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있는 '독설'을 위하여!

[서평] 테리 이글턴의 <반대자의 초상>

등록 2011.03.20 14:20수정 2011.03.20 14:20
0
원고료로 응원

글을 이끌기 전에 당신께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당신께선 혹시 인터넷이나 대화를 하다가 본의 아니게 논쟁에 휘말린 적이 있으신지?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자들과 격한 악플 싸움을 하거나 흥분할 정도로 고함을 질러본 적은 없으신지?

 

사실 그럴 때는 그냥 무시하는 게 상책이긴 하지만, 좋든 싫든 이런 상황에 처하면 우리는 상대방의 오류나 무지를 지적하고 시원하게 카운터펀치 한방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누르기 어렵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흔히 말하는 사회지도층들이나 석학들도 가끔 SNS나 책을 통해 상대방을 깎아내리며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보면 이건 어쩌면 본능이지 싶다. 

 

그래서 때론 우리는 이런 논쟁에서 교양 없이 욕을 퍼붓기 보다는, 발랄하면서도 재치 있고,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대상을 조롱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풍요로운 지식과 식견을 통해 상대방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기술이 있었으면 하게 될 때도 있는 것이다.

 

'테리 이글턴'의 <반대자의 초상>

 

a

테리 이글턴 <반대자의 초상> ⓒ 이매진

테리 이글턴 <반대자의 초상> ⓒ 이매진

만일 그렇다고 하면 지금 글쓴이가 권하려 하는 영국 랑카스터 대학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의 책 <반대자의 초상(Figures of Dissent)>을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지젝부터 베컴까지 삐딱하게 읽는 서구 지성사'라는, 좋게 말하면 섹시하고 나쁘게 말하면 천박한 부제를 단 이 책은, 테리 이글턴 교수가 서평전문지인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게재한 41편의 서평을 모은 한 권의 책자다. 그리고 이 책을 당신에게 굳이 권하는 이유는 <반대자의 초상>이 가지는 특유의 독설과 유머에 당신도 매료될 것이란 확신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테리 이글턴은 이 책에 모인 서평을 통해 그 자신의 독특한 글쓰기를 독자들에게 가감 없이 보여준다. 한 마디로 축약하면 '끝내주게' 신나는 책이다. 비아냥거림, 유머, 독설, 민망할 정도로 남에 책을 내리 깎다가도 끝에는 띄워 주는 등 읽고 있자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재기의 흥으로 <반대자의 초상>은 가득 차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책의 진짜 핵심은, 저자인 테리 이글턴이 어느 한 구석에서도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에 버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독설이나 비아냥거림이 가능한 것은, 결국 그가 남의 책에 대해 그러한 소리를 내뱉어도 될 만큼 그가 대담하고도 방대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부분이 사실 그의 진짜 저력이다. 알겠지만, 상대방의 책을 평가하는 서평을 쓰거나 상대방과의 논쟁에 있어서, 대상에 대해 강하게 찬사하거나 비아냥거림을 보낸다는 것은 보통 당파적인 판단이 되기 쉽다. 당파적이라 함은 냉정하지 않은 판단이기 쉬워서 대상 그 자체에 객관적 판단이기 보다는 그 대상에 대한 판단을 공유하는 이들을 결집시키고 반대하는 이들을 배척하는데 더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하물며 글 전체가 그런 감정의 파토스(pathos)를 담은 문장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러한 서평이 정말 대상을 잘 다루고 있는지 우리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반대자의 초상>에 실린 41편의 서평 중, 그 책을 적은 저자의 이름에 지젝(Slavoj Zizek)이라던가, 노스럽 프라이(Northrop Frye), 헤럴드 블룸(Harold Bloom), 폴 드 만(Paul de Man),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루카치(György Lukács)와 같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20세의 지성들이 계속 포함되어 있다면 말이다. 읽고 그 내용을 올바르게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숨이 헐떡여지는 이름들인데, 이글턴은 이들을 씹어 삼킨 다음 이러 저리 장난까지 쳐댄다.

