수 있도록 노인들을 친부모처럼 모시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을 타고나서 양로원을 운영하게 된 것 같다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태극마크가 들어간 명함 한 장을 건네주며 아들(27세)이 민박도 하니까 목단강에 오는 기회가 있으면 꼭 들러달라고 당부했다. 이웃처럼 따뜻하게 모시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2011년 1월10일부터 17일까지 항일유적과 함께 하는 겨울 만주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2011년 1월10일부터 17일까지 항일유적과 함께 하는 겨울 만주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선족양로원 #정숙자 #목단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5. 5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윤 대통령, 24번째 거부권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윤 대통령, 24번째 거부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