 

독설의 조건 = 개인의 식견

 

a

테리 이글턴의 독설과 유머는 그의 식견과 비례한다. ⓒ facebook

테리 이글턴의 독설과 유머는 그의 식견과 비례한다. ⓒ facebook

무례하지 않느냐고?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테리 이글턴'이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다.

 

41편의 서평을 적어 내려가면서 그는 자신이 이런 책들을 이해함에 있어 문제가 없다는 것을 거침없이 증명한다. 이러한 콘셉트의 책들을 써낸 저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이글턴은 엄청난 지식을 축약적인 형태로 쏟아 부으며 일화적인 사건들을 거침없이 적어나간다.

 

그것들은 알아보는 독자들은 머리를 새로 씻어 내리듯 상쾌하다. 또한 그것들은 테리 이글턴이 자신이 다루는 대상에 대해 얼마나 독창적인 이해를 선보였는지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 새로움은 어디까지나 표준적인 이해들을 충분히 음미한 위에서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그가 미국의 비평가 헤럴드 블룸(Harold Bloom)에 대해 언급한 문장을  살펴보자.

 

"1970년대, 헤럴드 블룸은 '모든 작가들이 강력한 선배들과 오이디푸스적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과장된 문학 창작론을 발전시켰다. 블룸이 말한 문학이란 결국 경쟁의식과 원한의 결과물이란 말이다. 그에 말해 따르자면, 모든 문학작품은 일종의 표절, 이전 시도들의 창조적 오독이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워즈워스는 밀턴을 죽여 없애려했고, 셸리는 셰익스피어에게 억하심정이 있었다는 것이며, 시의 의미는 다른 시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블룸의 이론은 단점이 하나 있는데,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헤럴드 블룸이 과거 문학 창작론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그것이 예술사적 입장에서 문학을 연구해 본다면 오이디푸스적 편견에 경도된 허구에 불과하다는 소리라는 이글턴의 독설이다. 또한 저러한 이글턴의 독설은 예술사적 입장에서 충분한 문헌연구를 통해 그 역사적 맥락과 결합시킬 수 있어야만 가능한 독설이기도 하다.

 

결국 글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은 문체가 아니라 '논리'다. 충분한 지식과 냉철한 시각이 기저에 깔려 있기만 하다면, 휘몰아치는 당파적인 문체는 도리어 유쾌한 논리를 장식하는 신나는 팡파르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이글턴은 증명하는 것이다.

 

유머러스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반대자의 초상>

 

하지만 이 멋진 책에도 단점이 있다. 그것은 이 책을 풍요롭게 적시고 있는 재치와 유머는, 사실 결코 쉽지 않은 글이라는 점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쉽지 않다면 다행이고, 어쩌면 읽다가 몇 번이고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그가 구사하는 문체의 특징과 밀접하게 닿은 것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엄청나게 방대하고 학술적인 지식들을 얽고 꿰어서 유머로 만들어내는데, 유머란 본질적으로 기호와 기호의 이면에 함축된 방대한 의미를 비틀어 교환하는데 있는 것이라서 만일 배경지식이 없다면 그의 유머에 결코 웃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설명될 수 없고 이미 접하는 이가 미리 부터 알고 있어야 하는 성질의 것이다. 설명해야 하는 유머는, 그 순간 유머가 아니지 않은가.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킥킥대고 웃기위해서는 이미 테리 이글턴이 예상하는 정도의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가 발휘하는 문장의 즐거움을 도무지 알 도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울러 이런 것을 보면 '독설'을 위해서나, '웃음'을 위해서나, 혹은 논쟁의 '승리'를 위해서도 우린 언제나 '공부'해야 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고 말이다.   

#테리 이글턴 #반대자의 초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장난 우산 버리는 방법 아시나요?
  2. 2 마을회관에 나타난 뱀, 그때 들어온 집배원이 한 의외의 대처
  3. 3 삼성 유튜브에 올라온 화제의 영상... 한국은 큰일 났다
  4. 4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5. 5 "청산가리 6200배 독극물""한화진 환경부장관은 확신범"
연도별 콘텐츠 보기